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의 정신, 진도오리목장 김남진 씨(3)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5.09
duck_farm_flood_b.jpg 전북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 한 오리농장.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진도오리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남진 씨에 대한 이야기.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리는데요. 오늘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김남진 씨는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농사일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투자금을 모두 날리며 무일푼이 됐고 전국을 떠돌며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오리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문제는 돈이었죠. 다행히 탈북민의 안정된 삶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의 영농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서 오리농장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농장을 직접 수리하고 보수를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오리농장에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아기오리를 받아 키우며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마순희: 네, 맞습니다. 김남진 씨가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었던 데는 그만의 근면과 성실성 덕분인데요. 오리는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열심히 돌볼수록 바로바로 생육이 달라지는 민감하고 예민한 가축입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사람의 애정과 관심이 부족하면 오리는 잘 자라지 않는다는 거죠.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기에 오리농사를 시작하면서 외출 한 번 맘 편히 못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는 오리를 키우는 것이 무척 재미있고 보람차다고 남진 씨는 말합니다. 오리를 키우는데 부족한 면이 있다 싶으면 다른 농장을 찾아 배우고 익히면서 기술을 터득했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 바치다 보니까 그 노력들이 빛을 발해서 오리 농장을 시작한지 2년 만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김인선: 오리농장도 자리 잡았고 빚도 없으니까 이대로 쭉 유지되기만 하면 김남진 씨는 더 이상 바랄게 없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희가 찾아 갔을 때 김남진 씨는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환하게 웃더라고요. 한 번에 2만 마리씩 키우는데 오리의 특성이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반드시 주인이 긴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혹시라도 넘어진 오리가 있으면 툭툭 건드려 주더라고요. 저희들이 찾아 간 날에도 1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깨어보니 남진 씨가 안 보여요. 그래서 부인이랑 같이 오리사에 나가 보았더니 거기서 오리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더라고요.

남진 씨는 힘들다가도 오리가 자라는 모습만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잠을 못 자도 피곤한 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새끼 오리들이 어느 정도 크면 더 넓은 곳으로 옮기는데 정말 보기만 해도 흐뭇한 그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김남진 씨는 지금도 오리 생산성을 조금이라도 더 올릴 생각에 항상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해요. 시간만 나면 잘 운영된다는 다른 오리 농장을 무조건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오리가 더 잘 자라는지, 어떤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지, 매일 계속 배우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신기술을 계속 연구하고 도입해서 생산성을 높여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김인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뤄낸 결과인 만큼 더 많은 열정을 쏟아내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남진 씨가 하는 일은 자리를 잡았는데 자녀들은 어떤가요? 지금까지 김남진 씨의 자식들 얘기가 전혀 없네요.

마순희: 당연히 궁금하시죠? 북한에서부터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났던 김남진 씨의 아들은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 국무부의 지원으로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유학을 가있습니다. 지난겨울에 방학이라고 놀러 와서 저도 볼 수 있었는데요. 얼마나 대견한지 남의 자식이지만 온 동네에서 제 일처럼 함께 기뻐해 주었답니다. 딸은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됐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태권도 사범으로 있던 멋진 청년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요. 이 두 사람이 가끔 남진 씨가 하는 오리농장에서 일손을 도왔었나 보더라고요. 돕다 보니까 자신도 하고 싶었었는지 사위는 태권도 사범을 퇴직하고 장인어른과 함께 오리사육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딸 내외가 함께 오리농장을 운영하는데요. 장인이 하는 오리사보다 현대적으로 새로 지은 곳이라 더 멋져 보였지만 비결은 역시 장인을 못 따라 가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거나 하면 남진 씨에게 전화로 연락하고 남진 씨는 오고 가면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김인선: 아무리 보기 좋아도 가족끼리 경쟁업체가 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마순희: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사위가 남진 씨에게 많이 배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김남진 씨는 시간이 날 때면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주고 여러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데요. 그러기에 사위도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장인어른께 도움을 청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딸과 사위가 운영하는 오리농장도 잘 키우는 오리농장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요. 부모님들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같은 길을 선택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김남진 씨는 자식에게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탈북민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인선: 정말 맞는 말씀이세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김남진 씨의 삶이야말로 탈북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은데요.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요?

마순희: 네. 김남진 씨는 자신과 같은 탈북민이 사회에 잘 정착해서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정착하려면 많이 보고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두 가지 조건을 갖추라고 하더군요. 첫째 조건이 근면, 둘째 조건이 성실입니다. 한국은 '하면 된다'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눈앞에 힘겨운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말고 다른 좋은 성공사례를 보면서 배울 만한 곳,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찾아가야 한답니다. 탈북민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온 사람들이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고, 목적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도 처음에는 ‘작은 내 농장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큰 오리농장을 이루어냈으니 그동안의 고생은 싹 잊혀진다면서 탈북 후배들 역시 힘들더라도 목표를 이루고 나면 만세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인선: 자식을 위해 탈북을 했는데 자식들의 삶도 좋아졌고, 남진 씨의 삶도 윤택해 졌고. 무엇보다도 ‘작은 내 농장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요. 그것도 이뤘어요. 더 이상 바랄게 없으시겠어요?

마순희: 아니요. 이제는 오리농장을 더 키워서 직접 오리 알을 부화해서 어린 아기오리들을 다른 농장에 분양하는 수익성 좋은 종란 오리농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답니다. 그 꿈을 목표로 하루하루 열심히 오리를 키우겠다는 김남진 씨인데요. 그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인선: ‘칠전팔기’ 라는 말이 있죠?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설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사람, 진도오리농장을 운영하는 김남진 씨에게 딱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데요. 남진 씨처럼 넘어지면 주저앉지 말고 벌떡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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