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농민에게 토지 돌려줘야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2024.04.03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농민에게 토지 돌려줘야 씨뿌리기 작업하는 모습. [노동신문 캡처]
/연합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씨뿌리기 계절입니다.

 

씨뿌리기야 말로 적기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여러 가지 요인에 구애되어서 적기보장의 원칙에서 한걸음이라도 물러서면 결국에는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 씨뿌리는 시기를 과학적으로 정하고 일정계획을 면밀히 세워야 한다

 

이 말은 여러분 당보에 실린, 농민을 향한 당부기사입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당 간부 여러분은 이런 로동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본 방송자는 도대체 북한 당국이 농민들의 지적 수준과 수십 년간의 경험을 어떻게 생각하고,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무슨 큰 학습 강론이나 되듯 떠드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8차 당대회가 결의한 12개 경제목표 중 제일 우선하는 것이 바로 식량증산이니 그만큼 사소한 문제라도 지적하여 더욱 각성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958년 농업의 집단화를 완성시킨 후 여러분 당이 제시했던 식량생산목표는 단 한번도 달성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쌀로써 사회주의를 지키자, 쌀로써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는 사상사업을 강화하며 농민들에게 식량 증산을 독촉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60여 년 동안 단 한 해도 목표했던 알곡생산을 달성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지난 3월 한달 동안 거의 매일처럼 강조한 농민에 대한 사상교양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당 간부 여러분! 로동당은 북한 농민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식량생산에 대해 과학적인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힐책하지만, 여전히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고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문제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남한 농민들의 경우 식량수요가 남아 국가수매량이 감소되자 농민들은 즉각 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조사하여 새로운 농작물 재배로 전환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한 주민들의 식생활이 고급화되고 건강 중시 식생활로 바뀌게 되어, 쌀밥 중심의 식생활로부터 점차 빵이나 과일, 야채 또는 잡곡밥으로 바뀌어가는 경향을 보이자 남한 농민들은 이런 식생활 변화 추이를 면밀히 조사하여 쌀 생산을 줄이고 야채나 잡곡생산을 증가시키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소득을 계속 높여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농민들의 시장수요에 적응하는 농산물 생산, 이것이 과학적인 창의성의 발휘입니다. 정부가 시킨다고 농민들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이런 주민들의 식생활 변화에 상응하여 생산품종을 바꾸고 과학적인 영농방법을 채택한 것입니다. 지금 남한 농촌을 덮고 있는 온실농원들이 그 상징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남북간에는 근본적인 경제체제와 사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 방송자는 78년 전, 194635일 여러분 당이 실시했던 토지개혁을 회상해봅니다.  

 

당시 여러분 당은 “9만여 명의 고용농민, 빈농민으로 구성된 12천여 개의 농촌위원회를 조직하고 불과 20여일 만에 전격적으로 토지분배사업을 실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35일 이후 1개월이 지나던 413, 토지개혁을 총결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확대위원회의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때 김일성은 일본인과 민족반역자 그리고 5정보 이상의 땅을 소유한 지주 및 부재지주 등 5만여 호의 지주로부터 몰수한 91,390정보의 토지와 14,477 동의 가옥과 대지 그리고 4,658두의 농우와 농기구 등을 724,522호의 농민에게 무상분배 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땅을 갖게 된 소작농민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제야 내 땅에서, 내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환호와 기쁨도 한 순간, 2개월 후 630일 발표된 농업현물세라는 법규정이 생기자 농민들은 실망했습니다. 왜냐? 지주나 일본인지주의 땅을 소작할 때보다 더 과중한 땅세금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농업현물세는 수확고의 25%를 현물로 징수한다고 했지만 실제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현물세는 수확고의 50%를 넘게 징수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밭갈이 하는 농민에게 토지를이라는 여러분 당의 구호는 거짓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토지를 분배받은 소작 농민들은 지난 날은 지주나 일본인 지주의 소작인이었지만, 지금은 공산당의 소작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을 뿐이라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그뿐입니까? 19461210일부터 난데없이 애국미헌납운동이란 것이 시작됐습니다. 황해도 재령 나무리벌에 사는 김제원이라는 농민이 무상 분배 받은 땅에 감사하여 김일성대학건설과 북조선 주둔 소련 해방군의 군량 및 소련 본토 거주 소련인민들의 식량지원을 위해 애국미를 바쳤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 애국미 헌납이 김제원 농민 한 사람으로 끝났다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여러분 당의 선대들은 즉시 애국미 헌납을 전 농민운동으로 확대해서 토지개혁 후 첫 수확물부터 쓸어간 것입니다.

이때부터 땅을 분배 받았던 북한 농민들은 “우리들도 소련식 집단 농장에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기우를 갖게 되었고 드디어 1954년 남침전쟁이 휴전된 직후 이른바 농업의 협동화라는 노선이 제시되더니 4년 후인 1958년에는 분배받았던 토지가 국가에 의해 몰수되고 협동농장이란 소련식 집단농장에 소속된 하나의 농민, 말 그대로 지주대신 로동당에 예속된 소작농이자 농업노동자로 전락한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19463월 실시된 토지개혁 법령 제1조는 북조선에서의 농업제도는 농민의 개인 소유인 농업경지에 의한다고 규정했고 제5조는 몰수한 토지전부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영원한 소유로 잉여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만약 그때의 이 토지개혁법령의 기본규정이 깨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더라면 북한 농민들도 남한 농민들처럼 자기 땅에서 소득을 높이며 풍요한 경제생활을 위해,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생산방식을 스스로 채택하면서 북한의 농업발전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지난 35일자 로동신문 1면에 실린 토지는 피어진 계급투쟁의 고귀한 전취물이다라는 논설은 “78년 전 부여받은 초지에 말뚝을 쾅쾅 박으며 감격과 환희로 들썩이던 어젯날 농민들의 모습은 이제는 기록영화의 화면으로 책갈피의 글줄로 알아보게 된 오늘, 우리 모두가 언제나 잊지 말고 깊이 명심해야 할 고귀한 철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말 그대로 북한 농민은 얻었던 땅을 다시 잃고 영원한 노동당의 농노로 전락한, 이 처절한 철리를 다시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은 우선 북한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갖도록 토지개혁을 즉시 실시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북한 식량과 농업생산을 배가하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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