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고향에 가고 싶어요]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소망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09.12.24
2009.12.24
RFA PHOTO/ 이현기
MC: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 일원에 사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는 연말특집 ‘고향에 가고 싶어요’ 가 방송됩니다.
MUSIC(아리랑)
워싱턴 일원에는 약 15만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대략 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고향을 떠난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안부를 묻고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향민들은 전화나 편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고향의 가족, 친지들의 안부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실향민 김수향 씨는 고향에는 통일 이후나 가지, 지금 북한에 가 봤자 감시 속에 어떻게 고향을 마음 놓고 찾겠느냐며 고향 가는 희망도 버렸다고 말합니다.
: 내가 죽기 전에 통일되면 고향에 가는 거고요.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 가 봤자 통제 때문에 고향까지는 갈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희망을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향이 있어도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는 게 바로 실향민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향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향민들은 이제 70-80의 고령으로 상봉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더욱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가족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고향 사람과 만나 서러움을 달래고 기쁨을 나눕니다. 사리원이 고향인 김두영 씨의 고향 그리는 마음 함께 들어보지요.
: 사리원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보고 싶고, 내사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습니다. 거기 경암산에도 가보고 싶고,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장수산, 정방산 등에 소풍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고 싶습니다.
지난 3월, 황해도민회 회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현장음) 황해도 도민회 제18회 정기총회 및 신춘 대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향땅 황해도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와 이웃 동료를 놔두고 이역만리 타향땅에서 아직도 통일의 염원을 기다린 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 계신 분들이 바로 내 부모들과 똑같은 사투리를 쓰는 우리 이웃입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몇몇 실향민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죽기 전에 통일이나 됐으면 원이 없지요.
워싱턴 황해도민회 회원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만일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하면 한 번에 몇만 명씩 해서 끝내 버리는 것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몇 년 있으면 세상 뜰 텐데 한 번에 100명씩 만나서 언제 다 만나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합니다./ 빨리 통일이 되는 것만 바라는 거지요. 그래야만 한 발자국이라고 갔다 올 수 있고 볼 사람도 볼 수 있을 것이니까…
고향에는 통일되어야 가지 갈 수 있겠어요?/ 친척, 부모 형제 만나면 신앙을 심어주고 오는 것이 희망이에요. :
황해도민들은 이날 여흥 순서를 갖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지들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듬뿍 젖기도 했습니다.
(현장 노래-----)
실향민들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 실향의 한을 달래기도 합니다. 지난 9월 워싱턴 이북도민회는 제10회 이북도민의 날 행사를 했습니다. 이날 150여 명의 실향민은 결의문을 통해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위한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다짐했습니다.
: 미국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미국 정부를 통해서 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고통을 해결하는 생사와 거처 확인 그리고 소식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특히 미국 내 이산가족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아픔을 ‘LOST FAMILY’란 이름의 책으로 펴낸 고등학생들도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실향민을 인터뷰한 손성민 양은 책을 발간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 저희가 책을 발간한 목적은 이 책을 통해서 미국 의원들에게 책을 전하고 의원들이 이야기를 읽고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또 하루빨리 해결해야될지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기쁘다는 실향민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밟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 이북도민회 모임이 10년째 맞았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큰 발전을 이루고 통일에 이북도민들이 큰 역할 되기를 바랍니다./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고 빨리 통일되어야죠./나는 오늘 처음 나왔어요. 남북이 통일됐으면 좋겠네요./실향민들 다 같이 모이니까 좋지요./이렇게 행사를 해줘서 고맙고요, 실향민들을 위한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루속히 통일을 바라지만 통일이 요원해서 생존의 통일을 못 보고 갈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서 50년 만에 6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니까 옛날 생각이 납니다. 하루속히 북한의 있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 년, 백발의 노장들이지만 어린아이들처럼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고 말합니다.
: 날씨도 좋고 좋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니까 감회가 남다릅니다. /오래간만에 참석했고요. 이국 땅에서 도민들이 뭉친다는 게 참 기쁩니다. /이런 모임을 하게 돼서 기쁘고요. 여기에 모인 분들은 다 연로하신 분들인데 고향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이런 기회를 통해서 회포를 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나니까 감개무량하고 말을 해보면 그분도 아는 분이고 나도 아는 분이어서 말이 통해서 좋고 옛날 이야기하니까 좋고 그렇습니다.
이날 황해도민회 임광수 회원이 낭독한 이경남 씨의 ‘고향은’ 이란 시는 실향민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모진 바람에 흩뿌려진 꿏잎들처럼
산산이 찢기어 달려온 몸이었다.
한 백 리쯤 내달리다 뒤돌아보니
거기 하늘에는 무지개 걷힌 자국이 선연했던가
3년을 두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고
10년을 두고 사무침에 겨워서 울고
반세기 두고 원한으로 가슴 쥐어뜯으니
내일은 백 년 고개 앞에서 누구 이름을 불러야 하나
그 누구 말했던가
고향은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라고
또 누가 말했던가
고향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목숨의 문이라고
나는 매일 한 마리 나비 되어 고향의 꽃 수레를
날아서 돌고 고향은 매일 내 핏줄 속에서 바다처럼
산맥처럼 노상 뒤채긴다.
실향민 2세들은 미국에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올해 41살 실향민 2세, 김성필 씨는 30년 동안 미국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 한국을 다녀와서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점을 느껴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통일이 되는 날에 고향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작년에 도민회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면서 ‘미국 사람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도 많은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아무리 미국 사람의 긍지를 갖고 있어도 피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런 모임에라도 자주 참여를 해서 한국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향우회에 데리고 오는 이유는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 가르치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자취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가서 만약 힘이 된다면, 또 남한과 같이 평등해질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요.
40대 후반의 여성 실향민 2세 박의숙 씨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다며 그동안 부모님들이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애타게 찾았다고 전합니다.
지금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고향을 찾기 위해 자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 고향에 가보고 싶지요. 당연히 부모님의 고향이고 저희는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소망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부모님의 고향에 가는 게 저희 소망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고향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고향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고향 황해도는 평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일을 드실 때도 ‘우리 고향에서는 이 과일이 이렇게 컸는데’ 라며 비교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형제들을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어디이고 무슨 일을 하다가 오셨는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인데 실향민들의 애틋한 고향을 그리는 데 대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듣고 자랐어요. 당연히 자녀들에게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겨 주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오늘 행사에 다녀갔어요. 제 아들도 마찬가지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니까.
항상 잊지 말라고 행사에 왔다가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실향민 2세 김의근 씨는 부모님이 고향에 두고온 형님과 누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신 것을 보고 성장했다고 합니다. 고향 분이 보고 싶고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 이렇게 황해도민회를 찾는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진솔하게 말합니다.
: 북한에 저희 형님과 누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형님과 누님을 늘 못 잊어서 울면서 지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황해도 말씨를 쓰시는 분들의 냄새가 그리워서 도민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원은 사랑하는 형님을 만나보고 싶고 어머니가 얼마나 형님과 누나를 사랑해서 평생 우시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미국에 와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지요. 정말 한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집니다.
실향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마음대로 밟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소원이 하루속히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실향민들의 노래)
자유아시아방송의 연말특집,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고향에 가고 싶어요’ 함께 했습니다. 기획, 진행에 RFA이현기입니다.
MUSIC(아리랑)
워싱턴 일원에는 약 15만여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은 대략 만 5천여 명에 이릅니다.
고향을 떠난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안부를 묻고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향민들은 전화나 편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고향의 가족, 친지들의 안부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실향민 김수향 씨는 고향에는 통일 이후나 가지, 지금 북한에 가 봤자 감시 속에 어떻게 고향을 마음 놓고 찾겠느냐며 고향 가는 희망도 버렸다고 말합니다.
: 내가 죽기 전에 통일되면 고향에 가는 거고요. 그렇지 않아도 북한에 가 봤자 통제 때문에 고향까지는 갈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희망을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향이 있어도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는 게 바로 실향민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향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향민들은 이제 70-80의 고령으로 상봉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더욱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향민들은 가족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는 고향 사람과 만나 서러움을 달래고 기쁨을 나눕니다. 사리원이 고향인 김두영 씨의 고향 그리는 마음 함께 들어보지요.
: 사리원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가보고 싶고, 내사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습니다. 거기 경암산에도 가보고 싶고,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장수산, 정방산 등에 소풍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고 싶습니다.
지난 3월, 황해도민회 회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현장음) 황해도 도민회 제18회 정기총회 및 신춘 대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향땅 황해도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와 이웃 동료를 놔두고 이역만리 타향땅에서 아직도 통일의 염원을 기다린 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 계신 분들이 바로 내 부모들과 똑같은 사투리를 쓰는 우리 이웃입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몇몇 실향민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죽기 전에 통일이나 됐으면 원이 없지요.
워싱턴 황해도민회 회원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들어봅니다.
:만일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하면 한 번에 몇만 명씩 해서 끝내 버리는 것 그렇지 않으면 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몇 년 있으면 세상 뜰 텐데 한 번에 100명씩 만나서 언제 다 만나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기대도 안 합니다./ 빨리 통일이 되는 것만 바라는 거지요. 그래야만 한 발자국이라고 갔다 올 수 있고 볼 사람도 볼 수 있을 것이니까…
고향에는 통일되어야 가지 갈 수 있겠어요?/ 친척, 부모 형제 만나면 신앙을 심어주고 오는 것이 희망이에요. :
황해도민들은 이날 여흥 순서를 갖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지들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듬뿍 젖기도 했습니다.
(현장 노래-----)
실향민들은 고향 사람끼리 만나 실향의 한을 달래기도 합니다. 지난 9월 워싱턴 이북도민회는 제10회 이북도민의 날 행사를 했습니다. 이날 150여 명의 실향민은 결의문을 통해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위한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다짐했습니다.
: 미국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은 미국 정부를 통해서 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이산가족들의 인도적 고통을 해결하는 생사와 거처 확인 그리고 소식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특히 미국 내 이산가족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아픔을 ‘LOST FAMILY’란 이름의 책으로 펴낸 고등학생들도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실향민을 인터뷰한 손성민 양은 책을 발간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 저희가 책을 발간한 목적은 이 책을 통해서 미국 의원들에게 책을 전하고 의원들이 이야기를 읽고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또 하루빨리 해결해야될지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기쁘다는 실향민들!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밟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 이북도민회 모임이 10년째 맞았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큰 발전을 이루고 통일에 이북도민들이 큰 역할 되기를 바랍니다./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고 빨리 통일되어야죠./나는 오늘 처음 나왔어요. 남북이 통일됐으면 좋겠네요./실향민들 다 같이 모이니까 좋지요./이렇게 행사를 해줘서 고맙고요, 실향민들을 위한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루속히 통일을 바라지만 통일이 요원해서 생존의 통일을 못 보고 갈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서 50년 만에 60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니까 옛날 생각이 납니다. 하루속히 북한의 있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 년, 백발의 노장들이지만 어린아이들처럼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고 말합니다.
: 날씨도 좋고 좋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니까 감회가 남다릅니다. /오래간만에 참석했고요. 이국 땅에서 도민들이 뭉친다는 게 참 기쁩니다. /이런 모임을 하게 돼서 기쁘고요. 여기에 모인 분들은 다 연로하신 분들인데 고향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이런 기회를 통해서 회포를 풀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사람을 만나니까 감개무량하고 말을 해보면 그분도 아는 분이고 나도 아는 분이어서 말이 통해서 좋고 옛날 이야기하니까 좋고 그렇습니다.
이날 황해도민회 임광수 회원이 낭독한 이경남 씨의 ‘고향은’ 이란 시는 실향민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모진 바람에 흩뿌려진 꿏잎들처럼
산산이 찢기어 달려온 몸이었다.
한 백 리쯤 내달리다 뒤돌아보니
거기 하늘에는 무지개 걷힌 자국이 선연했던가
3년을 두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고
10년을 두고 사무침에 겨워서 울고
반세기 두고 원한으로 가슴 쥐어뜯으니
내일은 백 년 고개 앞에서 누구 이름을 불러야 하나
그 누구 말했던가
고향은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라고
또 누가 말했던가
고향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목숨의 문이라고
나는 매일 한 마리 나비 되어 고향의 꽃 수레를
날아서 돌고 고향은 매일 내 핏줄 속에서 바다처럼
산맥처럼 노상 뒤채긴다.
실향민 2세들은 미국에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올해 41살 실향민 2세, 김성필 씨는 30년 동안 미국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는데 최근 한국을 다녀와서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점을 느껴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통일이 되는 날에 고향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작년에 도민회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한국을 잊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면서 ‘미국 사람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도 많은 발전한 모습을 보았고 아무리 미국 사람의 긍지를 갖고 있어도 피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런 모임에라도 자주 참여를 해서 한국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향우회에 데리고 오는 이유는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 가르치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자취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되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가서 만약 힘이 된다면, 또 남한과 같이 평등해질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요.
40대 후반의 여성 실향민 2세 박의숙 씨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다며 그동안 부모님들이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애타게 찾았다고 전합니다.
지금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고향을 찾기 위해 자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향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 고향에 가보고 싶지요. 당연히 부모님의 고향이고 저희는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소망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부모님의 고향에 가는 게 저희 소망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고향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고향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고향 황해도는 평야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일을 드실 때도 ‘우리 고향에서는 이 과일이 이렇게 컸는데’ 라며 비교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북한에 두고온 형제들을 찾고자 하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형제들을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어디이고 무슨 일을 하다가 오셨는지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인데 실향민들의 애틋한 고향을 그리는 데 대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듣고 자랐어요. 당연히 자녀들에게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남겨 주겠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오늘 행사에 다녀갔어요. 제 아들도 마찬가지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니까.
항상 잊지 말라고 행사에 왔다가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실향민 2세 김의근 씨는 부모님이 고향에 두고온 형님과 누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사신 것을 보고 성장했다고 합니다. 고향 분이 보고 싶고 고향의 냄새가 그리워 이렇게 황해도민회를 찾는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을 찾고 싶다고 진솔하게 말합니다.
: 북한에 저희 형님과 누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형님과 누님을 늘 못 잊어서 울면서 지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황해도 말씨를 쓰시는 분들의 냄새가 그리워서 도민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소원은 사랑하는 형님을 만나보고 싶고 어머니가 얼마나 형님과 누나를 사랑해서 평생 우시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미국에 와서 같이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지요. 정말 한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집니다.
실향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통일이 돼서 고향땅을 마음대로 밟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소원이 하루속히 이뤄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실향민들의 노래)
자유아시아방송의 연말특집, 워싱턴 인근에 사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고향에 가고 싶어요’ 함께 했습니다. 기획, 진행에 RFA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