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한국 드라마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리는 시간,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문화평론가인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와 함께합니다.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북한 배경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이 드라마가 문화창고와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제작해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한국 방송 채널인 tvN을 통해 소개됐는데요. 북한이 배경이었던 만큼 북한에 계신 청취자분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 한국 사람들도 이 드라마를 통해 북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죠?
[ 김헌식 ] 네, 그렇습니다. "북한 말과 북한 문화가 등장해서 남한 사람들도 많이 배우게 됐다"고 얘기했고요. 특히 북한 이탈 주민들이 북한을 다뤘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에 가장 북한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많이 언급했습니다. 종종 나오는 북한 말을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고 문화도 알 수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후라이 까지마라'는 말은 '거짓말한다'라는 뜻인데요. 드라마에서는 "어이 남조선 후라이 까지마라" 대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네도 여기 와서 막대기 커피 한잔해라"라고 하는데 이 막대기라는 게 한국에서는 봉지 커피라고 말하는데요. 그리고 '달리기 장사한다'는 말은 이제 장거리 무역을 뜻하고, "남조선에는 발바리차도 없네"라고 했는데 이 발바리차는 택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단묵이 없다고 표현하는 대사도 있었는데요. 여기서 단목은 젤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식감은 탱글탱글하고 쫀쫀한 단묵을 찾는 대목이 있고, 또 밥가마를 우리말로는 밥솥 등 드라마를 통해 북한에서 많이 쓰는 단어들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 기자 ] 남북한 문화가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편하게 즐기면서도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드라마 예고편도 함께 들어볼까요?
여기요 . 군인이시구나 . 군호 . 오지 마세요 . 내려오라우 . 대한민국에 참 잘 오셨어요 .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쪽이 북에 온 거요 . 북한 ? 노스코리아 ? 여기가 어떻게…
[ 기자 ] 예고편에서 알 수 있듯이 여주인공인 윤세리가 의도치 않게 북한에 떨어졌고 남주인공인 리정혁이 이를 발견한 건데요. 어떻게 이 상황이 펼쳐진 거죠?
[ 김헌식 ] 윤세리역은 손예진 씨가, 리정혁 역할을 현빈이라는 배우가 했는데요. 손예진 씨가 극 중에서 한국 대기업의 막내딸이면서 자기 회사도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스포츠 경기 의료 신제품을 시험하기 위해서 패러글라이딩이라는 하늘을 나는 기구를 타고 가다가 돌풍에 휘말려서 떨어지게 됐는데 그곳이 북한 지역인 걸 모르고 있다가, 수색을 나온 북한 군인인 현빈 씨가 북한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겁에 질리게 됩니다. 또 손예진 씨가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중심을 잃고 현빈 품 안에 푹 빠져들게 되면서 현빈도 그제서야 윤세리 즉, 손예진 씨가 남한에서 온 것을 알고서 서로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 기자 ] 패러글라이딩을 타다가 강풍에 휩쓸려 북한으로 넘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 김헌식 ] 드라마 작가가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군사 전문가들과 항공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서 '무동력 비행체인 패러글라이더는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북한군이 특수전 부대에서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서 한미 연합사 침투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패러글라이딩하던 이스라엘 여성이 시리아 국경을 넘은 사건이 있었고요. 또 한국 경남 함안에서도 패러글라이딩하던 사람이 창원의 교도소 운동장 한가운데 불시착한 일도 있었고, 태풍의 눈에서 생존해서 60km 떨어진 곳에 불시착한 여성 사례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응용해서 북한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윤세리처럼 '실수로 월북하게 되면 죄가 되느냐'라고 했을 때 국가보안법 제 6조 1항에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목적이 없어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한으로 오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 기자 ] 앞서 설명하신 것처럼 윤세리는 한국 대기업 재벌가의 막내딸이자 본인이 직접 세운 패션 회사 세리스초이스의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에 드라마에 주총, 주가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 윤세리 ] 사흘 뒤에 출발을 해도 다른 나라 거쳐 돌아가고 어쩌고 하면 더 늦어질 것 같은데 . 사실은 내가 주총이 있어서 .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요 .
[ 도혜지 / 윤세리의 올케 ] 저기도 대표 저렇게 된 거 알려지면 아주 주식 개박살나겠다 .
[ 윤세리 ] 주식 알아요 , 주식 ? 그게 하루에도 몇십억 , 몇백억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거든요 . 나는 처음에는 아는 사람 말만 믿고 30 억 넣었다가 휴지 조각됐잖아 .
[ 기자 ]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이자 대기업 재벌가의 막내딸이 후계자로 발표되기 직전 사라진다면 그 파급력이 얼마나 될까요?
[ 김헌식 ] 단어들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한국의 기업은 '주식'이라는 것을 발행해서 자금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사업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당연히 주가 즉, 주식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자금이 풍부해지고 기업은 더 발전할 수 있죠. 그런데 기업의 책임자가 없어진다는 것은 영어로 '오너 리스크'에 해당하는데요. 다시 말해 기업의 책임자가 기업 경영의 위험 요소가 되고 아무래도 지도자가 없으면 경영도 제대로 안 되겠죠. 따라서 주식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 기업은 재정적인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주총회' 그러니까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서 중요 의사 결정을 하는 건데요. 주주총회에서는 주식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순으로 영향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주총(주주총회)에서는 가장 많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대개 대기업의 운영을 하는 재벌가들이 제일 많이 주식을 가지고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기자 ] 네, 그럼 잠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배경음악 듣고 오겠습니다.
( 사랑의 불시착 OST)
[ 기자 ] 극 중 윤세리는 세계적 패션 회사 경영자인 만큼 외래어를 일상 대화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데요. 김치와 반찬들을 보관하는 북한 김치움을 보고 윤세리는 외래어로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 김주먹 / 중급 병사 ] 기 , 김치움 모릅니까 ?
[ 윤세리 ] 어 ? 난 모르지 .
[ 김주먹 / 중급 병사 ] 이거이 김치움입니다 . 이 아래 독에 김치랑 장이랑 다 있습니다 . 그러믄 음식이 상하지도 않고 맛있게 익습니다 .
[ 윤세리 ] 어머 , 여기 뭔가 오가닉하다 . 뭐랄까 ? 되게 힙해 .
[ 기자 ] 또 북한 정착 생활 중 마을 실세인 대좌 아내에게 옷을 수선해서 선물할 때도 외래어를 남발합니다.
[ 윤세리 ] 딱 올해 전 세계를 휩쓴 패션 트렌드잖아요 . 뉴트로 . 이 꽃무늬가 이렇게 소프트하게 전개되는 게 이번 시즌의 가장 큰 특징인데요 . 블러드 이펙트의 번진 듯한 효과와 이 불규칙한 배열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감성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리스 여신을 방불케 하는 이 드레이프들의 극적인 운동감이 우리 영애 동지의 에스트로겐 수치의 절정을 표현한 패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 기자 ] 남한 사람인 저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외래어가 참 많네요.
[ 김헌식 ] 풀어서 설명해드리면 '오가닉'은 유기농 재배 농작물을 뜻합니다. '청정하고, 깨끗하고, 건강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고요. '힙하다'는 '개성 있고 최고의 가치를 새롭게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뉴트로'는 새롭다는 뉴(new)와 예스럽다는 레트로(retro)의 결합으로 '고풍스럽고 예스럽지만 매우 신선하게 멋지다'라는 것이고, '심플'은 매우 단순하면서 원칙적인 멋을 가리킵니다. '생파'는 생으로 된 파 뿌리가 아니라 생일 파티를 뜻합니다. 파티는 잔치를 뜻하죠. 그래서 생파는 생일잔치를 연다는 뜻이고 원래 파티는 잔치보다는 소규모의 오붓한 축하 행사를 뜻하기 때문에 생파는 오붓하게 친한 사람들끼리 벌이는 잔치라고 볼 수가 있겠고요. 또 호텔과 관련해서 '컨시어지'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문간에서 안내를 해주는 집사'를 뜻하는데요. 원래 프랑스어인 '르콩트 데 시에르지(le comte des cierges)'에서 온 단어인데 요즘 호텔을 많이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점점 일상적으로 호텔 컨시어지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 기자 ] 네, 한편 극 중 등장하는 인민무력부 보위국 소속 소좌인 조철강이 어느 날 갑자기 숙박 검열을 지시합니다. 이 숙박검열 중에 재밌는 상황이 펼쳐지는데요. 북한 주민들의 집에서 아랫동네 즉, 남한 물건들이 속속 발견된 겁니다.
[ 나월숙 / 인민반장 ] 지금부터 숙박 검열을 시작하갔시오 . 누가 장마당에서 동무가 아랫동네에서 온 말하는 밥가마를 사는 걸 봤다고 하던데 .
[ 향이네 / 마을 주민 ] 아 , 누가 기딴 벼락 맞을 소리를 한단 말입니까 ? 엉덩이는 삐뚤어졌어도 방귀는 곱게 뀌라 했는데 , 말하는 밥가마라뇨 ? 그것도 남조선 물건이라뇨 ? 명백한 모략입니다 .
[ 밥솥 알림음 ]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밥을 잘 저어주세요 .
[ 나월숙 / 인민반장 ] 누가 인민의 피땀 서린 전기를 도둑질하나 했더니 그 도둑이 여기 있었구나 , 야 .
[ 향이네 / 마을 주민 ] 제가 그만 그 찰진 밥맛에 혼이 나가서 잠시 처돌았었나 봅니다 . 이번 딱 한 번만 눈감아 주시라요 .
[ 나월숙 / 인민반장 ] 그러면 이 밥가마를 어칼건데 ?
[ 향이네 / 마을 주민 ] 저 빌어먹을 전기 도둑은 반장 동지께서 알아서 처분해 주셔야지요 .
[ 나월숙 / 인민반장 ] 밥이 많이 찰지나 ?
[ 기자 ] 한국에는 이 같은 숙박검열이 없는데요. 왜 북한에는 있고, 남한에는 없는 걸까요?
[ 김헌식 ] 북한에서는 인민보안단속법에 따라 숙박 검열을 하는데요. 정기적인 주민 통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하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상황인데요. 적발되는 대상은 주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북한과 달리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요. 여행의 자유도 있기 때문에 숙박 검열이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불륜과 관련한 간통죄는 2015년에 위헌 결정 즉,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폐지됐거든요. 폐지된 이유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따라서 본인이 결정할 문제고, 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통죄가 폐지됐기 때문에 국가가 숙박시설을 검열해 불륜을 적발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건 부부끼리 알아서 하라"는 맥락이 되겠습니다.
[ 기자 ] 네, 김헌식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김헌식 ] 네, 감사합니다.
[ 기자 ] 드라마 알고 봐야 재밌다, 오늘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한국 재벌가의 영향력과 흔히 쓰이는 외래어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남북의 다른 문화에 관해 짚어보겠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참여 김헌식, 진행 박수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