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수용소 수감자 정광일 씨 증언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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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정광일 씨가 요덕수용소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
탈북자 정광일 씨가 요덕수용소 생활을 증언하고 있다.
RFA PHOTO/이현기

요덕수용소 수감자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가 워싱톤 동포들에게 지난 18일 안보강연을 했습니다. 정광일 씨는 질의 응답 증언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데 최근에는 한 사람이 강을 건너는 데만 1만 달러가 든다면서 돈을 많이 주면 데려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 송금은 15분이면 가족에게 전달되며, 가족이 받았다는 것은 30분 이내에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에 친한파가 있느냐는 질문에 친한파는 없고, 최근에는 남한을 잘사는 나라로 동경하고 있고, 북한 젊은이들은 케이 팝(K-POP)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을 동경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요덕수용소 수감자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가 한인들과 질의 응답식으로 증언한 주요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참석자 김 모 씨는 이산가족이라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확실하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 지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 북한에 있는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습니다. 없는 것은 아니고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데 엄청난 돈이 듭니다. 강을 건너는 데만 1만 달러 입니다. 두명 건너면 2만달러입니다. 작은 돈이 아니잖습니까? 탈북자들은 그래서 엄두를 못 냅니다. 예전 같으면 하나원 한 기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30-40명 밖에 안됩니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중국에 인신매매 당해 오랫동안 생활하던 탈북자들이 오는 경우가 많고요. 간혹가다가 정말 내 형제를 데려 오기 위해서 돈을 벌어서 보내줘서 오는 경우가 있고요. 돈을 많이 주면 데려올 가능성은 큽니다.

탈북을 하게 되면 남아 있는 식구들은 어떻게 되며 그분들은 또 정치범 수용소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처벌을 받는지

: 제가 탈북해 적극적인 인권 활동은 2007년도부터 했는데 그때 당시 저의 어머니가 생존해 계셨습니다. 어머니와 제 동생이 북한에 있습니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요.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실 북한이 고향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할아버지는 경남 태생이시고요. 1930년대에 중국에 가셨더라고요. 그래 저는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년에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북한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어머니가 그 당시 보위부에 끌려가서 사실 내 친 아들이 아니고 중국에서 데려온 아이라고 말을 했더라고요. 그래 간신히 그때는 벗어났습니다. 북한 탄압으로부터요. 내 아들이 아니고 중국에서 데려온 자식이라고 이야기 한걸로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지난 9월 13일에 왔는데요. 북한에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동생이 한국에 와 있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까?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사이트에 저에 대한 동영상을 만들었답니다. 가만두지 않겠다고요.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있고 국제사회에 나가서, 인신매매하다가 잡혀가서 교도소 생활을 했는데 정치범 교화소에 있었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그렇게 매도를 했더라고요. 그 매도한 목적은 올해 6월 28일 한국에 있는 북한인권 유엔사무소에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 명단을 제출했습니다. 바로 그 문제를 거론하면서 비난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동생을 끌고 다니면서 저를 모함하는 동영상을 찍으려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엄청 아프더라고요. 분명히 찍을 것 같습니다. 보면 북한이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의 동생 동영상을 찍어서 형을 험담하게, 자기 친동생이 자기 친형을 험담하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당국이 솔직히 한국에서 아무런 활동하지 않으면 탄압이 없지만, 인권활동을 하는 가족에 대해서는 엄청난 탄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금한다는 데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 한국에서 북한에 보내는 송금 15분이면 북한에 있는 친지에게 돈이 도착합니다. 북한에 많은 화교들이 살고 있습니다. 화교들이 장사를 하다보니까 인민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화교의 친척이 있습니다. 그 친척이 한국에 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북한 친척에게 돈 100만 원을 보내려고 하는데 어느 계좌에 넣으면 되느냐고 전화하면 그 사람들이 계좌를 알려줘 입금시키면 중국에서 컴퓨터를 통해 임금 확인을 합니다. 입금이 됐다고 하면 북한에 자기 친척에게 100만 원이 입금됐으니까 본인에게 주라고요. 그래 수수료는 30%입니다. 그래 30분이면 북한 가족들이 돈을 받았다는 것까지 확인이 됩니다.

북한에 친한파가 있는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 북한에 왜 친한파가 없느냐고요. 친한파라고 하면 민주주의 세력이지요. 그런데 민주주의 세력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60년대 70년대를 북한에서 다 겪은 세대입니다. 그러다보니까 학교 교육부터 시작해서 반미 반제 교육을 많이 받다 보니까 남한에 대해서 엄청남 혐오감을 가지고 살아왔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어떤 사람이 생겨났느냐면요. 친한이라기 보다도 남한을 동경하는 사람들, 나도 남한에 가면 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사상적 이념적인 것 보다도 남한의 드라마를 보든가 그런 사람을 친한사람이라고 말하게 되겠지요. 특히나 젊은 아이들 위해 저희가 지금 북한에 미디어를 보낼 때 K-POP 등을 많이 보냅니다. 그런데 북한 젊은이들이 엄청 좋아합니다. 그 유행을 따르고 거기 나오는 옷을 입고 다니고 그러니까 그들 자율적으로 친한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광일 씨는 노체인 즉 사슬을 끊어라 단체가 하는 일도 소개합니다.

: 저희 단체 같은 경우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나와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 번 왔다가는데 지금은 만 달러가 듭니다. 왔다가는 비용을 국경경비대에 돈을 주고 통과를 하려고하면 그래 요즘은 그렇게는 안하고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첨단기자재를 이용해서 약속된 지점에 갔다 놓으면 그 사람들이 와서 가져가고 이런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된 이야기 입니다.

: 솔직히 북한주민들이 이제는 환멸을 느끼는 게 북한의 영상 매체들이 순수 다 수령 찬양 아니면 지도자에 대한 뭐 충성을 하는 것들을 위주로 하다 보니까 지루 감을 느끼고 환멸을 느끼다 보니까 한국에 드라마에 매혹되어서 친한적인 성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북한에서 휴대폰 전화 사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 북한에서 현재 쓰고 있는 휴대폰를 가지고 절대로 외부와 통화를 할 수 없습니다. 차단되어 있습니다. 국제전화는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국경연선에는 중국 통신사에 가입된 휴대폰이 북한에 넘어가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한 5천 대 가량 있는데 지방별로 나진선봉도 있지만, 샛별, 온성 등에요. 한국에서 중국에 전화하듯 하면 북한에서 받습니다. 그래 웬만한 탈북자 가정에는 핸드폰을 하나씩 보내 줍니다. 브로커들 통해서요. 충전을 중국을 통해서 요금을 지불합니다. 그래 북한에서 엄청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시내에서는 통화할 수가 없습니다. 전파방해를 해 놓아서 그리고 탐지를 해서 바로 바로 잡아냅니다. 그래 그 휴대폰을 가지고 한 50리 정고 떨어진 곳에 가서 전화 통화를 하고요. 그러고 이제는 그런 휴대폰이 많이 들어가다보니까 얼마전에 나진선봉 수해 장면 같은 것도 저희 단체에서 우리 회원들이 북한에서 찍어서 보냅니다. 그래 우리가 정보를 들려보내는 것 뿐 만 아니라 북한에 있는 내부정보를 내 오기도 합니다. 우리 한국에 있는 언론 매체라든가 여러 곳에 보내기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요덕수용소 수감자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가 한인들과 질의 응답식으로 증언한 주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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