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성분제, 특권층 세습 도구로 변질”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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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밤 북한 주민들이 평양 대동강변 하늘에서 터지는 '조국해방 70돌'을 기념 축포를 구경하고 있다.
제70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밤 북한 주민들이 평양 대동강변 하늘에서 터지는 '조국해방 70돌'을 기념 축포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선 과거 전근대적인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신분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성분제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은 헌법엔 모든 주민을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해놓고는 실제론 토대, 즉 출신 성분에 따라 주민을 철저히 분류해서 관리해오지 않았습니까? 그 실태를 우선 살펴보지요.

란코프: 북한에서 헌법은 아무 의미가 없는 선전 자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북한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에서 헌법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헌법에 따라 주민들이 똑같은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북한은 1950년대 말부터 사용해 온 성분제는 현대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분제는 양반과 천민들을 명확하게 구별했던, 봉건주의 사회 구조와 매우 유사합니다. 북한의 성분제를 신식 봉건주의라고 하면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봉건주의 시대에 양반집 아들은 고급 관리나 장군이 될 수 있었고, 가난한 천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고된 육체노동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배경 때문에 신분 때문에 천민 출신이면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특히 김일성 시대 그랬습니다.

기자: 그런데 그런 현상이 근래 들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하죠?

란코프: 북한에서 최근에 많은 변화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아직까지 토대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체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 소련과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혁명 이전에 차별을 받았던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와 간부가 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제공하였습니다. 당시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서 혁명 이후, 노동 계급 출신이면 어느 정도 특권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자라난 소련에서 1980년대 말까지 좋은 대학교는 신입생들 가운데 노동 가족 출신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그런 좋은 대학에선 반드시 노동자 신분 계층의 자제들을 뽑아야 하는 규정이 있었군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소련은 1980년대까지 아주 좋은 대학이라도 노동자, 농민 출신의 자제를 입학시켜야 했습니다. 사실상 저도 노동자 집 아들이었기 때문에 입학이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이와 같은 체제에 많은 왜곡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성분제는 원래 노동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분제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당 간부들을 비롯한 지배 계층이 그들의 특권을 세습화하는 체제로 변절되었습니다. 구소련의 경우 노동자와 농민들은 토대가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입학을 할 때도, 입당을 할 때도 그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당 간부 집 자녀들입니다.

기자: 북한에서 성분제가 노동자, 농민을 위한 게 아니라 지배계층의 특권을 세습화하는 도구로 변질이 됐다고 하셨는데요. 아무리 머리가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나도 출신 성분이 안 좋으면 북한에선 성공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군요?

란코프: 김일성 시대는 물론 그랬습니다. 머리가 매우 똑똑할지라도, 성분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상 성공할 길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외가 어느 정도 있긴 하였습니다. 토대가 다소 나쁜 사람일지라도, 중요한 과학이나 기술에 대한 자질과 능력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성공이 가능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토대가 매우 나쁜 사람에게는 김일성 시대에 아무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사람은 과학자나 기술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기자: 그나마 다행이네요.

란코프: 맞아요. 김일성 시대에 가장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은 물론 토대가 좋은 간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분에 아무 문제가 없어야만, 노동당 간부나 보위대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북한에 경제 혼란과 장마당 성장으로 인하여 성분의 힘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면 토대가 나쁘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성분은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장마당 시대에 출신 성분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지금도 북한에선 원칙적으로 성분이 나쁜 사람이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기가 어렵고, 간부가 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김일성 시대에 잘 사는 방법은 간부가 될 뿐이었습니다.

기자: 북한은 '핵심, 동요, 적대' 등 크게 3개 계층으로 분류한 뒤 다시 이를 51개로 나눠서 주민들을 차별해왔습니다. 북한이 21세기에 들어서도 왕조국가에나 볼 수 있는 신분계급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구 소련이나 중국도 이런 신분제도를 유지했습니까?

란코프: 최신 보도를 보면, 북한 성분제는 요즘 더욱 더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3개 계층으로 구성된 체제는 김일성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세습적인 신분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현재 지구상에서 매우 낙후된 나라들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수백 년 동안 봉건 체제를 경험했던 대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오늘날 귀족이라는 특권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국가에는 지금까지도 지주들이 많이 존재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토지개혁으로 지주란 사회 계습을 없애 귀족이나 양반들과 같은 세습 계층의 경제 기반을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인맥 즉 개인 관계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나라들이 아직까지도 많긴 하지만, 북한처럼 형식적으로 정해진 신분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북한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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