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지난주에 이어 경상북도 포항에서 떡을 만드는 이정실 씨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요. 새벽 4시, 꽤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한다는 정실 씨였습니다. 지난 주 방송을 마치고 너무 궁금해서 좀 알아봤거든요. 사진과 영상으로 정실 씨의 모습을 봤더니 그렇게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진짜 작고 왜소하시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죠? 사실 저도 처음 정실 씨의 억척같은 정착사례를 전해 듣고서는 건장한 여장부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찾아갔거든요. 그런데 막상 만나게 된 정실 씨는 정 반대의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작고 왜소해 보이는 가냘픈 몸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겉보기엔 체격도 작고 말랐지만 쉽지 않은 떡 만드는 일을 6년째 하고 있고 있는 이정실 씨랍니다. 정실 씨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떡 만드는 공정을 맡겨주었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정실 씨를 통해 탈북민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게 된 거네요. 그런데 새벽 4시부터 일과가 시작되니까 퇴근이 남들보다 빠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한 떡 만드는 전투 같은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거의 오전 중이랍니다. 새벽부터 힘들게 일하고 피곤해서 좀 쉴 법도 하지만 정실 씨는 오후에 봉사활동까지 열심히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정실 씨가 속한 봉사하는 단체는 ‘개미와 노래하는 베짱이’라는 재미있는 명칭을 띠고 있는데요. 병원과 요양기관 등에서 일손도 도와 드리고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을 안겨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청이 고운 정실 씨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북한 노래를 부르든가 아니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면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해요. 늘 앵콜을, 아 북한말로는 재청을 요청하곤 한답니다. 그뿐 아니라 학교와 지방의 단체들에서 요청하면 안보 강의도 하면서 말 그대로 쉴 틈이 없이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정실 씨는 이런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2015년에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에게 주는 통일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는 것도 힘들 텐데 떡 만드는 일을 마치고 오후에 봉사활동까지 하는 이정실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봉사라는 게 돈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서 주변사람들을 돕는 거잖아요. 저는 체격은 좋아도 체력이 부족한지 뭘 조금만 해도 힘들던데, 이정실 씨는 어떻게 그렇게 작은 체구에서 그 많은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마순희: 네, 저도 역시 그 점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은 오히려 정실 씨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고요. 그 생각이 정실 씨가 많은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실 씨의 하루하루를 듣다 보면 한국에서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것 같죠? 하지만 정실 씨는 가정도 있고 아들도 있습니다. 가정을 돌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지만 정실 씨는 각오부터 남달랐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에만 매달려 살기보다 내 힘으로 일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죠. 물론 마음먹은 만큼 쉽지는 않았죠. 정실 씨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생산현장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의 떡 만드는 ‘설레’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설레’는 한동대학교 창업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곳인데요. 장애인들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50여 명의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직업훈련 겸 창업교육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떡 만드는 일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북한에서 일할 때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는 힘들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실 씨는 자신을 믿어주고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한동대학 창업보육센터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난 떡을 만드는 그 일이 좋아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던지 처음에는 다 힘들고 생소할 수 있지만 차츰 일하면서 요령도 생기고 기술도 늘어서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정실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인선: 맞아요. 무슨 일이든 요령이 있어야 하고 요령이 쌓이고 쌓이면 경력이 되니까요. 이정실 씨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떡 만드는 요령이 쌓이고 이젠 숙련자가 되셨네요.
마순희: 그렇죠. 숙련자가 됐다는 증표로 지금은 실장으로 승진도 하고 노임도 올랐습니다. 떡 만드는 경력만 쌓인 게 아니라 봉사활동 경력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데요. 지정된 날짜에 하루라도 봉사활동에 빠지면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다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고 해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정실 씨를 보면서 주변에서 탈북민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지고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하면서 살짝 깨알 자랑도 덧붙이더라고요. 사실 우리 탈북민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모르는 것 투성인 데다가 말투도 다르다 보니 소외감을 느끼거나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정실 씨는 그런 현상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더라고요. ‘내가 북한에서 왔는데 남한의 실정을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또 말투가 다른 것도 당연한 거다, 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모르다 보면 무시를 당할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노력하다 보면 자연히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소통이 안 되면 소통이 될 때까지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것이 정실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노력하다 보면 모르는 것들은 자연히 배우게 되고 진심을 가지고 가까워지다 보면 오해나 갈등은 자연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정실 씨에게 새로 정착하는 탈북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 취직할 때에 노임이 얼마인가만 따지지 말고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즐기면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시작해보라고요. 처음에는 노임이 적더라도 점차 익숙해지고 능력도 높아지니 자연히 승진도 되고 노임도 오른다는 것입니다. 참 소박하고 진실한 그 말들이 그 어떤 멋진 말보다 제 마음에 더 와 닿더군요.
김인선: 너무나 식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너무 열심히 사셔서 안 물어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정실 씨에겐 앞으로 또 어떤 꿈이 있을까요?
마순희: 정실 씨에게는 마음에 품은 꿈이 있다는데요. 지금 힘들더라도 더 많이 배워서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떡 공장을 세우는 것이랍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명절이나 되어야 떡을 만들어 먹거든요. 정실 씨도 가정이 어렵다 보니 항상 먹고 싶은 것이 떡이었다고 해요. 맛있고 예쁜 떡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먹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북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하고 선진적인 기술도 전파하는 통일강사가 되고 싶은 희망도 있다고 합니다. 저도 요즘처럼 남북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는 환경을 접하고 보니 정실 씨의 꿈이 멀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멀지않은 그날에 정실 씨의 고향인 함경남도에 우뚝 솟아오른 현대적인 떡 공장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행복의 떡을 빚어가고 있을 이정실 씨의 모습,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멋진 강사로 명 강의를 하고 있는 정실 씨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 꿈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함께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김인선: 밝은 기운으로 살아가는 사람 곁에 있으면 덩달아 기운이 밝아지는 것 같고 사사건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 곁에 있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은데요. 이정실 씨가 곁에 있으면 긍정의 기운이 넘쳐서 ‘으쌰으쌰’ 힘이 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도 통일을 염원하며 떡을 빚고 있을 이정실 씨. 그녀의 삶을 통해 체격이 작더라도 야무지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점,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