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피라미드 게임, 남한판 계급사회
2024.04.23
[기자]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티빙 자체 제작 한국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서열을 나누고 합법적 왕따를 만들기 위해 비밀투표를 진행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드라마가 의도한 사회비판 메시지를 살펴볼 건데요. 오늘도 김헌식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우선 이 드라마를 아직 못 보셨을 청취자들을 위해 드라마에 등장하는 비밀투표 ‘피라미드 게임’이 어떤 건지 간략히 설명해 주시죠.
[김헌식]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5교시 특별활동 시간에 이루어지는 인기투표인데요. 한 달에 한 번 득표순으로 학급 내의 서열을 정하고 최하위인 F등급에 해당하는 학생을 합법적으로 왕따시키는 게임입니다. 구체적으로, 모든 학생은 원하는 사람 5명을 선택해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이루어지는 해당 시간에 교실에 없는 사람은 투표할 수도, 투표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참여하게 되는 반강제적인 상황이죠. 기권하거나 투표를 가장 적게 받은 학생이 F등급이 되고요. A 등급은 20표 이상, B등급은 8표 이상, C등급은 5표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F등급이라고 해서 아무나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A등급 혹은 A등급의 허락을 받은 소수의 아이만 F등급을 괴롭힐 수 있고, 괴롭힘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겉으로 보이는 곳에 상처를 내지 않은 선에서만 가능하다는 건데요. 주인공인 성수지는 F등급이 되면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도망가고 교무실에도 기웃거리지만, 끔찍한 폭력이 멈추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기자] 주인공인 성수지는 전학 오자마자 가장 낮은 등급인 F를 받고 왕따를 당하면서 이 게임이 근본적으로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분석하게 되는데요. 본인을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일당 중 한 명인 방우이가 백하린이 부르는 콧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과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걸 보고 이 게임의 주동자는 백하린이라는 걸 눈치챕니다. 성수지는 백하린에게 다가가 슬쩍 이 게임이 탄생한 이유를 묻습니다.
[성수지] 저기 뭐 하나 더 물어봐도 돼? 내가 이 반에서 말 걸 사람이 전멸이라.
[백하린] 그럼. 뭔데?
[성수지] 이 게임을 만든 건 누굴까? 아니, 왜 이딴 게임을 만들었을까? 아, 나만 궁금해? 만약에 만약에 너라면 왜 그랬을 것 같아?
[백하린] 재미있어서.
[성수지] 재미?
[백하린] 당하는 나를 보는 눈들 말이야. 파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 애들은 자기가 어떤 눈으로 F를 보고 있는지 절대 모르겠지. 파내서 직접 보여주고 싶어. 아, 눈이 없어서 못 보려나? 그럼 결국 영원히 모르겠네. 그게 그냥 웃기고 재미있어. 라고 즐기고 있다면 진짜 무섭다, 그렇지? [성수지] 싸패같은데. 소름. 생각해 봤는데 그럼 왜 나야? 명자은도 있는데 굳이잖아. 전학생인데 F가 된 건 아예 싹을 밟아놓으려고?
[백하린] 글쎄. 그런데 수지야, 네 잘못은 아니야.
[성수지] ‘백하린, 생각보다 더 기괴해’
[기자] 지난 시간에 “백연여고의 ‘피라미드 게임’은 사회의 축소판 같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그럼 게임이 탄생한 계기도 사회와 닮은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피라미드 게임에서 ‘피라미드’라는 이름부터 위에는 좁고 밑에는 넓은 모양이기 때문에 소수가 지배하는 사회 질서를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 계급사회의 축소판적 성격을 분명히 띠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A등급에 속하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금수저 즉,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이고요. 그 안에서도 재력과 권력의 규모에 의해서 서열이 또 세분화되죠. 만년 최다 득표자인 백하린 같은 경우에는 학교를 소유한 백연그룹 후계자죠. 현실 계급 구도의 최상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임의 주동자인 백하린은 다수의 학생을 조종하면서 나머지 등급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학교폭력과 계급의 관계를 성찰하는 작품은 이미 많지만, 상당수는 지배층의 권력 전시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할애하는 측면이 있는데요. 피라미드 게임은 권력을 쥔 가해자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방관자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 계급사회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소수 권력층 외에 많은 이들이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에서 뭔가 이득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관점에서 피라미드 게임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자] ‘피라미드 게임’ 드라마 속에서 특히 방관자들의 입장을 조명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F등급인 성수지와 명자은이 교실에 없으면 A, B 등급인 사람들이 D등급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D등급인 학생이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표지애] 야, 너 뭐야? 쉬는 시간마다 없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너희 때문에 우리가 피해 보는 거 몰라? 너랑 명자은 때문에 승이가…너 대신에 우리가 당하면 책임질 거야?
[기자] 수지는 교실에서 승이가 사라진 걸 눈치챕니다.
[성수지] 미쳤나?
[표지애] 뭐?
[성수지] 내가 왜? 너희는 죽어도 싫은 걸 난 때리며 맞고 괴롭히면 ‘자, 하세요’ 대기라도 타야 돼? 너희 안전하라고, 내가 왜?
[표지애] 넌 F잖아! 우리 밑이잖아. 꼬우면 네가 등급이 높아지던가.
[성수지] 야, 표지애!
[기자] F등급이 교실에 없자 학교폭력의 주동자들은 D등급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건데요. 이 부분은 어떤 모습을 투영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헌식] F등급이 공식적으로 괴롭힘을 받게 되는데요. 성수지는 ‘F등급을 없애면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D등급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D등급이 F등급에게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또 백하린은 체육 수업 도중에 수행평가를 빌미로 피구 경기를 이용해서 D등급 학생들을 마치 F등급 마냥 취급합니다. 그렇지만 수지와 학생들은 재치를 발휘해서 자칫 D등급 내부에서 상하 계급이 나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에 공을 잡고 시간 끌기를 해가지고 결국에는 하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이로써 F등급이 없으면 D등급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하린의 일방통행식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암시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학교폭력 주동자들이 D등급들을 괴롭히게 되니까, F등급이 없더라도 그 위 등급에 해당하는 D등급들이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결국에는 피라미드 게임 자체를 없애는 것이 해법이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기자] F등급이 사라지면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D등급들에 고난과 수모가 돌아오기 때문에 피라미드 게임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잠시 드라마의 배경음악 듣고 돌아와서 내용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피라미드 게임 OST)
[기자]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이쯤 되면 이 피라미드 게임은 A, B등급을 제외한 다수에게 불리한 게임인 것처럼 보이는데 ‘왜 아무도 게임의 항의하거나 이의 제기하지 않을까?’ 궁금해지는데요. 그 이유도 드라마에 등장합니다.
[표지애] 맨 처음부터 반이 이랬던 건 아니야. 스펙 좋은 애들이 많긴 했지만, 반 분위기는 평범했달까. 그런데…
[기자] 백하린을 따라 F를 괴롭히는 일당 중 한 명인 김다연이 1년 전에 반장에게 이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김도아] 반장, 우리 심심한데 다 같이 게임 하나 안 할래?
[표지애] 시작은 그거였어.
[성수지] 김다연? 백하린이 아니라?
[표지애] 하린이? 아니 하린이는 그냥 지켜봤어.
[기자] 이렇게 피라미드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서도아] 한 달간 고마웠다고 생각되는 친구한테 투표하면 돼. 그리고 표를 많이 받은 애들한텐 작은 특권을 주는 거야.
[표지애] 시험 기간 주번 제외, 수행평가 순서 선택권, 점심시간 식사 우선권. 그런 특권이 점점 변해갔어. 나보다 등급이 낮은 애들을 깔볼 특권. 그때부터 반 분위기가 바뀌었어. 차별이 생겼어. 그리고 폭력도.
[성수지] 잠깐! 처음부터 정해놓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자가 발전한 거라고?
[표지애] 어? 어. 그냥 자연스럽게.
[기자] 그러니까 결국 본인이 C, D등급인 학생들도 특권을 누리고 싶어서 이 게임이 계속되길 은근히 바랐다는 건가요?
[김헌식] 그렇죠. 계급이 형성되면 특권이 나눠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C, D 등급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F등급에 해당하는 사람이 결정되면 자기들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 A, B 등급만이 아니고 C, D 등급에 해당하는 대부분 학생도 뭔가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F등급만 피하면 상위 등급일수록 얻을 혜택이 많고, 상위 등급이거나 상위 등급자에게 잘 보여서 등급이 올라갈 희망이 있는 이들은 더 철저하게 F등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방관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F등급을 괴롭히더라도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폭력을 방조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잦은 전학으로 처세술에 능한 데다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었던 성수지는 두 번째 투표에서 F등급을 면하고 C 등급에 오르면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방관자가 될 위험에 휘말립니다. 그렇지만 F등급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게임이 끝나지 않고, 자기도 다시 F등급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라미드 게임을 쳐부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기자] ‘피라미드 게임’에서처럼 특권 의식을 갖게 되고 이런 차별을 당연히 여기게 되는 게 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하면 좀 씁쓸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보기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백하린과 그 추종자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 또 뭐가 있죠?
[김헌식] 2학년 5반의 공주님이라고 불리는 백하린은 학교 이사장의 딸인 데다가 굴지의 기업인 백연그룹의 손녀라는 위치여서 교사도, 학생도,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백하린이 만든 게임에 순응하는 측면이 있고요. 심지어는 백연그룹에 연관된 학부모들의 위치 때문에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하청업체이기도 하고요. 또 여러 가지 관계 때문에 부모들이 사회적으로 연결이 돼 있어서, 결국에는 같은 입장으로 백하린과 어울리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더구나 표면적으로는 백하린이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내막이)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결국 사회적인 관계가 혹은 사회적으로 부모의 위치가 학교 학생들의 서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학교 폭력을 방조하거나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피라미드 게임 방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자] ‘피라미드 게임’이 사회고발 작품으로 분류되는 이유, 다시 말해 또 어떤 장면이 사회를 비판한다고 보시는지요?
[김헌식] 일단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보여주는데요. 교사 같은 경우에도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사이의 모습들과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보여줍니다. 또 서열화를 통해서 청소년이 변하는 모습은 어른 사회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평등해야 할 친구의 관계가 (그렇지 않은 것은)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성 사회에서 사회를 잘 꾸려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피라미드 게임처럼 현실에 고등학생들이 이런 게임을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자체가 청소년 관람 불가이거든요. 드라마처럼 한국의 고등학교가 다 이런 건 아니고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헌식]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기자]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이 의도한 사회비판적 메시지 짚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도 ‘피라미드 게임’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