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은인이 더 많다! 서비스직 이성미 씨 (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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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은인이 더 많다! 서비스직 이성미 씨 (2)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미화원으로 일하시는 이성미 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갈게요. 성미 씨는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과 아들까지 세 식구가 함께 2006년에 탈북해 중국으로 향했는데요. 중국엔 시댁 편으로 친인척들이 있었죠?

마순희: 네. 중국에 친척들이 여럿 있어서 시어머님이 중국을 오가면서 쌀이며 물건을 받아 온 덕분에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큰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요. 어려운 시기가 길어지면서 시어머님이 중국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않게 됐습니다. 그 일로 남아있는 가족은 보위부의 집중 감시 대상자가 됐는데 노력혁신자로 소문난 성미 씨의 남편에겐 그게 큰 충격이었는지 중풍으로 쓰러지게 됐습니다. 성미 씨는 남편과 아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중국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남편과 17살 아들까지 함께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성미 씨 남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보위부의 감시가 조금 느슨해졌기에 그 틈을 이용했습니다. 산길을 넘고 강을 건너고 위험한 순간순간들을 넘겼지만 무사히 중국에 도착했고 남편은 중국의 친척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호전됐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친척집에 숨어서 살 수 없었기에 성미 씨 가족은 중국에서 만난 선교사의 도움으로 2008년에 한국에 입국했고 경기도 수원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성미 씨는 44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청소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식당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성미 씨의 모습을 보고 한 번 성미 씨를 고용했던 분들은 일만 생기면 성미 씨를 먼저 찾았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탈북 선배들 사이에서도 성미 씨에 대한 신뢰감이 커졌고, 그 중 정착 선배이자 봉사단 회장으로 인맥도 넓은 분은 성미 씨에게 공공기관에서 환경미화원을 모집한다는 정보를 알려줬습니다. 경기도와 수원시가 설립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분야 별로 일할 직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사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탈북민은 이런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미 씨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회장님이 알려준 덕분에 공공기관의 미화원으로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까지 거쳐야 채용되기에 떨렸지만 성미 씨는 지원을 했고 최종적으로 선발이 됐습니다.

김인선: 한국에서는 탈북민들의 사회적응을 돕기 위한 탈북민 특별 채용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많은 탈북민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꽤 있습니다. 그런데 성미 씨는 물론 주변의 도움이 있었지만, 시험에는 오직 실력으로 당당히 합격한 거잖아요. 그런 걸 보면 운도 자신이 만드는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럼에도 성미 씨는 겸손하게 면접관이 잘 봐주셔서 합격한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일하는 미화원의 경우 일하다가 다쳐도 회사와 사회로부터 각종 보장을 받을 수 있고 고용도 안정적인 4대보험이 적용되는 곳이라 입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 성미 씨가 월드컵 경기장으로 출근할 때 어떻게 그런 곳에 다 들어갔느냐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성미 씨는 자신이 더 열심히 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입사 후에 시작하게 된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미화원 일은 서비스 직종으로 하루에 2000명 정도의 손님들을 맞이하며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미 씨는 타고난 성실성과 온화한 성품으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점차 찾아오는 손님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며 큰 무리 없이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주변 탈북민들은 직장생활을 할 때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과 불이익도 당하기도 한다고 했지만, 성미 씨는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이 오히려 따뜻하게 대해 주어 적응이 쉬웠다고 합니다. 가끔씩 말투 때문에 약간의 무시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도 성미 씨는 그냥 가볍게 넘겼습니다. 남편, 아들과 함께 한국에 정착해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내가 아직 서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좀 더 잘해야지’ 하면서 정착 초반, 동네에서 상가 청소 일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갖가지 청소도구와 세제들 사용법을 모르거나 헷갈려서 곱절을 힘들게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런 성미 씨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도 모르고 무슨 청소를 하겠느냐’고 상가 관리원이 말했습니다. 성미 씨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가 몰라서 그런 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도구와 세제 사용법을 더 정확히 알고 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지나갔더니 얼마 후에는 성미 씨가 얼마나 깨끗이 쓸고 닦고 했는지 상가 건물이 달라져 보인다며 상가 관리원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인선: 긍정적인 성격에 일까지 잘하니 회사생활에 적응을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는 참 좋은데요. 앞서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근무는 서비스 업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했었잖아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면할 때는 또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요?

마순희: 성격 좋고 일 잘하는 성미 씨는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스포츠센터로 배정이 됐는데요. 툭툭 튀는 함경도 말투 때문에 성미 씨는 일하면서 자연히 말을 삼가게 되고 될수록 적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간혹 어떤 손님들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져서 오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성미 씨에게 손님들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민원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답니다. 성미 씨는 간단한 대답은 괜찮은데 길게 이야기할 때면 북한 말투가 나오기에 말을 적게 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직 직원이 탈북민이라는 게 무슨 감추어야 할 일이냐고 앞으로는 당당하게 마음대로 말하면서 떳떳하게 일하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시더랍니다. 눈물겹게 고맙던 그 일을 성미 씨는 지금도 잊지 못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후부터는 더 열심히 더 당당하게 밝은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성미 씨에게도 힘든 순간이 많았을 텐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 내셨네요. 성미 씨의 숨은 노력이 얼마나 컸을 지 느껴지는데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아픈 남편 대신 성미 씨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성미 씨의 남편은 중국에서 치료를 받긴 했어도 완전히 완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건강으로 인한 고비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완쾌되어 가장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였지만 북한에서 기술자였던 덕분에 쉽게 취직이 됐습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숙련공으로 능력을 인정받게 됐고 6년차에는 차장으로 승진해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 역시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자기 적성에 맞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금속가공기계를 운전하고 있는 당당한 회사원 아들과 남편까지,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성미 씨도 더 열심히 가정과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성미 씨는 한국에 와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좋은 일자리, 돈 많이 버는 일자리보다 내가 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그 곳이 바로 내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성미 씨를 통해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반드시 성공이 뒤따른다는 것을 전할 수 있어서 제 마음도 뿌듯해집니다.

김인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변에 은인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성미 씨입니다. 운이 없다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푸념하는 대신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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