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박용국(가명)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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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가 지역 주민의 집을 방문, 건강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회복지사가 지역 주민의 집을 방문, 건강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 한주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남북 정상 간의 만남이 생중계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선생님은 보면서 어떠셨어요?

마순희: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저희 탈북자들의 심정은 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었고 희망으로 부푼 한 주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오는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멍해집니다. 아무런 제재 없이 그렇게 분계선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탈북민 모두가 안게 된 겁니다.

김인선: 정말 남다르셨겠어요. 저도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왔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탈북민들이 가까운 그 길을 두고 강을 건너고 제3국을 거치며 어렵게 남한으로 오잖아요. 오늘의 주인공 역시 두만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왔다면서요?

마순희: 맞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앓는 엄마를 업고 두만강을 건넌 박용국 씨입니다. 용국 씨는 고난의 행군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살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친척들이 있는 중국으로 건너가게 됐는데요. 몇 년을 중국에서 숨어 살다 보니까 한국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한국에 오다가 3국을 통해서 어렵게 오다 보니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고 해요. 아프신 어머니를 업고서 탈북을 했던 박용국 씨였기에 한국에 와서는 어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치료도 받고 요양도 하시면서 여생을 편하게 보내시도록 제주도를 거주지로 정했다고 해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의 정착이었지만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는데요. 어머니가 척추 수술까지 받아서 거동이 불편하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친자식처럼 지극정성으로 돌보아드리는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느끼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성국 씨는 자신도 그들처럼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제일 먼저 취득했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며 사회복지사의 꿈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김인선: 제가 만나본 많은 탈북민들이 사회복지사의 꿈을 갖고 있더라고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직접 받은 분들이 많아서 일까요?

마순희: 그렇죠. 처음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이 사회복지사들입니다. 정착을 시작하면서 취업이나 진로는 물론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히 돌봐주는 그분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죠. 그래서 좀 안착이 되면 내가 받은 감동이나 배려,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사회복지나 사회봉사의 길에 들어서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인선: 그런데 요즘 탈북민뿐 아니라 남한청년들도 사회복지사에 대한 관심이 많거든요. 시험을 통과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4년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배우고 120시간의 실습을 마쳐야 되는 등 쉽지 않더라고요. 더구나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왔는데 돈을 벌지 않고 공부를 4년이나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부는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더라고요. 박용국 씨 역시 낮에는 일용직으로 일하고 밤이면 야간에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결국은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고 다 해당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박용국 씨도 마찬가지로 자격증을 취득한지 한 1년 만에 33 : 1 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채로 복지관에 취직을 하게 된 거죠.

용국 씨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지역의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들이 평균 수준의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업무인데요. 방과 후 교실 문을 열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와 수학이나 영어 등의 교육을 받을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한답니다. 한 주에 한 번씩은 지역사회의 혼자 살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도시락을 배달하고 어른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또 말동무를 해주면서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도 합니다. 무료한 시간을 어찌할 길 없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경우엔 박용국 씨가 찾아가면 아이처럼 즐거워한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그만큼 용국 씨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섬사람들이 외지인에게 텃세를 부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주도 역시 예외는 아닐 텐데, 용국 씨는 외지인에 탈북민이라서 제주도민과 관계가 좋아지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어디를 가나 텃세라는 건 있지 않나요? 제주도가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심하다하지만 용국 씨는 정착초반부터 진심 어린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던 거죠. 예를 들어 용국 씨가 취직을 하는 데에도 특별한 사연이 있었는데요. 평소 용국 씨가 지역사회의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열심히 동참했었는데요. 그때 친하게 지냈던 어르신 중의 한 분이 심사석에 앉아 계시더라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그 분이 복지관의 이사님이시더래요. 평소 용국 씨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셨기에 당연히 호의적이었고 저런 젊은이는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할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주도 방언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용국 씨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 제주도 말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천직처럼 하고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죠. 제가 복지관에 찾아갔을 때에 복지관 관장님을 만났었는데 ‘박용국 복지사는 우리 복지관의 보배’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 탈북민이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저는 그래서 박용국 씨가 더 자랑스러워요.

김인선: 저도 그렇지만 원해서 시작한 일도, 힘들 땐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거든요. 특히 사회복지사라면 어려운 분들의 사정만 듣게 되는데 한국에 정착하기도 바쁜 용국 씨에게 버거울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지요.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하는 일마다 남들보다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눈치도 보이고 정말 많이 어려웠다고 해요.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 중에서도 탈북자 새내기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둘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지금 그 모든 우려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선임 사회복지사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용국 씨는 사회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나를 바꾸려고 노력해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일부 탈북민들이 이 사회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억울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요. 나는 이 사회를 위해 풀 한 포기 심은 적 없고 벽돌 한 장 쌓은 적도 없으면서 당연한 것처럼 받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생각을 바꾸니까 세상도 다르게 보이더라는 겁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박용국 사회복지사의 말,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슴속 깊이 명심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선: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생기면 안 좋은 일도 같이 따라 오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도 달라질 수 있고 좋은 일도 함께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용국 씨처럼 말이죠.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이끌어준 천직의 길,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박용국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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