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서울에 있는 문화평론가인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한국 방송 채널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가슴 아픈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인데요. 2003년 12월부터 2004년까지 2월까지 총 20부작으로 방영됐으며 남한에서 시청률 40% 육박했습니다. 또 수많은 탈북민이 시청한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실제 천국의 계단을 시청했던 탈북민들의 소감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탈북민 두 분 모셔봤는데요.
먼저 두 분 다 천국의 계단을 수차례 즐겨보셨다고 했는데, 이 드라마를 선호했던 이유는 뭔가요?
[ 이순희 ( 가명 ), 탈북 후 중국에서 시청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끝까지 이루려는 게 있잖아요. 순수한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라온 동심과 애틋한 어릴 적 추억을 승화시켜 커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랑을 이루려고 애쓰는 게 좋았어요.
[ 김은솔 ( 가명 ), 북한에서 시청 ]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 권상우와 최지우에게)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사람들이 두 사람을 응원하다가 드라마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나 싶어요.
[ 기자 ] 그럼 드라마의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 김은솔 ( 가명 ), 북한에서 시청 ]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최지우 (한정서 역)님이랑 권상우 (차송주 역)님 기억을 잃고 다 큰 후에 다시 만났는데 서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안타까웠는데, 그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기억을 찾은 후 만났을 때는 감동적으로 봤던 것 같아요.
[ 이순희 ( 가명 ), 탈북 후 중국에서 시청 ] (드라마 대사 중에)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하는 거 있죠? (권상우와 최지우가) 부메랑을 던지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하는데 사랑은 자기 것이 된다는 대사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끝내 이루어내는 게 참 좋았어요.
[ 김은솔 ( 가명 ), 북한에서 시청 ] 맞아요. 그 한 문장이 그때 (북한에서) 난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돌아오는 거야"라는 얘기를 진짜 많이 했었거든요. 장난으로 연인들끼리 대사 앞에 이름을 붙여서 얘기하기도 하고요. (장난이라도) 친한 친구들끼리 해야지, 안 그러면 한국 드라마다 보니까 (위험해질 수 있죠). 그 대사로 친구들끼리 장난치고 그랬었어요. 대사가 멋있잖아요.
[ 기자 ] 또 북한에서 화제가 됐던 건 뭐가 있을까요?
[ 김은솔 ( 가명 ), 북한에서 시청 ] 대부분 사람은 남한 드라마를 볼 때 대사나 배우들의 생김새 "잘생겼냐 못생겼냐?" 얘기를 많이 해요. 북한에서 보는 관점도 다르고, 또 "우리랑은 좀 다르게 생겼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 밖의 사람들을 보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잖아요. 남한에 대해서 많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는데 생긴 게 좀 다르다.", "저쪽은 물이 좋은가?"라고 하기도 하고 "배우들이 잘생겼다"는 호평도 해요.
[ 기자 ] 마지막으로 드라마 시청 후 소감 한 말씀씩 해주시죠.
[ 김은솔 ( 가명 ), 북한에서 시청 ] 사람들 사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어디를 가나 악한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도 존재하니까요. (드라마상에서) 사람들이 서로 악한 짓 하는 거에 (북한 시청자들도) 분노하면서도 '사람 사는 곳이니 똑같다'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드라마에 나오는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를 봤을 때 그때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많이 진보적이다 보니까 (남한은) 발전했다고 생각했어요.
[ 이순희 ( 가명 ), 탈북 후 중국에서 시청 ] 애절함을 느꼈어요. (신현준은) 이복 동생한테 절절하고, (권상우는) 마지막에 사랑은 안 뺏기잖아요. 다른 건 다 뺏겨도 사랑은 쟁취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면서 사랑은 돌아오는 것,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기자 ] 네, 그럼 실제 드라마를 본 탈북민들의 이야기 여기서 마치고 잠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배경음악 듣고 오겠습니다. 2부에서는 김헌식 교수님과 돌아오겠습니다.
( 천국의 계단 OST)
[ 기자 ]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김헌식 교수님 모셨는데요. 천국의 계단 드라마가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 김헌식 ] 탈북민 중 웬만한 사람들은 다 봤다고 증언했는데요. 한 탈북민은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뿐 아니라 북한 주민 전체가 거의 다 봤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남북한의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대적으로 이 드라마가 담긴 CD 등이 (북한에) 유통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 배경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중 1회에서 북한군 김주먹 (유수빈 배우)가 초소에서 한국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시청하면서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인상적인 사례들이 있는데 '북한에서 싫어하는 남한 연예인'으로 김태희를 꼽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태희 씨가 악역을 맡아서 권상우와 최지우의 사랑을 방해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미움의 대상이 돼서 욕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탈북 여성 박사 1호 이애란 씨 같은 경우에는 "과거 20대 탈북 여성 가운데 권상우를 보기 위해서 탈북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해서 놀라게 했습니다. "20대 초반 탈북 여성들에게 왜 탈북했냐?"고 물어보면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를 보고, 너무 만나고 싶어서 탈북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이 드라마 속 권상우처럼 자신을 대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는 건데요. 탈북 방송인 김미소 "역시 저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탈북할 때 권상우의 얼굴을 떠올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는데 "권상우를 만날 생각만 하면서 남한에 도착했는데 현실은 아니었고 김정일, 김정은 부자 만나는 것보다도 더 힘들더라"고 방송에서 언급해서 웃음을 터뜨리게 했습니다.
[ 기자 ] 드라마는 또 수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겼습니다. 권상우가 최지우를 그리워하며 외쳤던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뿐 아니라 신현준이 놀이공원에서 최지우에게 "너 나 좋아 싫어"라고 외치는 장면도 있었는데요.
이완 ( 한태화 아역 ): 한정서 , 너 나 좋아 싫어 ! 한정서 , 너 나 좋아 싫어 ! 좋아 싫어 !
신현준 ( 한태화 역 ) : 한정서 , 너 나 좋아 싫어 ! 너 아직 얘기 안 했다 . 한정서 ! 한정서 !
[ 기자 ] 사실 신현준과 한정서 역을 맡았던 최지우는 드라마상에서 이복남매 다시 말해, 배다른 남매였는데요. 어린 시절 차갑고 못된 친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신현준을 최지우가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는 등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그런 최지우에게 신현준은 이복남매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쫓아다니는데요. 그런데 이 장면이 화제가 된 이유는 따로 있죠?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아역배우와 성인 배우의 얼굴이 너무 급격하게 달라져서 시청자들이 충격에 빠졌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공포의 회전목마'라는 별명이 붙어서 수많은 패러디 즉, 복제 영상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아역 배우가 밝은 피부색의 이완 씨였는데 갑자기 성인이 된 신현준 씨의 모습은 어두운 피부색에 더구나 깔끔한 행색이 아니고 약간 지저분한 행색으로 나왔기 때문에 충격이었다는 겁니다. 김태희 씨 동생 이완 씨가 신현준 씨 아역으로 출연했는데요. 방송에서 회전목마가 돌아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연출됐는데, 이를 두고 '공포의 회전목마'라고 불렀습니다. 또 한 방송에서는 진행자가 "누리꾼들이 그 장면을 '역변(역으로 변하는)의 회전목마'라고 부르더라"고 말하니까 신현준 씨가 "누리꾼들은 이상하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이완보다 내가 잘생겼다고 한다. 뭐가 역변인지 모르겠다"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권상우의 아역으로 나온 백성현과 신현준이 만났는데요. 당시 천국 계단을 회상하면서 주인공이 역변의 회전목마 장면을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신현준 씨가 결혼해 예준이라는 아이를 낳게 됐는데 놀이공원을 찾아 방송 중에 이 천국 계단의 회전목마 장면을 재현하며 "너나 좋아 싫어? 너 얘기 아직 안 했다"고 해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전 축구선수 이동국과 아들 시안 군도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 장면을 패러디 했는데요. 방송에서 끊임없이 이 장면이 재현됐기 때문에 더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 기자 ] '공포의 회전목마'처럼 또 최근에 화제가 된 장면이 있는데요. 일명 권상우 배우의 상징 '소라게' 장면이 이 드라마에도 나옵니다. 본인이 한정서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최지우와의 만남 이후 슬퍼하며 털모자를 눈까지 내려씁니다. 이 장면이 이렇게 화제가 된 이유는 뭔가요?
[ 김헌식 ] 사실 이것도 패러디가 계속되는 건데요. 드라마에서 (권상우가) 디자인하는 최지우에게 아이디어를 주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 시절에 선물받았던 모자였습니다. (토끼 인형이 달린 털) 모자를 보여주면서 "이건 내가 바꿀 수 없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유일한 선물이다"라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소라게' 장면입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13회에도 김주먹 (유수빈 배우)가 권상우 소라게를 패러디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사랑의 불시착>에 배우 최지우가 특별 출연해서 김주먹 (유수빈 배우) 병사와 함께 만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김주먹은 바로 천국의 계단 명대사를 읊습니다. 김주먹은 최지우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하셨지요. 아무리 먼 길을 떠나도"라고 운을 떼자, 최지우는 "결국 돌아오는 거야"라고 받아주었고, 김주먹은 상대역인 권상우가 했던 소라게 명장면을 재현해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권상우 소라게 장면은 권상우가 <슬픈연가> 극 중 연정훈, 김희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자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말하는데요. 왜 '소라게'라는 이름이 붙었냐면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 모습이 소라게 같아서입니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 장면이 천국의 계단에도 나오기 때문에 계속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 기자 ] 아무래도 많은 시청자가 사랑했던 작품이니만큼 더 다양한 패러디를 만들어낸 것 같네요.
[ 김헌식 ] 그렇습니다. 명품을 증명하는 것은 가짜, 복제품이 얼마나 많은가이거든요. 인기의 척도도 바로 패러디, 그러니까 재연 영상 혹은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지 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계단 패러디가 많은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은 드라마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자 ] 네, 김헌식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천국의 계단을 시청한 탈북민들의 소감과 드라마 명장면 함께 살펴봤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드라마에 숨겨진 의미와 배우들의 이후 활동 알아보겠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