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치유자, 건강상담사 김영순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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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보건소 금연 클리닉 상담 모습.
서울 강남구 보건소 금연 클리닉 상담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공공의료기관인 춘천보건소에서 건강상담사로 근무 중인 김영순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마순희: 네. 김영순 씨는 2004년 4월에 탈북해 2009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을 거주지로 선택한 영순 씨는 5개월 만에 탈북민 초기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추천으로 춘천보건소에 취직하게 되었는데요. 아직 준비되지 못 한 사람이 취직을 잘했다고 여러 뒷소리도 많이 듣게 됐습니다. 좌절도 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영순 씨는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냈고 지금까지 춘천보건소에서 건강상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1일이 영순 씨가 취직한 지 만 9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었다고 하더군요. 올해까지 10년차 탈북민들의 건강지킴이로, 행복지킴이로 굳건히 보건소를 지키고 있는 자랑스러운 영순 씨랍니다.

김인선: 자격요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던 사람이 10년째 건강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거네요. 김영순 씨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 영순 씨보다 먼저 온 탈북민 중에 기본요건을 다 갖춘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마순희: 맞습니다. 춘천에도 먼저 나온 탈북민들 중 북한에서 대학을 나왔는데도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하고 계속 구직활동 중인 분들도 있었고요. 또 한국에 나와서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간호조무사 등 여러 가지 자격증들을 취득한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영순 씨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거죠. 영순 씨는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서 일하면서 공부도 하고 자격증들도 취득했습니다.

영순 씨는 탈북민들의 건강검진이나 의학상식 교육도 하고 특히 상처가 많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병원을 찾아가려 하지 않는 탈북민들을 일일이 만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해당 상담도 하고 의료기관이나 복지 기관들에 연계해 주기도 한답니다. 직접 상담사로 주변의 탈북민들을 만나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도 많다고 합니다. ‘잠자는 자격보다 달리는 노력이 더 귀중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 거죠.

김인선: 능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춘천에 있는 탈북민들 중 영순 씨보다 먼저 나온 선배들 중에도 혼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보건소의 상담사로 근무하는 영순 씨를 보면서 느낀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직 회사원이나 일용직, 식당 그리고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이 아닌 공공기관에서도 탈북민이 당당하게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영순 씨는 조금도 성과에 자만하거나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역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모범이 되었다고 상금도 880달러(100만원)씩 두 번이나 받았지만 영순 씨는 그 상금을 모두 봉사하는데 돌리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보탰다고 합니다. 영순 씨는 ‘진달래 호반봉사단’에서 봉사활동도 하는데요. 가을이면 봉사단원들이 여름 내내 정성들여 가꾼 무, 배추로 북한식 김치를 만들어서 지역의 어르신들과 탈북민 가족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탈북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까지 보내 주기도 한답니다.

김인선: 영순 씨는 베푸는 삶을 사시네요. 그런데 보건소에는 남한 상담사가 있는데, 영순 씨 같은 탈북민 상담사가 따로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지역의 보건소마다에는 건강상담사가 다 있지만 탈북민들에 대한 상담에서는 아무래도 공감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죠. 아시는 것처럼 탈북민들은 목숨을 건 탈북과 제 3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남한입국을 위한 머나먼 노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착 초기에는 몸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모두 건강들이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현상을 신체화 증상이라고도 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도 하던데요. 상담, 그러니까 대화를 통해 증상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 중에는 낯선 사람은 경계하고 쉽게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말을 잘 안하는 거죠. 그런데 같은 북한이탈출신 상담사라고 하면 대부분 많이 신뢰를 합니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다보면 마음속의 벽 같은 것이 점차 무너지게 되거든요. 김영순 상담사가 하는 일은 탈북민들의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에 풍부한 상담 지식과 경험,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폭넓은 정보와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는 남한출신 상담사와 함께 하다 보니 성과는 당연히 배가되겠지요.

김인선: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본인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김영순 상담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마음의 문은 본인 스스로가 여는 것이다. 북한과 같이 누가 키워주기를 원하고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본인의 자세가 중요하다’ 라고요. 이 말은 탈북민 뿐 아니라 남한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오면 첫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지역에 나오면 지역정착을 도와주는 남한의 정착도우미분들이 탈북민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됩니다.

춘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간혹 가다가 어떤 도우미 분들은 북한사람들을 만나다가 실망하는 일이 많다면서 다시는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영순 씨는 ‘사람은 하루 이틀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남한에 온 탈북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의사소통을 잘 하고 그들을 잘 이끌어 주는 것이야말로 통일을 위한 준비운동, 통일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들의 어려운 마음을 이해해 주면서도 함께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죠.

김인선: 상담사로써 영순 씨의 능력이 돋보이는데요. 영순 씨를 통해 삶이 달라진 탈북민들도 상당하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춘천지역의 탈북민들 중에 배울 수 있는 분들은 거의 일을 하면서 다닐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 등에 입학하여 대학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가로 취직할 때에는 영순 씨도 무척이나 보람차고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던 나세진 씨의 어머니 기억하시죠? 갱년기 증세로 힘들다고 병원에 취직한 딸을 엄마 곁으로 불러오신 그분 역시 김영순 씨의 도움으로 삶이 달라졌는데요. 50대지만 제빵공장에서 일하면서 대학공부도 하더니 이제는 어엿한 사회복지사가 되어 시립요양원에 취직하셨답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전문가로 취직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 중의 하나인데요. 춘천시에만 해도 공공기관이나 전문기관들에 취직한 탈북민들이 10명 이상이라고 하니 영순 씨의 노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순 씨는 그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서 2015년 통일부 장관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상들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춘천보건소에서 탈북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건강상담사로 근무하는 김영순 상담사님. 받은 사랑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한 근무와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서 지역사회의 든든한 동반자로, 조력자로 행복한 정착을 하고 있는 김영순 씨의 더 멋진 내일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저도 응원합니다! 자신보다는 사람들을 더 챙기고 지켜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치유자’라고 표현합니다. 춘천보건소에서 근무 중인 건강상담사 김영순 씨야 말로 진정한 치유자가 아닐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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