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김지성(가명) 씨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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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에서는 예순이 넘어가면 직장에서 은퇴해서 쉬시거나 다른 소일거리를 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런데 일흔의 나이에도 열심히 일하는 탈북자 분이 계시다면서요?

마순희: 네. 올해로 일흔이신 김지성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지성 씨는 10년 전인 2008년 북한을 떠나서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고요. 한국에 와서부터 오늘까지 거의 쉬어 본 일이 없으실 정도로 성실히 일하면서 살고 계시는 분이랍니다. 지금도 목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2012년부터 7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한국에선 아파트마다 시설물을 관리하고 외부인 통제 등 전반적인 아파트 관리를 하는 경비원이 있는데요. 북한에도 이런 경비원이 있나요?

마순희: 제가 살던 지방의 아파트에는 직업적인 경비원은 없었습니다. 다만 인민반에서 교대로 경비초소라고 해야 하나요? 입구에 그런 자그마한 칸에서 외부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가끔 어디서 왔는지, 누구네 집으로 가는지 등을 물어 보기는 했었죠. 97년도에 탈북하기 전 마지막으로 평양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의 오빠가 철도청에 근무한다고 했었는데 그 아파트에는 입구에 자그마한 칸이 있었고 할머니 한 분이 누구네 집에 가느냐고 물어보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평양을 비롯해서 지방별로 아파트마다 노인 위주로 경비를 선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경비원들처럼 로임을 받으면서 제복을 입고 24시간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편의를 도와주는 그런 경비원은 없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러니까 들고나는 사람들만 대조한다는 거군요. 나이 있으신 분들이 경비를 선다는 건 남과 북이 비슷하네요. 다만 남한에선 경비원으로 재취업을 하려는 분들이 많아서 경쟁률이 센 편이긴 합니다.

마순희: 네. 좋은 직장에서 퇴직한 뒤에도 집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분들이 경비원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요즘엔 경비직으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더라고요. 김지성 씨 역시 처음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할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답니다. 지인이 아파트 경비원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알려주면서 면접을 가보라고 했는데 절대 탈북자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더래요. 그러나 원래 솔직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인 지성 씨는 자신이 탈북자라는 것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답니다. 더구나 면접을 보면서 말투가 좀 다른 것 같은데 중국에서 왔는지 물어보기에 그냥 탈북자라고 대답한 거죠. 그랬더니 자기들은 호남사람, 중국조선족, 탈북자는 안 받는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냥 씁쓸하게 돌아서 나오면서 지인이 왜 탈북자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김인선: 사실 남한에는 특정지역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 중에서도 탈북자가 취업하기 어렵다는 얘기는 왜 나오는 걸까요?

마순희: 지성 씨가 취업하려던 당시만 해도 탈북민들이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또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직업이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거니까 주민들이 호의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더구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사건 같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탈북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거든요. 남한 사람들에 비해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성 씨의 경우에는 일을 가리지 않고 지원했는데요. 처음에는 대형 마트 지하에서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을 하게 됐답니다. 그곳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도 지성 씨는 성의껏 열심히 해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됐다는데요. 내가 열심히 하면 누구든지 나를 믿어 주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모집을 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고 면접을 통해서 당당히 입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지금 근무하고 계시는 아파트 주민들이 혹시 선생님이 탈북자인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워낙 책임성이 높고 깔끔하고 성실한 성품이어서 아파트의 사소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고 점검하고 누가 보건 말건 휴지 한 조각, 낙엽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그를 아파트 주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죠.

김인선: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평범하게 경비 일만 하는 분은 아니라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저는 김지성 씨가 북한에서 교원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음악교원이었다는 내용은 그때 가서야 알았거든요. 경비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휴게실이 따로 있었는데 지성 씨가 그 컴퓨터로 작곡도 하는 즉 여가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마침 교대를 마친 시간이라 지성 씨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사랑하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과 두려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소원을 가사에 담은 노래였는데 아직 미완성이긴 했지만 가사와 운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더군요.

김인선: 경비실 사무실에서 음악작업을 한다고 했는데요. 그럴 여유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경비원이라는 일이 힘들다고 금세 그만두는 경우도 많잖아요?

마순희: 힘든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지성 씨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 성심을 다하겠다고 마음 다지던 입사할 때의 초심을 떠올리곤 한대요. 김지성 씨가 웃으면서 한 얘기가 있어요. 6년 전 처음 경비직으로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정말 양심 없이 근무했다네요. 지성 씨가 탈북자라는 것을 알고는 힘든 일이나 험한 일들은 전부 그에게 떠밀었고 부당함을 말하면 오히려 까다롭게 군다고 관리사무소 담당직원에게 말하기가 일쑤였답니다. 억울하고 참기 힘든 적도 있었지만 견뎌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료의 불성실한 근무태도가 주민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결국 퇴사 당하게 되더랍니다. 그때에야 관리사무소 담당직원이 죄송하다고, 그 사람 말만 믿고 당신을 오해했었다고 그동안 마음고생도 많았겠다고 하면서 위로해 주더래요.

김인선: 아무래도 연륜이겠죠? 인생을 오래 살아본 어른이기 때문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반대로 나이가 있기 때문에 힘쓰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경비원 일이 힘들 것 같아요.

마순희: 물론 몸이 힘들 때도 많지만 소신껏 평소 체력관리도 열심히 하고 건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하고 있었는데요. 집에서 근무지까지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걷기도 하고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자전거로 출, 퇴근을 한다더라고요. 다른 탈북노인들은 어렵게 사는 이들을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수급비 수백 달러를 받으려고 일을 안하고 어렵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성 씨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제가 보기에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탈북 어르신이 아닐까 싶어요. 할 일을 다하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그때 음악작업을 한다는데요. 심혈을 기울여 작사, 작곡한 노래가 세상에 나오는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가 반겨주는 꽃피는 요즘 같은 봄날에도 김지성 씨는 레시바로 음악을 들으면서 활기찬 걸음으로 출퇴근길을 걷고 있을 겁니다. 건강관리와 여가생활까지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고 계시는 김지성 씨에게 같은 탈북자로서 그리고 함께 노년을 보내는 동료로서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인선: 70의 나이에도 음반을 내겠다는 또 하나의 꿈을 갖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 김지성 씨의 얘기를 들어봤는데요. 그의 말처럼 자신의 일에 긍지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지성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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