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의 만행과 반전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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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오늘도 전 시간에 이어 6.25전쟁 당시 북한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뤄보겠습니다.

기자: 김태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민간에 민화라는 게 있습니다. 또 그리고 과거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라는가, 아니면 ‘이조실록’ 같은 거. 이건 그때 사실, 현실을 모두 기록한 자료입니다. 또 ‘콩쥐팥쥐’라든가, ‘아라비안나이트’, ‘천 하루밤 이야기’라고 하죠? 유럽에서 ‘일곱난쟁이와 공주’ 이런 구전민화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통틀어 역사적인 자료가 됩니다.

그게 역사를 만들어 내는 거고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도 우리가 직접 체험한 것, 또 우리가 그때 부모님들과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이런 것들을 모두 기록해 놓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과정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지금도 전쟁이라는 게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끔찍하지 않았나? 인민군이 나오고 또 인민군이 후퇴도 하고, 미군이 올라갔고 이렇게 했으면 수많은 학살도 벌어졌고 싸움도 벌어졌고 그렇게 했을 텐데…

김태산: 옳습니다. 제가 있던 자강도 룡림군 산골은 미군도 들어오지 않고 인민군대만 후퇴하면서 들어왔는데 오히려 인민군한테 우리 아버지가 죽을 뻔 하고 피해를 많이 보았대요. 북한은 그런 걸 숨기고 있지만 우리 아버지도 먼저 세 개부대가 가는데 밥을 다 해 먹였는데 또 들어오더니 밥을 해 달라니까 신경질을 썼대요. “아니, 쌀도 없는데 다 해 먹였는데 우리도 굶겠는데 어떻게 밥을 또 해내라고?” 그러니까 인민군대 별 하나 단 사람이 “이 새낀 나쁜 놈의 지주새끼”라고 하면서 마당에 내다 놓고 쏘겠다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막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 “집에 있는 것 다 가져가도 좋다 거짓말 했으면 쏘라, 거짓말 아니다 다 뒤져 보라”하니까 뒤져보더니 정말 쌀이 한 톨도 없으니까 “그럼 없으면 없다고 말할 것이지 왜 신경질을 쓰냐? 콱 쏴서 죽이려고 하다가 여편네가 곱게 생겨서 참는다” 막 그러고 갔다는 거예요. 저도 그때 북한에 있으면서 그 소릴 듣고도 감히 나와서 그런 말을 못했어요. 인민군대가 우리 사람들을 죽였다면 그건 뭐 우리가 잡혀 갈 일이니까.

그러니까 전쟁 시기 우리 자강도 산골에서만은 인민군대한테 피해를 입었고 인민군대가 들어갔다가 다시 재 진격 할 때에는 중국군대가 굉장히 빠글빠글 밀려나와 가지고는 가마 큰데다 걸어서 놓곤 빨간 수수로 밥을 해 그걸 한 사발 퍼주면 온 동네 다 돌아다니며 밥을 먹고, 변소에가 볼일을 보면서도 먹더라고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가 “참 중국 사람들은 사는 꼴이 더럽더라”고, 중국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좀 그렇겠지만 어쨌든 위생적으로 불량하고 모든 것이 깨끗지 않더라고… 우리 부모들은 인민군대한테 혼나고 중국 지원군한테 혼나고, 그걸 이야기해서 저도 동네 아이들과 쑥덕쑥덕 말을 하면서도 드러내 놓곤 말을 못했죠.

기자: 네, 6.25전쟁 역사들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요. “머저리 폭동”이라고 있습니다.

김태산: 아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기자: 1951년 6월 25일, 북한의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난 거죠. 반전시위가 일어난 겁니다.

김태산: 51년 6월 25일, 한창 전쟁을 할 때네요?

기자: 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다고…

김태산: 그게 무슨 폭동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입니까?

기자: 이게 왜 이런 폭동이 일어났냐 하면 외아들인 사람들, 막내인 사람들, 또 금방 결혼한 사람들을 산속에 많이 숨겨놓았다는 거예요.

김태산: 네, 옳습니다. 그때 북쪽에서 인민군대에 나가기 싫어서 도망치고, 숨고, 손가락까지 자르고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건 잡으면 무조건 (총으로) 쏘았어요.

기자: 네, ‘10.4 후퇴’ 있죠. 인민군이 북으로 후퇴를 하면서 산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 숨어있던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훗날 (한국군) ‘치안대’에 많이 가담했다는 겁니다. 그랬다가 이 ‘치안대’에 가담했던 사람들, (인민군 재진격에) 도로 산속에 들어가 숨은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때 총을 가지고 있었고, 이게 어떻게 서로가 일정하게 연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북한이 그런 폭동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지 않습니까.

김태산: 이자 그 산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주모가 돼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겁니까?

기자: 네, 전쟁을 빨리 끝내라, 우린 집에 가고 싶다, 이렇게 전국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김태산: 전국에 동시에 일어났다는 겁니까? 그럼 누가 지도자가 있었네요. 결론은…

기자: 네, 누군가가 있었다는 거죠. 조직이 형성됐고, 52년도에 박헌영과 이승엽을 잡아서 재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을 때에 그 (폭동에 대한) 책임을 박헌영과 이승엽에게 돌렸대요. 그런데 북한은 지금 북한은 그(폭동에)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북한의 ‘3.8경비여단.

김태산: 맨 처음 최현이 그 여단장을 했죠.

기자: 네,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낙동강까지 갔다가 제일 먼저 후퇴를 했습니다. 낙동강에서 제일 먼저 패배를 한 게 이 사람들 아닙니까? 3.8 경비여단이 제일 1선에서 전쟁을 밀고 나가다가 낙동강에서 제일 먼저 패배하고 후퇴한 부대입니다. 그 3.8 경비여단에 있다가 부상을 입고 더는 군에 못나가게 된 이 사람들이 사태가 이렇더라, 인민군이 (평민을) 너무 많이 죽이더라, 그리고 51년도에 폭동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또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분 역시 51년도에 “머저리 폭동”이 있었다. 그런데 평양에서는 이런 폭동이 없었다. 평양이나 주요 도시보다는 주로 산간지대에서 크게 일어났다. 그리고 산간지대 일부 지역을 그 사람들이 다 장악하기까지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김태산: 아, 그러니까 숨어있던 사람들, 평양 쪽은 산간지대가 없으니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 강원도 이런 산속에 숨어있던 사람들을 위주로 폭동이 조직됐군요.

기자: 네,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자위대를 무어 마을을 방어하고 인민군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리고 그때에도 인민내무군(경찰)이 있었대요. 이 내무군들을 마구 쫓아내는 일도 있었다고, 그런데 이게 지금까지 북한이 계속 숨겨오고 있는 사실이죠.

김태산: 그렇죠. 네, 옳습니다 그거 가만 놓고 보면 참 불행한 일이지만 50년대 전쟁흔적이 이젠 거의 다 가셨다고 볼 수 있겠죠. 다른 나라의 전쟁 흔적을 보면 베트남 같은 게 아직 지뢰를 많이 묻어서 지금도 지뢰 피해를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한반도 전쟁 같은 경우엔 이젠 거의 다 가셨다고 볼 수 있겠죠.

기자: 그, 지금은 새로 온 탈북자들과 가끔씩 밥도 먹고 이렇게 경찰청이나 남북하나재단 이런데서 탈북자들을 위한 모임을 자주 조직하지 않습니까? 이런데 따라 놀러 가면 금방 왔다는 탈북자들이 많거든요. 그분들하고 물어보면 아이고 이젠 6.25전쟁 미국이 일으켰다는 사람이 없다고 웬만한 도시사람들은 다 안다고, 혹 농촌에서 정말 바깥도 못 나와보고 이런 사람들이나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지 웬만한 사람들은 이젠 다…

김태산: 이젠 정보유입이 많이 된다는 거군요. 중국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많이 유포시키기 때문에 정보유입이 여기보다 뜨면 하루 이틀 뜨지, 여기는 인터넷에 앉아서 미국이요 어디요 여기저기를 다 볼 수 있지만 북한은 그저 순수 귀로 듣는 거지만 옛날보다 몇 십 배 빨라진 거죠.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정말 참혹했던 6.25를 다시 기억해보자. 정말 이렇게 나가는 것이 옳겠냐? 나는 남이나 북이나 우리가 그때를 다시 기억하기 위한 운동, 그래서 무언가 교훈을 찾기 위한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면 정말 민족이 다 같이 부흥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남북한 주민들 그 때를 잊지 말고 서로가 대화의 길을, 손을 잡는 길로 나와야 하지 않냐,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