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막내딸의 제안으로 탈북하게 된 선생님(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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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의 성공시대] 막내딸의 제안으로 탈북하게 된 선생님(2) 강릉아산병원이 지난 2015년 강릉경찰서와 연계해 경찰수련원에서 북한이탈주민인 새터민의 건강을 위한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박선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선희 씨는 교원 출신으로 북한에서는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서울의 한 지역에서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탈북민들의 정착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선희 씨가 있기까지 참 많은 역경이 있었는데요. 특히 건강문제가 있었죠?

 

마순희: . 맞습니다. 선희 씨는 딸과 함께 2004년에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먼저 국군수도병원에서 종합적으로 건강상태를 점검하는데 그때 선희 씨의 몸 상태는 환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선희 씨는 건강상태를 확인하러 들렀던 병원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탈북민들이 한국정착을 위해 3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선희 씨는 그 기간 중 절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다들 희망에 넘쳐서 한국에 대해 배우고 취업준비로 바쁠 때 선희 씨는 병원의 침상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선희 씨는 건강한 사람들도 정착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몸도 성치 않은 내가 과연 이 땅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인선: 한국정착에 있어서 탈북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가 바로 하나원에서의 합숙기간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직업교육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금융교육, 언어교육 등 다양한 교육이 진행되는데요. 두 달에서 석 달 동안 이뤄지는 이 하나원 생활을 얼마나 충실하게 보내느냐에 따라 안정적인 한국정착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달라지잖아요. 선희 씨의 경우 탈북민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시간을 놓친 셈이기 때문에 초기정착도 어려웠을 테고 무엇보다 심리적인 압박감도 느껴졌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도 하나원 교육기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던데 선희 씨는 절반 이상을 병원에서 생활했으니 오죽했을까요. 선희 씨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놓친 셈이었습니다. 초기 한국정착에 필요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더러 정상이 아닌 아픈 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기에 선희 씨는 일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선희 씨는 한국 정착 시작부터 국가의 생계비를 지원 받으면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생활과 현대적인 의료서비스 덕에 차츰 건강은 회복되었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40대 후반의 선희 씨에게는 취업의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교원생활을 하다가 왔기에 당연히 교단에 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교사로 채용해 주지 않아서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혁명 역사를 기본으로 대부분 국가의 입이 되어 전달하는 수업이라면 남한은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중심의 교육으로 관련 학식이 밑받침이 된 수업이잖아요? 북한과 남한의 교육내용이 달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만 해오던 선희 씨였기에 교사를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한국에서는 교사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선희 씨는 무슨 일을 시작하든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배우지 못 한 것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자면 가장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컴퓨터라는 것을 알게 된 선희 씨는 제일 먼저 컴퓨터 학원부터 등록했습니다. 당시 선희 씨의 집은 인천이었는데 서울에서도 한끝인 노원구에 있었습니다.

 

김인선: 탈북민을 위한 교육기관이 지역마다 있고 선희 씨가 사는 인천에도 있는데 선희 씨는 왜 거리가 먼 노원까지 왔을까요?

 

마순희: 처음이라 모르다 보니 그런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선희 씨가 하나원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 노원구에 많이 살고 있었고 그분들이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고 하니 무작정 따라서 같은 학원에 등록한 것입니다. 인천에도 사방에 컴퓨터학원이 많은데 굳이 노원구의 공릉동까지 가면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희 씨는 전철을 갈아타고 두 시간씩 오가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학원에 다녔습니다.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남들보다 빨리 배웠고 동료들이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점차 친숙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친절한 선희 씨에게 컴퓨터는 물론 일상사에 대한 상담까지 하게 됐고 선희 씨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분들의 경험담이 입소문을 탔습니다. 그 결과 한 탈북민 정착지원협의회에서 선희 씨에게 상담봉사를 요청했고 선희 씨는 탈북민들을 위한 대면 상담과 전화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봉사로 시작한 일을 통해 선희 씨는 보람을 느꼈고 탈북민들에게 정착을 위한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거나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됐다는 탈북민들이 많더라고요. 봉사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도 하는데요. 선희 씨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죠?

 

마순희: . 선희 씨는 상담 봉사를 하면서 누구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보다 그 일이 오히려 자신의 정착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희 씨는 상담을 하면서 탈북민들을 위한 상담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05탈북민정착지원상담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상담을 하다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희 씨는 제대로 된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 기독대학교에 입학해 사회복지와 심리상담학까지 공부했습니다. 선희 씨는 2009년에 석사학위를, 2014년에는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희 씨가 딴 자격증만 수십 개가 된다고 하니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김인선: 다양한 걸 배우고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만 입국 초기부터 선희 씨의 건강이 좋지 않았었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밑바탕이 돼야 가능하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워낙 건강상태가 안 좋았던 선희 씨였는데 이렇게 무리하다 보니 자주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분들이 계셔서 늘 감사하다는 선희 씨입니다. 조금만 무리한다 싶으면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고 하면서 건강관리에 늘 힘쓴다고 하는데요. 혼신의 힘을 다 해 배우는 것은 물론 배운 것을 탈북민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일을 줄일 수는 없다고 합니다. 선희 씨는 다른 탈북민들의 남한정착과 함께 그들이 학업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며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 강의까지 하게 된 어엿한 교수까지 됐습니다. 선희 씨는 2005년에 NK정착지원상담센터를 설립한데 이어 2006년에는 탈북여성들을 위한 성폭력, 가정폭력상담소와 여성쉼터를 만들어 운영했고 동시에 객원교수와 학점은행제 교수, 사회복지실습 담당교수, 상담학과 보육실습 담당교수 등 여러 대학 강단에도 섰습니다.

 

선희 씨의 딸도 선희 씨만큼 열심히 한국생활을 해서 대학졸업은 물론 남한 남성과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일궜습니다. 딸 덕분에 선희 씨는 할머니가 됐는데요. 최근엔 건강이 다시 안 좋아져서 일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탈북 후배들을 위한 상담 정도만 하면서 건강회복에 힘쓰고 있는데요. 올해 선희 씨의 나이가 67살입니다. 살아야 할 날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는 만큼 선희 씨가 본인의 건강을 더 잘 챙기면서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자리를 통해 전해 봅니다.

 

김인선: 맞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젊게 사시더라고요. 선희 씨도 건강하게오랫동안 상담사로, 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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