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주석 방북 무산으로 김 빠진 9.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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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북조선 내부의 소식과 정보를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 사고, 동태, 동향에 관한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청취자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설명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와 이 시간 함께 합니다. 북한전략센터는 북한 내부의 민주화 확산사업과 한반도 통일전략을 연구하는 탈북자 단체입니다.
전수일: 김정은 집권 7년차인 올해 70돌을 맞은 큰 명절 9월 9일은 김정은에게도 주민들에게도 흥겹지 않은 국경절이었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그토록 고대하던 귀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안 왔고, 주민은 폭염속에 동원돼 녹초가 되도록 준비한 9.9절 행사가 악몽이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5년간 중단됐던 10만 주민의 집단체조가 다시 시작된 해가 아닙니까?

강철환: 그렇습니다. 김씨 일가 3대 세습으로 집권한 김정은으로서는 올해가 장기집권의 중요한 전환점일 수 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유엔의 대북제재 속에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짜내 9.9절 행사를 준비해왔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10만 명 청소년이 동원되는 집단체조입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5년간 중단되어 온 집단체조가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경제난으로 잘 먹지도 못하는 북한 어린이들이 올해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서 훈련을 거듭하며 많은 희생을 치러낸 준비였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평양 행사를 위해 현금, 식량, 물자 등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의 피와 땀을 짜내서 준비한 행사로 볼 수 있습니다.

전. 2006년 처음 핵실험을 한 이래 북한은 유엔의 외교 경제적 제재를 받아왔고 올해로 12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통신 스스로도 이같은 제재가 ‘국가 발전과 인민생활에 끼친 피해와 손실은 헤아릴수없이 막대하다’고 하면서 제재 후과로 인한 인민생활 피폐를 지난해 가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인데 어떻게 북한 정권은 행사에 그 부족한 재원을 낭비하고 피폐한 인민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 저는 북한이 9.9절 행사를 요란하게 준비한 배경에는 두 가지 주안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70년을 맞는 북한 국가가 향후 70년을 더 지탱할 수 있을지 결정되는 분기점이 바로 올해입니다. 3대를 이어오는 피비린내 나는 폭압독재가 곧 무너질지 아니면 장기화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아직 30대 중반도 안 된 김정은이 평균 수명을 산 다해도 수십 년은 더 지탱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여건은 지도자가 젊다 고해서 나라가 오래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북한은 최악의 어려운 환경이지만 최대의 행사를 통해 나라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계 두 번째 강대국인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 주석의 방북을 계산하고 그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기위한 행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김정은 집권 후 해외 정상으로서는 이미 우방 몽골의 대통령이 5년전 평양을 방문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몽골의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 강연에서 “폭정은 영원할 수없다”며 독재를 비난해 김정은과는 정상회담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세계 최강국의 하나이자 맹방이라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북한 건국행사인 9.9절에 평양을 방문해 준다면 그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건 물론이고 북한 통치자 김정은 자신의 위상을 올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과분한 행사로 시 주석의 호감을 사고싶어했을 겁니다.

전. 중국이 북한의 9.9절 축하 대표단장으로 시진핑 국가주석 대신에 권력 3위인 리잔수 상무위원을 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이 무엇일까요?

강.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3차례나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진핑 주석을 만나 급격한 관계 개선을 이뤄냈습니다. 이번 9.9절에 시 주석이 직접 평양에 와 줄것을 요청한 측은 김정은이 직접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중국이 강대국이라해도 이웃나라 지도자가 세 번을 가 주었는데 그 성의를 봐서라도 한번은 와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원칙적인 생각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중간 시 주석의 방북은 이미 합의 되었었고 북한지도부도 시 주석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공식 발표를 통해 시 주석의 방북을 중단하고 그의 심복인 리잔수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이러한 중국 지도부의 결정 번복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의 위상은 상당부분 올라갔지만 중국이 북한을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중국 탓이라는 미국의 생각이 변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김정은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시 주석의 방북을 트럼프 대통령이 눈뜨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9.9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 주석이 간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대놓고 비판하기 시작했고 미중간 무역전쟁을 벌이는 부담을 안고 있는 시 주석의 입장에서는 북한 방문때문에 미국과 더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전. 시진핑 주석이 방북하지 않아 김정은 자신도 실망했겠지만 정권 차원에서도 인민들에게 체면이 구겨졌다고 볼 수 있겠죠?

강. 그렇습니다.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준다면 김정은의 입장은 더욱 견고해지고 중국의 지지를 얻게 되면 북한당국이 당장 경제적 지원이 없다해도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김이 빠진 격이죠. 그뿐만 아니라 시진핑 주석이 방문해서 9.9절 행사에서 김정은 손을 들어 준다면, 김정은 체제를 회의적으로 보는 북한 내 반체제 인사들이나 다수의 주민들에게는 체제 전복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이 김정은의 3차례의 방중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은 건 김정은 본인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주는 것이고 인민들은 그동안 김정은이 쌓아온 국제적 명성이 단기적 해프닝,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각인시켜 줄 가능성이 커집니다.

전. 김정은이 자신과 체제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한껏 과시하는 계기로 삼으려던 이번 9.9절 행사의 최고 외국손님은 결국 중국 지도부 서열 3위 리잔수였네요.

강.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북한의 대외적 고립은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시대부터 시작됐습니다. 북한을 찾는 해외정상들은 그때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2013년 몽골대통령을 제외하고 단 한명의 정상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평창올림픽을 통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 남북, 미북,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김정은은 갑자기 국제사회에 데뷔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 죽어가는 김정은 정권을 문재인 정부가 동아줄을 내려 보내 김정은의 숨통을 튀어준 셈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는 비핵화라는 말만 내세우는 김정은의 그 어떤 미사여구도 믿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철저한 조치의 시행과 그 검증만이 남아있을 뿐이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어떤 지원도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입니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가지고도 트럼프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해서 북한주민들의 인식이 바뀌는 시절은 이미 지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풀어지지 않으면 그 어떤 쇼도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 주석이 빠진 공화국 창건 70주년은 거품으로 시작된 김정은의 실제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강 대표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내부 소식과 자료를 입수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북조선 인민통신' 지금까지 탈북자단체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