[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 선배의 조언 (1)
2024.09.26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인생의 새로운 관문 앞에 서면 누구나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러면서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생기죠. 하지만 마음과 달리 부딪치는 일도 많고, 생각보다 어렵고, 나와 잘 맞는 일인가 다시 생각할 때가 많은데요. 탈북민들도 한국에 와서 처음 드는 감정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순희: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이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생활할 때 모두가 마음 깊이 한국 정착을 잘 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하곤 합니다. 하나원을 나올 때 모두가 성공적인 정착생활을 꿈꾸지만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려면 그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엔 여러 어려움들이 있는데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멋지게 정착생활을 하는 분들 정말 많습니다. 누구나 인생 2막을 새롭게 살 수 있는데요. 소중한 기회의 땅 대한민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은 탈북민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늘의 주인공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국 정착을 시작한 분인데요. 2009년에 한국에 정착한 오지연 씨입니다.
김인선: 드라마 영향도 있겠지만, 제가 만나 본 탈북민들 중엔 한국에 오기만 하면 잘 살게 되는 줄 알았다는 분들이 여럿 계셨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노력이 따라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마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은데요. 누가 더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지연 씨는 한국 정착을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마순희: 네, 오지연 씨는 먼저 정착한 남동생의 주선으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당시 지연 씨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남들처럼 대학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사무직으로 일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지연 씨는 본인의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큰 목표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웠는데요.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서 북한에 두고 온 딸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오랜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을 때 우리 탈북민들이 느끼는 기쁨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낯선 환경에서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도 큽니다.
탈북민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인데요. 그래도 한국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 탈북민들에게 일상생활 적응을 도와주는 정착도우미 제도가 2005년부터 시행되면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연 씨도 정착도우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인도주의 기관인 적십자사 소속의 정착도우미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지연 씨의 한국 정착 시작의 첫 걸음마를 떼게 해 준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고 가족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지연 씨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지연 씨의 마음을 헤아려 인천에 있는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보양 음식인 오리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고 지연 씨는 그곳에서 주방보조부터 시작해서 주방장에까지 올랐습니다. 식당 일을 시작하면서 지연 씨는 가게를 내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고 5년째 됐을 무렵, 서울 지역에서 자신의 가게인 오리 전문 식당을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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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음식점을 창업한 탈북민 분들이 꽤 계신데요. 대부분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해보고 주력 음식을 결정하는데, 지연 씨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음식에 있어서 자신감과 확신도 있고 추진력도 있어 보여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북한에서 지연 씨는 전문대학교에서 식료가공학(식품가공학)을 전공했던 분이었습니다. 다양한 음식 재료로 가공을 하는 공부를 했던 분이니 주방보조 일부터 시작해서 2-3 년 만에 주방장까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지연 씨는 북한에서 보안원이었던 남편 덕분에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데요. 특히 중국에서 물건을 몰래 들여다가 되파는 밀수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밀수를 하면서 추진력도 생겼던 것인데요. 어느 날 그 일이 적발되었고 지연 씨는 6년 형을 선고 받아 4년을 복역한 뒤에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병으로 사망했고, 돈이 있어도 맘대로 쓰지도 못하고 돌아 다니지도 못하는 곳이 북한이었기에 지연 씨는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지연 씨가 복역하는 동안 딸은 이미 친척 집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지연 씨 혼자 한국에 정착한 남동생의 주선으로 2009년 한국에 입국했고, 정착도우미의 도움으로 식당 일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탈북민들 중에는 특별한 자격요건이 필요 없는 곳이 식당이다 보니 식당 일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연 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식당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가게를 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한국 식당에서 일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한 곳에서 쭉 일을 할 수 있었고 주방보조에서 주방장이 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하면서 우거지 오리국밥, 매운 오리탕, 오리 불고기 등 다양한 요리 종류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김인선: 식당 일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이 높아야 창업을 꿈꾸는데 지연 씨는 처음부터 식당 창업을 목표로 했군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목표가 뚜렷하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지연 씨 경우 목표도 뚜렷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북한에서 식료가공학(식품가공학)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 지식은 자신이 요리를 하는데 기초지식이 될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매일 매일을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북한에서 직행으로 한국에 온 분이라 한국의 식생활 문화와 음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습니다. 다양한 양념과 조리법, 조리도구 등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시간은 지연 씨에게 있어 반복되는 일과가 아닌 탐구와 배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자세로 일을 했으니 습득도 빠르고 성장 속도도 빨랐습니다. 식당 주인의 신뢰는 물론 새로운 메뉴도 직접 개발하다 보니 주방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할 줄 알며, 성실하고 근면한 성격의 지연 씨는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했기에 모든 것이 수월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지연 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 결과 사랑하는 딸도 금방 데려올 수 있었고 한국 정착 5년 만에 자신의 가게를 내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연 씨에게도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없을 순 없었습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지연 씨는 중국이나 제3국 등 체류 경험이 없는 직행 코스로 한국에 입국했기 때문에 북한 외에 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생활양식이나 생활 수준의 차이가 너무나도 많았기에 지연 씨에게는 매 순간순간이 생소함이었습니다.
김인선: 직행으로 한국에 온 탈북민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들이죠. 처음엔 그 생소함이 어려움으로만 여겨지지만 정착을 하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일화로 남는데요. 지연 씨에게는 어떤 순간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궁금하네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