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 들여다보기 시간입니다.
- 9월 22일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아 북한의 추석 풍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북한이 대북수해지원 물자로 남한이 지원하는 쌀 5천 톤에 대해 “속통이 작다”고 불평했습니다. 남한의 대북 쌀 지원 의미를 짚어봅니다.
- 평양시민들 속에서 주택 사정이 심각해 ‘방공호’용 지하실을 사고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정영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정영기자, 안녕하십니까, 지금이 9월 22일 새벽, 추석날이지요, 북한 주민들은 추석을 어떻게 쇱니까,
정영: 북한에서도 음력 8월 15일이 되면 추석을 쇱니다. 공장 기업소에서는 추석을 쇠라고 하루 휴식을 주고, 농민들은 한 해 지은 벼를 베어 탈곡해 첫 햅쌀을 생산합니다. 원래 추석은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하루 농사를 잘 짓고 풍요로운 가을을 기리는 민속명절이지요, 남한은 이미 농경사회를 뛰어 넘어 산업화가 되면서 추석을 쇠는 풍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산에 성묘를 가는 모습은 북한과 비슷합니다. 북한에서는 추석날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날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추석날 놀게 합니까,
정영: 한국에서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이 21~23일까지 아닙니까, 거기에 주말까지 끼어있어 9일 동안 쉬는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추석날 보통 하루를 쉽니다. 북한에서 추석을 쇠는 풍경은 여러 차례 당국의 지시로 변해왔는데요, 어떤 때에는 하루도 쉬지 못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는 추석날 조상들에게 차례나 제사를 지냅니까,
정영: 북한에서도 추석날 아침에 조상을 향해 차례를 지내고, 자손들을 거느리고 산에도 성묘를 갑니다. 차례를 드리는 의식은 대부분 맏아들 집에서 하는데, 조상의 영정 사진을 놓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상을 차립니다. 남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송편은 추석날 빼놓을 수 없는 특식이지요, 고사리, 콩나물, 달걀 지짐, 녹두지짐, 돼지고기 산적(부침개) 등 아마 연중 제일 잘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낸 다음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가족들을 데리고 산으로 갑니다. 저의 집도 아침에 차례를 드리고 아버지와 삼촌 등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절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 11시쯤에 선발대가 먼저 묘에 가서 벌초를 한 다음 12시에 맞춰 가족 일행이 조상 묘가 있는 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조상묘 상돌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어른부터 시작해서 손자까지 차례로 절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고스레’ 즉, 싸온 음식을 한 점씩 뜯어 산신에게 드린다는 의미에서 묘 옆에 있는 큰 나무 밑에 묻어줍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묘 앞에서 차린 음식을 먹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한해 농사지은 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드리고 앞으로 후손들을 잘 돌봐달라는 그런 유교 관념에서 유래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서는 추석날을 가리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지 않나요. 그만큼 추석은 연중 제일 큰 명절인데, 북한은 어떻습니까,
정영: 한국에 와서 보니 추석과 음력설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민족최대의 명절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인데, 남한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개인 우상숭배가 없는 것을 보고 그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추석이 지도자의 생일보다 뒷전입니다. 앞으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면 민족최대의 명절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죠. 북한에서는 추석을 쇠는 풍습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대들은 차례 순서라든가, 차례 음식 배치, 의상 등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북한당국이 차례의식을 봉건적이다, 허례허식이라면서 추석이나 음력설 등 민속명절을 장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진행자: 게다가 북한에서 홍수피해를 입으면서 올해 추석 분위기가 썩 밝지만은 않겠군요.
정영: 원래 추석은 한해 농사를 잘 짓고 그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즐기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신의주를 비롯한 내륙지방에 홍수가 나면서 곡식이 모두 물에 잠겨 곡식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북한 선전 매체들도 홍수피해를 당한 수재민들이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천막을 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남의 집 동거살림을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니 추석은 찾아 왔지만, 주민들이 편안하게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고 성묘를 하겠습니까,
진행자: 그렇군요. 남한이 신의주 홍수피해 지원으로 쌀 5천 톤을 보냈다는 소식도 있는데, 추석을 맞는 수재민들이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 쌀 지원 고작 5천 톤” 불평
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 매체가 대북 수해지원물자로 남한이 지원하는 쌀 5천 톤을 두고 작다고 불평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어떤 소식입니까,
정영: 북한 대외홍보용 매체인 ‘통일신보’는 19일 “남조선에서 큰물(홍수) 피해를 입은 북의 동포들에게 수해물자를 지원하고 쌀을 보내준다고 법석 떠들었는데 정작 지원함의 뚜껑을 열어보니 쌀 5천t이었다”면서 “그 심보, 속통의 크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비꼬았습니다. 통일신보는 또 “남측이 보내겠다는 쌀 5천 톤은 공화국 주민 하루 분량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 “그나마 빌려준 쌀을 후에 돈으로 받는다는 차관형식”이라고 지원 성격까지 왜곡하면서 불평했습니다.
진행자: 이번에 남한이 지원하는 것은 대한적십자가 보내는 무상지원이 아닙니까,
정영: 북한 매체는 이번에 남한이 지원하는 쌀이 무상지원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남한이 북한에 보내는 수해지원 물자는 차관이 아니라 무상으로 지원하는 겁니다. 쌀 5천 톤과 컵라면 300만개를 포함해 미화 850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 지원물자는 북한 주민 전체에게 주는 게 아니라 신의주 지구를 비롯해 홍수피해를 당한 주민에게만 지원되는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유종하 총재는 “신의주 지역 수재민이 약 8만~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5천 톤이면 10만 명 기준으로 100일간, 20만 명 기준으로 50일간 먹을 식량으로 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아마 지난 정권 때처럼 쌀 지원을 크게 기대했다가 지원물자 량이 작아 불평하는 거라고 한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자기들이 침몰시킨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없으면서 지원규모가 작다고 투정하는 군요.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전쟁 비축미로 쌀 100만 톤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 않습니까,
정영: 지난 16일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북한이 전쟁 비축미로 무려 100만t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북한은 (남한에서)쌀을 지원받으면 군량미로 먼저 비축하고, 기존에 비축했던 쌀을 푸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남한 정부는 지난 1995년 8월 대규모 수해로 식량사정이 악화된 북한에 15만t의 쌀을 처음으로 지원했고, 2000~2007년까지 차관형식으로 6차례에 걸쳐 240만t을 제공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북한이 진짜 전쟁비축미로 100만 톤 이상을 저축할 수 있습니까,
정영: 가능합니다. 북한은 가을이 되면 먼저 군량미를 걷어갑니다. 군량미 담당부서인 ‘2호관리부’에서 매 농장을 돌면서 ‘2호미’를 걷습니다. 이것을 내지 못하면 농장 관리위원장들은 감옥에 가야 합니다. 협동농장에서는 군량미를 다 바친 다음에 국가에 양곡을 수매합니다. 이 양곡은 당, 보위부, 보안부 등 권력기관들의 배급으로 충당됩니다. 그리고 농장원들이 분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항상 농사짓는 사람들도 식량이 모자라 받지 못합니다.
진행자: 그러니 정치권에서 북한이 전쟁 준비로 쌀을 저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군요.
=평양시 아파트 지하방공호 살림집으로 이용
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주제를 좀 바꿔 이야기 하겠습니다. 평양시에 아파트 밑에 굴설된 지하대피소가 살림집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어떤 소식입니까,
정영: 평양시 아파트 밑 지하대피소는 1990년 초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차 핵위기 때였지요, 미국이 비행기 200대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평양시민들에게 주택 밑에 방공호를 파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부터 지하실이 없는 아파트 건설은 인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양시에서는 아파트 밑에 지하실을 파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모시는 ‘모심칸’을 만드는 등 난리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하실이 살림집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진행자: 방공호에서 사람이 살 수 있습니까,
정영: 아파트 밑에 있는 지하실에 뙤창문이 있는데,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집이 없는 제대 군관들에게 마지못해 들어가 살았는데 살아보니 괜찮아서 미화 1천 달러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하실을 산 사람들은 칸을 막아 부엌과 아랫방을 만들고, 벽을 미장하고 전기를 끌어들여 살림집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지하 방공호에는 취사를 할 수 있는 부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방에는 침대를 놓는 거지요. 남한의 반 지하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진행자: 평양시도 주택사정이 어렵습니까,
정영: 평양에서도 살림집 건설이 근 20년 동안 중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서 여러 세대가 사는 동거 가족이 많습니다. 서로 눈치 보면서 아들, 딸자식들을 세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이번에 평양에 건설되는 10만 세 대 살림집 건설도 평양시의 긴장한 주택문제를 풀기 위해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진행자: 배는 좀 곯아도 자기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지금 건설되는 10만 세대 살림집이 빨리 건설되어 집이 없는 주민들에게 하나씩 차례지는 그런 바램을 가져봅니다.
정영기자,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