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피라미드 게임, 빌런 백하린의 할머니는 북한 출신?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4.04.30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피라미드 게임, 빌런 백하린의 할머니는 북한 출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
/연합뉴스, 티빙

[기자]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중원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티빙 자체 제작 한국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마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벌어지는 비밀투표와 이를 둘러싼 학교 폭력에 관한 내용을 다뤘는데요. 비밀투표의 이름은 ‘피라미드 게임’으로 학급 내에서 진행하는 인기투표와 같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한 표도 받지 못한 F등급 학생은 반 아이들로부터 ‘합법적 왕따’를 당하게 된다는 건데요. 오늘은 드라마에서 그린 보육원과 학교 그리고 원작 웹툰과의 차이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오늘도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피라미드 게임’의 흑막은 바로 학교 이사장의 딸 백하린이었는데요. 백하린은 최상위권 성적, 예쁘고 온화한 인상으로 학급 내 공주님으로 인기도 많아 남부러운 것 없어 보입니다. 백하린이 피라미드 게임 즉, 학교 폭력의 주동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헌식]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란 백하린의 과거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보육원 출신이라서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던 백하린이 그 고통과 상처 때문에 악녀로 거듭난다는 건데요. 백하린의 본명은 원래 ‘양소은’으로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아이였는데요. 그 보육원에서 피라미드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또 원래 양소은(백하린)과 명자은은 굉장히 친한 친구였습니다. 양소은이 공부도 꽤 하고 눈에 띄는 학생이어서 아이들이 시기하는 상황 속에서 친구인 명자은이 부지불식간에 “양소은이 보육원 출신”이라고 얘기합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양소은을) 본격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에서 명자은이 학교 폭력을 당하는 양소은(백하린)을 방치, 수수방관,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백하린이 명자은에게) 복수하는 설정이 되겠습니다.

 

[기자] 어린 시절에는 사소하고 별의별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에 백하린에게 아픈 과거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대로 백하린은 과거 보육원에서 지낼 때 양소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하늘의 집 보육원이었습니다.

 

[하늘의 보육원 선생님] , 지금부터 우리 게임을 하나 거예요. 잘하는 사람한테는 상을, 못하는 사람한테는 벌을 거예요. 우리가 만나면 제일 보여야 분이 누굴까요? 아는 사람 .

 

[기자] 백연그룹의 후원을 받던 보육원에서는 ‘백연그룹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며 아이들을 계급별로 나누었습니다.

 

[하늘의 보육원 선생님] 은별이 잘했어. , 많이 먹어. 소은이는 아까 게임에서 점수를 너무 땄네. 이따 소은이는 이불 없어. 다음에도 못하면 블라우스도 벗겨서 다른 친구한테 거야. 알겠니?

[성수지] 그게 게임이 태어난 계기.

 

[기자] 교수님께서 쓰신 기고문 중에 “드라마에서 보육원은 사람을 삐딱하게 만드는 곳처럼 묘사한다”, “이는 편견과 차별 소지의 대목이 있다”고 하셨죠?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김헌식] 보육원이라는 곳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죠. 대개 고아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미디어에서는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들을 가난, 폭력, 불행, 불량, 비행 등 고정관념과 가까이 연결해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조사를 보니까 (50명 중) 27%가 보육원 출신인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편견에 차서 보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다른 영화와 드라마 분석 자료를 보면,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라는 설정이 나오는데 대개 고아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습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 ‘불륜녀’, ‘복수에 집착하는 야망가’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그려지는데 ‘피라미드 게임’에서도 이 같은 설정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부모와 이들의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 ‘정상 가정’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은 불행하게 잘못 자라는 듯한 묘사들이 많다는 거죠.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스타트업>이나 <서른, 아홉>의 경우에는 주인공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요. 이런 좋은 사례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죠.

 

[기자] 확실히 보육원에 대해 다룰 때는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 내용을 보자면 명자은이 어린 시절 방관자로서 양소은을 괴롭히는 가해자 편에 있었다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반대로 백하린이 명자은을 괴롭히는 반대의 상황이 된 거네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양소은에게는) ‘좋은 집안으로 입양돼서 꼭 복수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양소은의 바람대로 최고의 기업인 백연그룹으로 입양됩니다. 그러면서 이름을 백하린으로 바꾸게 되는 것인데요. 고등학교 입학식 날 백하린(양소은)은 명자은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명자은이 자신에게 사과한다면 마음을 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명자은은 그때의 학교폭력 상황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어서 결국 복수하게 됐다는 겁니다. 사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피해자라는 정서 때문에 가해 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기 때문에 절대 하면 안 되겠고요. 그 다음에 사립학교일수록 학교폭력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공립학교와는 다르게 개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를 내세워서 의사결정을 투명하지 않게 하고, 학교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걸 은폐하거나 숨길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은 사립학교 비중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1965년에는 44%였는데 지금은 점차 줄어들어서 2010년 18% 정도였습니다. 공교육이 확립될수록 학교폭력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그럼 잠시 드라마의 배경음악 들으면서 쉬어가겠습니다.

 

 

(피라미드 게임 OST)

 

 

[기자]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지속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백연그룹의 회장이자 백하린의 할머니가 자주 쓰는 ‘멀텅하다’인데요.

 

[ 회장] 하린아, 학교만큼 인간 군상을 속속들이 연습할 곳이 없어. 생존력, 리더쉽, 위에서는 습관. 귀한 새끼. 네가 원하는 내가 뭐든 해줄 참이다. , 네가 멀텅하게 굴지만 않는다면.

 

[기자] ‘멀텅하다’라는 말은 요즘 흔하게 쓰이는 말은 아닌데, 이게 북한 평안북도 방언이라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멀겋다’의 방언입니다. 멀겋다는 깨끗하게 맑지 아니하고 약간 흐리다는 뜻입니다. 국물로 치면 진하지 아니하고 매우 묽다. 사람으로 치면 눈이 생기가 없이 게슴츠레하다는 뜻인데요. 드라마에서는 ‘속이 빈 것처럼 표정이 넋이 나가 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백하린의 할머니인 변초순이라는 인물이 “멀텅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잘 해야 된다”고 얘기하는데요. 그러면 왜 평안북도 방언이 등장하게 된 걸까요? 해방과 한국전쟁쯤에 북쪽에서 월남해서 남쪽에서 자수성가를 한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측면을 강조하려고 이렇게 설정했는데요. 원작에서 백하린의 할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실명 상태에 있어서 침대에서 못 일어나지만,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호탕하고 기세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래도 북쪽 여성의 호탕하고 기세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니 이런 특징들과 ‘멀텅하게 굴지 말라’는 강한 어조의 말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북한에서 넘어왔다고 하면 부를 이어왔다기보다는 자수성가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헌식] 네, 생활력과 의지가 있어야만 남한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테니까 “멀텅하지 않으면 내가 다 도와주겠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 듯싶습니다.

 

[기자] 드라마에서처럼 ‘피라미드 게임’ 같은 학교폭력이 존재한다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학 가면 그만일 수 있겠죠. 그런데 남한에서는 같은 지역 내 고등학교 전학이 제한되고 있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백연여고가 사립고라서 조금 일반고 전학 조건과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성수지가 전학 가지 못한 이유는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또 남북한의 전학제도는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 주시죠.

 

[김헌식]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없는데요. 배정받은 학교가 소재한 동일 학군 내에서 거주지를 이전하더라도 전학이 불가합니다. 예외는 있죠. 예를 들면 같은 구역 내라도 이사 간 집과 학교까지 거리가 10km 이상 되거나 편도 1시간, 약 왕복 2시간 이상 거리면 학교장 추천 전학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바뀐 것은 학교에 결원이 생기면 학교장의 추천으로 전학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드라마상에서 (성수지가 전학 가지 못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성수지의) 아버지가 근처 부대에 장교로 근무하는 점이고요. 또 하나,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예외적인 규정이 있더라도 학교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학교장은) 백하린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전학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북한 같은 경우에는 전학 가려면 전학 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청년동맹원인 경우에는 ‘조직이동증’, 15세 이상 남학생은 예비 초모생(신병교육생)으로 ‘군사이동증’을 떼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한과 달리 북한은 문제 학생을 절대 전학 조치하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는 강제 전학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폭력 등을 저질러 문제가 있으면 인근 다른 학교로 강제로 전학시키는 제도인데요. 다만 한국에서도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서 퇴학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문제가 있을수록 소년단이나 청년동맹조직이 강력하게 통제합니다. 그리고 학적부·평정서·조직생활 카드 등이 어디든지 따라가기 때문에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안전지대’는 아닌 상황이 됩니다.

 

[기자] ‘피라미드 게임’ 드라마상에서 김다연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되는데, 북한이었다면 강제 전학도 못 가게 되는 상황이었겠네요.

 

[김헌식] 그렇죠. 통제∙규제 대상이 된다는 점이 오히려 더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니겠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자] 또 드라마의 흥미로운 점은 원작이 된 인터넷 만화와 드라마의 결말이 조금 다르다는 건데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혹시 아직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으신 분께서는 주의하셔야겠습니다. 그럼 드라마와 원작의 결말 어떻게 다른가요?

 

[김헌식] 원작에서는 대학에 다니는 모습이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동창회를 여는 등 (등장인물이) 어른이 된 모습이 등장하는데, 드라마에서는 1년 후인 고등학생 3학년이 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원작에서는 김다연, 방우이, 백하린이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도아, 정연두 등은 유학을 떠나고 고은별은 처벌은 피해 갔지만 많은 욕을 듣게 되고 대학입시 면접에 떨어지는 등의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드라마의 경우에는 김다연은 강제 전학을 당한 건 물론 아빠한테 두들겨 맞고, 고은별은 한국대 앞에서 시위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박지영은 신상이 공개되면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고, 방우이가 사이코패스 검사를 받는 와중에 방우이의 부모는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면서 다투는 장면이 나오게 되고요. 구설하는 전국체전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고 유도 선생님이 “신성한 유도장에 어디 발을 들이느냐”며 못 들어오게 하는 상황이 됩니다. 심지어 정연두는 시험지 유출로 퇴학당했고 아버지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서도아는 퇴학당했고, 백하린은 아예 파양 당해서 정신병동의 무연고자로 기록되는 결말을 맞게 됩니다. 마지막 부분에 (백연여고 2학년 5반이) 3학년이 된 모습으로 끝난다고 했는데, 새로 신입생들이 와서 피라미드 게임을 재개하려 합니다. 성수지가 이를 보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웃음을 짓는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기자] 원작 만화와 드라마 모두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에게 권선징악이 있으리라는 메시지를 담았지만, 또 드라마에서는 추가로 학교 폭력 혹은 계급의 굴레는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헌식]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기자]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그린 보육원과 학교 그리고 원작과의 차이점 짚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드라마의 배우진과 국내외 영향력 알아보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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