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 김정은은 왜 당간부를 겨누었나

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민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사일이 시작되었으니 군당위원회를 비롯하여 농장 내 조직과 당원 일꾼들도 불철주야 농민 지도에 임하고 있을 줄 압니다. “모든 문제를 무조건 책임지고 풀어 나가는 철저한 사업 체계를 세우며 한편 농장 일꾼들에게 과학기술행정사업체계를 세우도록 하라”는 당 중앙의 지시를 수행하려면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5, 26시간이어도 모자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제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뛸 여러분의 처지인데 과연 이런 여러분의 일본새(업무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1월 27일 개최되었던 당중앙위원회 8기 30차 비서국확대회의 결정을 유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각 지방당위원회와 연합기업소의 당 사업이 당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조용원 조직비서의 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최근에 당내 규율을 난폭하게 위반하고 부정적인 특권, 특수 행위를 자행하면서 인민의 존엄과 권익을 엄중히 침해하는 중대한 특대 사건들이 남포시 온천군과 자강도 우시군에서 발생했다 … 2개의 사건 중 하나는 남포시 온천군 당위원회가 용납할 수 없는 당규율 위반을 자행했다. 온천군 당 위원회는 당중앙위원회의 결정 관철을 위한 군당 전원회의를 너절한 준비 하에 개최했고 그러니 회의 자체가 형식적이었으며 특히 회의를 끝내자 돌아앉아 당 일군을 포함하여 40여 명이 집단적으로 온천군 봉사기관의 음주접대를 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즉 당 중앙위원회의 결의 사항 이행 방도를 토론하는 한편 20x10지방공장건설 계획에 따라 이 지역 공장 건설도 끝냈으니 군당위원회 위원장으로서는 수고한 일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속된 말로 뒷풀이, 한 잔씩 마시는 위로연을 개최했다는 것입니다. 온천군 국영상점에서 소주 몇 병 가져다가 40여 명이 모여 한잔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그처럼 특대 사건입니까? 중앙당 비서국 일꾼들은 이런 모임을 가지지 않습니까? 김정일 시대에는 기쁨조를 불러 진탕망탕 한 명에 1,000달러씩 하는 외제 고급 양주를 물 마시듯 하지 않았습니까?

이 비서국확대회의에서 제기한 또 하나의 특대사건이란 “자강도 우시군 농업감찰기관 감찰원들도 자기들의 권력을 악용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재산을 마구 침해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거리낌 없이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로동신문의 보도만 보는 방송자로서는 구체적인 범죄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짐작하건데 농장의 위법행위, 예를 들면 국가 수매에 전적으로 응하지 않고 쌀이나 알곡을 숨겼다가 발각되었을 경우 그 진상을 확대해서 체포, 구금, 위협하고 무서워 떠는 농민에게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음으로써 농민들에게 심대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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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감찰원의 행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권력 있는 자들의 이런 무법적 행위는 북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까? 당 간부 여러분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뇌물을 괴지 않으면 북한에선 그 어떤 사소한 문제, 예를 들면 통행증 발급, 기차표 구입, 해외 외화벌이 노동자 선발, 병원에서의 치료, 학교 입학, 군입대 문제, 최근 국제적 관심사가 되는 우크라이나 인민군 파병 관련 문제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 아닙니까? 우크라이나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인민군은 “당 간부 재력가의 자식은 파병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의 말인즉 “이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세도를 부리고 인민에게 생활고를 안겨주었다”고 했는데 본래 공산당 1당 독재국가에서는 그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공산당 간부들의 특권 행위는 일상화되고 있었습니다.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라는 러시아 말이 북한 내에서도 이미 현실화한 지 오래지 않았습니까?

당 간부 여러분은 왜, 이 시기에 느닷없이 비서국확대회의를 개최하고 전 당원에게 위협, 경고를 발했는가? 해외 북한 관찰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김정은의 세습독제체제도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당 1당 독재국가와 전혀 다른 점이 없다. 당 간부들의 세도 행위, 이를 이용한 부정부패가 일상화되었고 그 결과 사라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처럼 종말적 체제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견해를 제기합니다.

김정은은 “전당이 시군 강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변혁사업, 20x10사업이 진행되는 시점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해야 할 당 간부들이 당 의도에 배치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나라의 200분의 1을 차지하는 한 개 지역을 비당화, 비정치화, 비사회주의화의 함정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엄중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 말은 바로 그만큼 여러분 당 구석구석이 허물어지고 있으며, 중앙당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입증한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지난 10년간 김정은의 정책이 인민대중은 안중에 없이 오직 핵미사일 개발로 자신의 세습체제 안정에만 주력했기 때문이지요.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본분과 사명은 인민대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간 김정은이 해 온 정책은 인민대중은 빈곤과 기아에 몰아넣는 정책이었습니다. 세기적 후진성으로 지방 주민과 농민들의 생활 형편이 말이 아닌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국가의 자산과 자금, 노동자와 농민이 피땀 흘려 번 외화를 뭉텅뭉텅 핵미사일 개발에 쏟아붓다 보니 또다시 고난의 행군 시기 못지않은 인민의 생활 고통이 발생했습니다. 이뿐입니까? 러시아에 용병으로 파견된 폭풍군단 관병들은 전투지역에 배치된 지 1개월 만에 병력 4,0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니, 더 이상 무슨 방법으로 인민대중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을 비롯한 당 수뇌부의 위기의식이 드러난 현장이 바로 비서국확대회의였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당 수뇌부는 구태의연한 공포정치, 가혹한 통제로 인민대중의 불평불만을 억제하려 하지만 더 이상 먹혀들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