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북한 호위사령부 간호장교 증언, 여군들 인권 <1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5.08
CHOI_YUJIN_b 지난 1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 회견하고 있는 최유진 씨.
RFA PHOTO/ 이현기

제16회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일원서 진행됐는데, 행사에 참가한 탈북자 20여 명은 자신들이 북한에서 겪었던 처절한 삶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미국 의회 의원과 미국인 세계 인권단체들에 생생하게 전달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자유주간 행사 기간 중 5월 1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북한 호위사령부 간호장교로 탈북 전까지 일한 최유진 씨와 북한 여군들이 겪는 열악한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호위사령부(김정일을 경호하는 경호처)에서 간호장교로 6년 동안 일하다가 탈북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에서 여러 방송 활동도 하면서 잘 정착해 나가고 있는 탈북민 최유진입니다.

북한인권주간 행사에서 어떤 내용 증언하시나요.

: 북한군에 대해 증언하러 왔는데요. 특히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요. 사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는 아주 애국적인 나라다. 자본주의는 썩어 병든 사회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자본주의가 더 좋은 거에요. 여성들의 모든 생활에서 좋고, 지금처럼 ME TOO(나도 당했다)전쟁이 너무 확대돼서 여자들을 성희롱한다는 게 금지가 되어 있더라고요. 근데 북한에서는 사실 여성들이 인권 유린을 당해요.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농락당해도 어디다 호소할 데도 없는 걸 자주 봐 왔거든요. 그래서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증언도 하고 북한에서 여성들 얼마만큼 인권 학대를 받는지에 증언자로 나섰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 직접 본 것 증언해 주시죠.

: 제가 군사 복무를 할 때 한 1년 정도 됐거든요. 저랑 같은 나이의 친구가 한 명이 왔어요. 군 병원에 입원했어요. 저는 간호장교로 병원에서 일했거든요. 그 친구가 저보고 나는 집에 가고 싶다. 왜 집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생긴 것도 예쁘게 생겼고, 사실 저도 올 때 5과라는 데서 뽑혀 오거든요. 여자들이 키 크고 예쁘게 생기면 무조건 김정일이 다 자기 주위로 끌어가거든요. 평양에 다 데려가요. 그래서 저도 키가 큰 탓에 1미터 68인 덕에 평양에 올라가게 되었고, 그 친구도 지방이었는데 키가 크고 예쁜 탓에 끌려서 왔는데 그 여자는 특각 관리원이 됐어요.) 특각 이라는 게 김일성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리직원으로 있었는데 그 친구가 말하는 게 언제 올지 모르는 3부 자를 기다리는 게 그들의 임무였고, 외부에 나갈 수는 없고요. 그리고 가끔 간부들이 오는데 그때마다 성 접대를 한다고 말해요. 그게 너무나도 힘들다고 나는 가고 싶다면서 어떻게 부모와 연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래 몰래 연락하게끔 해 줬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 부모님께서 와서 돈을 정말 많이 들여서 식물 신경 실조 증이라는 병명을 만들어서 의가사 제대, 이제 아파서 다시는 군사복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떼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또 다른 여군의 이야기도 증언해 주세요.

: 그때 제가 처음으로 느꼈던 게 나도 어쩌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거든요. 그 두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병원에 어떤 여자가 입원했는데 그 여자는 병원에 실려왔어요. 남자 둘이서 붙잡아 실려왔는데 다리 가운데로 피가 너무 흘러서 겨울에 두꺼운 동바지를 입었는데 바지가 전부 피로 젖은 거에요. 근데 남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우리 금방 알아봤거든요. ‘유산’이다. 그래서 침대 위에 눕혀 놓고 수술을 하려고 봤더니 출혈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할 수가 없게 됐어요. 그래서 지혈을 시키고 시간이 조금 필요했는데, 그때 그 수술을 집도하는 담당 의사가 너는 여자라는 게 몸 관리를 제대로 못 해 가지고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뭘 했느냐며! 여자만 욕을 하는 거에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전화가 왔어요. 담당 의사가 가서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서 차려자세, 정중한 자세를 취하는 거예요. 그래 저는 옆에 있다 지켜봤는데 큰 간부가 이 여자를 임신 시켰는데, 그 큰 간부가 전화를 걸어와 담당의사에게 ‘조용히 처리하라고!’전화가 온 거에요. 그래 담당 의사가 조용히 처리했어요.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 조용히 하자!해서 ‘네’ 했는데 수술이 끝나서 한 시간도 못 되어서 저희에게 커다란 선물 박스가 두 개 온 거에요. 뇌물박스가요. 그 속에 간식들이 들어있고, 그 외 술과 담배도 많이 들어있었고요. 술과 담배는 담당 의사가 갖고 간식은 제가 나눠 가졌어요.

유산한 여군에게 어떤 사유가 있는지 이야기 들어봤는지요.

: 훗날 그 여군에게 물어봤어요. 왜 이 상황이 되도록 그렇게 가만히 있었느냐고요 그녀가 답변하기를 ‘자기는 집에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그러나 저와 같은 동기들은 입당하는데(북한에서는 조선 노동당에 입당해야 앞으로 사회발전에 큰 도움을 주니까 )그래 그 여군은 노동당 당원이 되고 싶었다고! 그런데 당원이 되려고 했더니 돈이 없었고, 집안의 배경도 나빴고 이러니까 자기는 그냥 당원을 시켜줄 수 있는 간부에게 몸을 허락한 거에요. 그래서 겨우 입당하게 됐는데 그 준비 기간에 임신한 걸 알게 됐데요. 그런데 그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아기를 지우려고 병원에 입원하면, 그게(입당) 무효가 되니까 배를 감싼 채로 그냥 훈련을 받은 거에요. 당원이 되기 위해서요. 그러다 유산이 된 거에요. 그래 병원에 실려왔는데 그 여자는 끝내 조용히 집에 보냈어요. 그래서 그녀는 입당도 못하고 갔거든요. 그런 걸 보니까 더는 못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빠에게 연락해서 저 더 못 있겠다, 그래 부대를 탈퇴했는데 그런 인권 유린의 상황을 자주 봤어요.

북한 여군들이 겪는 인권상황을 증언해 주시지요.

: 네 인권이라는 게 사실 여기(한국서)에 보면 여성들이 생리하거나 그럴 때는 모든 걸 도와주잖아요. 아플 때는 약간 휴가도 주곤 하는데 북한군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리고 철저한 위생상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여자들이 따로 빨래방이라든가 옷을 널어 놓을 수 있는 방, 속옷 같은 것은 사실, 여성들이니까 따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런 것 상관없이 공동으로 되어 있어서 남자들도 지나가다 놀리고 속옷이 걸려있네 할 정도로, 그래서 세탁을 할 때 속옷을 걸어놓고 위에 다른 옷을 걸쳐 놓아야 하는데 그러면 속옷에서 썩은 냄새가 나곤 하거든요. 그런 것도 제대로 돌보아 주지 않았고요. 그리고 여자들이 배 아파서 고통을 호소해도 무조건 훈련에 참가시키고 장병이 지나가다가 엉덩이 만지고 가슴을 쑥 만지면서, 오죽했으면 이런 소문까지 돌았어요. 야 친구들이 학교를 갈 때, 여자아이들이 군대를 나갈 때(졸업 말기) 남자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군대 나가지 말라고 여자들이 군대를 나가면 그냥 다 성희롱을 당하고 온다. 어깨에 손을 언저 놓으며 간부들이 ‘가슴에 별을 박아야지’ 이런데요. 그리고 쑥 내려와서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서 ‘가슴에 당증을 품어야지’ 하면서 이런 소문까지 날 정도로 북한의 여자들에 대한 인권이 너무나 한심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북한에는 그게 인권인지 아니면 그게 정당하고 나쁜 건지 그걸 전혀 모르거든요. 솔직히, 인권이라는 것 배우지 못했고, 인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니까요. 여기서는 한 번 연애했다 헤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북한에는 이혼도 아니고 그저 만났다 헤어진 사이도 엄격하게 본다는 거지요. 그 정도면 북한여성들이 어느 만큼 인격 존중받지 못하다는 것을 아실 것 같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자유주간 행사 기간 중 5월 1일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북한 호위사령부 간호장교로 탈북 전까지 일한 최유진 씨와 북한 여군들이 겪는 열악한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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