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라질 수 있다, 소방설계사 이서진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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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부소방서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한 대형마트를 찾아 소방시설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광주 동부소방서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광주 동구 한 대형마트를 찾아 소방시설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친구나 직장 상사와 후배, 혹은 친지나 이웃들에게 듣게 되는 최고의 찬사는 ‘한결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한결같은’ 이 단어에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어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호감까지 준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지금 제 곁에 있는 마 선생님도 제가 볼 때는 참 한결같은 분이시거든요.

마순희: 네. 잘 봐 주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듣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요. 기자님 말씀처럼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살아간다는 최고의 찬사가 녹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호감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니까요. 주변 사람들의 평판이 좋다는 건 참 기분이 좋은 일이죠.

오늘 소개해 드리는 주인공에게는 이런 평판이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2004년에 한국 땅을 밟은 52살 이서진 씨입니다. 이서진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의 해안 도시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착하고 똑 부러지게 공부를 잘하던 서진 씨는 건설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잘 나가는 설계사로 근무했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온 나라가 겪었던 어려움은 서진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서진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짬 시간에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 가면서 살림을 알뜰하게 해 나갔기에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고 주변에서는 모두 성실하고 알뜰한 서진 씨를 칭찬했습니다.

김인선: 가장 어려웠다고 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으면 그럭저럭 살만했다는 말이잖아요.

마순희: 아니요. 고난의 행군도 한 걸음 물러가고 2000년에 들어서면서 생활이 조금씩 나아진다고는 하나 역시 살림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서진 씨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요. 중국에 가서 모내기 철만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네 명의 친구들과 중국에 갔었는데 일이 안 되려니 하루도 못 버티고 도로 잡혀 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강제노동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 왔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확 바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도강자라는 오명을 받게 되고 언제나 성실하고 근면한 알뜰한 여성이라고 칭찬하던 사람들로부터 그전의 신뢰나 반기던 따뜻한 눈길을 어디서도 받을 수 없었다는데요.

사실 모르는 사람들은 남들의 시선이 무슨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북한처럼 집단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완전한 사회적 매장, 정치적 생명의 죽음을 의미하거든요. 저도 그랬고 그것 때문에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으면 남은 가족들도 탈북을 택하기도 합니다. 칭찬만 들으며 살던 서진 씨였기에 더더욱, 그런 도강자라는 오명을 견디기 어려웠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들을 이겨내면서 그 나라에서 삶을 이어갈 의욕이 사라졌기에 다시 탈북을 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서진 씨는 북한에서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설계사로 일했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여러가지 노력 끝에 소방 설계기사가 됐습니다.

김인선: 남한에선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있어요. 의사, 판사, 검사, 교사, 회계사...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돈을 잘 번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마순희: 그렇죠.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문직이라고 할 만큼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노임을 받더라고요. 서진 씨 역시 한국에 온 후 열심히 공부하여 자격증도 취득하고 소방 설계기사로 일한 지 올해로 13년차가 되다 보니 연봉도 높고 회사 내에서도 차장으로 능력도 인정받고 입지도 탄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불을 끄는 소방관은 꽤 친숙한데 소방 설계기사는 사실 저도 좀 낯설거든요.

마순희: 소방 설계기사는 소방 설비를 위한 설계를 하는 전문가를 말하는데요. 모든 건축물의 건설에서 최우선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화재방지와 소방설비 설치가 의무화되고 있는데 그런 소방 설비를 위한 설계를 하는 거죠.

김인선: 그런데 서진 씨는 어떻게 알고 이 직업을 갖게 됐을까요?

마순희: 사실 서진 씨가 소방 설계기사가 된 것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부터 해왔던 직업이나 그와 연관된 직업, 즉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이 우선시 되거든요. 처음 하나원을 졸업한 후 서진 씨는 북한에서 건설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설계사로 근무했었기에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컴퓨터로 설계하는 ‘캐드’라는 직업을 알게 되고 관련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교육생들이 10대, 20대였고 서진 씨만 30대였다고 하는데요. 교육생들과도 한 번도 문제가 있은 적이 없을 정도로 이들과도 잘 지냈다고 합니다.

김인선: 나이가 달라도 잘 지낼 수는 있죠. 하지만 문제는 언어인데요. 남쪽 사람들끼리도 말에 의한 세대차이가 생기고 못 알아듣는 말이 있거든요.

마순희: 맞아요. 저도 대학생이 된 손녀가 있는데 가끔 알아듣지 못할 그런 말을 할 때도 있거든요. ‘마음의 상처’를 ‘마상’ 이라고 줄여 말하고 ‘이번 생은 망했어’를 ‘이생망’, ‘좋다 못해 사랑해’라는 뜻이라면서 ‘좋못사’ 라고 말해서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친한 친구들끼리 사용하는 ‘그들만의 은어’라고 넘어갈 수 있었고, 뭔가를 배울 때는 관련 용어에 대한 학습적인 부분에 대한 대화가 많기 때문에 서진 씨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에 살 때 한국회사에 다니면서 많이 배우던 것도 도움이 됐고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말투가 조금 다르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서진 씨였기에 별 무리 없이 학원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취직한 설계회사가 바로 소방설계를 하는 회사였던 것입니다.

김인선: 북한에서 대학을 다녔고 설계사까지 했다면 한 마디로 고급인력이잖아요. 한국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북한에서 설계에 대해 배운 것은 맞지만 컴퓨터로 배우는 설계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컴퓨터를 처음 다루는 서진 씨에게는 점 하나, 선 하나,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새로웠고요. 이해하기 힘든 공부였다고 하는데요. 나이 어린 학생들 앞에서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과제 하나를 붙잡고 밤을 밝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서진 씨가 한국에 처음 정착하던 2000년대 중반에는 많은 탈북민들이 더 좋은 곳을 찾아서 영국으로, 노르웨이로, 캐나다로 나가던 때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서진 씨는 내가 말이라도 같은 대한민국에서 정착하기 힘들다고 하면 외국에 가서도 역시 정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많은 유혹들을 뿌리치면서 끝까지 학원에 다녔다고 해요.

김인선: 저는 팔랑귀라서 곁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열두 번도 더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서진 씨는 신념이 확고했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서진 씨는 자신만의 확고한 좌우명이 있었으니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실하게 살자’ 이런 겁니다. 그렇다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열심히 살아야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김인선: 그런 사람을 ‘귀인’이라고 하잖아요. 물론 개인의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귀인이 있을 때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데요. 이서진 씨는 귀인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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