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미국의 ‘스파이법’
2023.03.14
MC: 북한 김씨 가문의 독재체제와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에서 법이 생겨나고 적용되는 원리와 관련 사례를 살펴보는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시간에 한덕인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 미국에서 중국이 띄운 ‘정찰풍선’을 격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2월4일 미국 동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영공에서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은 미군 F-22 스텔스 전투기가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에 격추돼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거대한 풍선 모양의 이 기구가 처음(1월28일) 포착된 뒤,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격추 작전을 수행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격추된 풍선의 크기는 버스 3대를 합친 크기였습니다.
미국은 국방부와 연방수사국(FBI)이 협력하여 해당 풍선의 잔해와 정찰용 장비를 포함한 정보 가치가 있는 물체를 최대한 수거하고, 중국의 영공 침입 목적과 정보 수집 역량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AP통신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미군 당국은 중국이 정찰 풍선 선단을 운영해 왔으며, 최근에 격추된 정찰 풍선 역시 이 선단에 소속된 것으로 봤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해당 풍선이 민간용 기상 관측 비행선이었고, 불가항력적으로 미국 영공에 진입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격추 작전은 과잉반응이며 국제 관례 위반이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미국은(2월22일) 자국 정찰기가 촬영한 중국의 정찰풍선 사진을 분석한 결과, 해당 풍선이 중국이 주장한 기상관측용 민간 비행선이 아니라 정찰용 풍선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뺏어내려다 들키는 것도 자칫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상대 국가의 비밀을 빼내거나 염탐하는 일은 국가 안보와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해외정보감시법(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 줄여서 ‘파이자’(FISA)로도 불리는 ‘외국인감시법’과 그 안에 든 ‘섹션702’(Section702), 즉 해당 법의 702번째 조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해외정보감시법은 미국 정부가 외국 국가나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과 관련된 정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규정과 절차를 규정하는 법률로, 말하자면 미국의 ‘스파이 법’같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본토 상공에 출현한 중국의 정찰풍선을 대서양 상공에서 격추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미국 역시 이런 해외정보감시법을 이용해 중국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2018년에는 외국인과 관련된 정보 수집 목적으로 해외정보감시법에 따라 미국 정부가 중국의 통신사 화웨이와 ZTE의 미국 내 기업들의 통신망을 감시한 바 있습니다. 2019년에는 중국과 관련된 정보 수집을 위해 미 국가안보기관들이 중국인 학생들과 학자들의 전화나 이메일 등을 감시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각국의 스파이 활동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잠재적 적국의 동향과 의도를 파악하는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스파이 활동은 주로 북한 정찰총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압니다. 정찰총국은 간첩을 양성하고, 외교관, 학생 노동자 등으로 위장해 해외에 파견하거나, 남한에 포섭된 북한인들을 간첩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해외정보감시법에 따라 외국정보감시법원(FISC)이라는 특수 법원의 영장을 받아 외국인과 해외 국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통신 감시나 수색을 할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영장은 미국 내부에 대상에 한정되고, 미국 외부에 있는 비미국인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는 섹션702와 같은 다른 규정이 적용됩니다.
섹션702는 2008년 해외정보감시법 개정법의 일부로 제정된 감시 권한으로 외국인에 대한 영장 없는 감시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입니다. 섹션7209는 외국 정보 수집이 감시의 주요 목적이라면 미국 정부가 영장 없이 인터넷과 전화 통신을 감시할 수 있게 합니다.
한편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 (FISA): An Overview)는 섹션702가 미국 영토 내에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미 연방 수사 당국이 미국 해외에서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는 외국인을 감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미국 영토 내에 있는 외국인과 통신할 경우 그 통신 내용도 섹션702에 따라 수집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 있는 외국인을 직접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고, 국내에 있는 외국인을 감시하려면 해외정보감시법의 다른 조항이나 법률에 따라 영장 등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외정보감시법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부분은 만료일이 있고 섹션702도 이 중 하나인데요. 섹션702는 연방의회가 유효기간 연장을 재승인하지 않는 한 올해 12월31일로 만료될 예정입니다.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한 미국의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은 앞서 몇차례 수정을 거친 해외정보감시법과 섹션702를 위해 법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의 승인, 해외정보감시법원의 검토, 그리고 정부와 사법부의 감독을 따르는 엄격한 절차를 시행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의원들 사이에서는 해당 법률에 따른 감시가 너무 포괄적이고 무차별적이라 미국인의 개인정보 보호와 시민권리마저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 조항의 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인의 사생활이 정당한 이유가 있는 영장 없이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미국 헌법 제4조를 강조하는데요.
섹션702는 2008년 제정 이후 2012년과 2018년에 두 차례 재승인을 거쳤지만, 이 과정에서 영장 없는 감시 권한에 대한 내용 자체는 사실상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섹션702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의 대상에만 적용되야 하지만 감시 대상과 소통하는 미국인의 통신도 우발적으로, 또는 부수적으로, “우연찮게” 수집(incidental collection)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반발의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법은 결국 우리의 행복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지만 때론 그 개인이 속한 집단 즉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는 일부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기도 하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섹션702의 ‘부수적 수집’에 대한 논란 등이 있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연방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의 고위 관리들은 이것은 특히 북한을 비롯한 적대 외국 세력에 대한 정보 수집에 필요한 필수적인 도구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러한 법률 없이는 ‘명분’이 필요한 미국 정부가 자국에 대한 잠정적인 테러를 막고 국가 안보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은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메릭 갈랜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폴 나카소네 미 사이버사령관 겸 국가안보국 국장 등 관련 당국의 고위 관리들이 연방의회 측에 해당 법률의 연장 승인을 촉구하는 모습이 많이 비치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의 매튜 올슨 국가안보 담당 차관보는 최근 미국 민간연구기관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행사에 나와 해외정보감시법과 섹션702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도 그 이유로 들었는데요.
올슨 차관보: 해외정보감시법 702조는 미국이 오늘날 가장 긴급한 위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중국 정부가 우리의 민감한 기술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이란은 제재를 회피하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심각한 위협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미국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노력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저는 특히 우리가 직면한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해외정보감시법 702조가 만료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러한 위협에 눈이 가려져선 안 될 것입니다.
이어서 해외정보감시법과 섹션702에 관한 실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1976년에 처음 제정된 해외정보감시법의 적용 범위와 감시 권한이 확대하게 된 가장 중대한 계기는 2001년 미국 뉴욕의 쌍둥이빌딩에 비행기가 내리 꽂힌 9/11 테러였습니다.
미국 연방수사당국은 9/11테러 이후 알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 조직을 조사하고 테러 용의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에 확대된 해외정보감시법의 적용 범위와 감시 권한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미국인에 대한 섹션702의 ‘부수적 정보 수집 논란’을 가시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 분석가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에서 비밀리에 쓰여온 정보 수집 방식을 폭로한 사건이 있습니다.
스노든은 국가안보국이 섹션702에 따라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인의 전화 기록을 대규모로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해당 감시 프로그램의 범위를 드러내는 기밀 문서를 유출했고, 이는 섹션702가 미국인의 통신 내용을 수색하거나 수집할 수 없다는 법적 제한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스노든의 폭로로 해외정보감시법이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고, 해당 법률의 개정 논의에 불을 붙인 시발점이 됐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대선 후보였던 선거캠프 이메일이 러시아에 의해 해킹당했다는 러시아 대선 개입 혐의가 제기되면서 미국 내외에서 큰 논란이 된 일이 있었는데요. 당시에 미국 수사당국이 섹션702를 해당 혐의 조사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해당 법률이 미국에 대한 테러를 방지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 사례도 실제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남성으로 알카에다와 연관돼 있었던 나지불라 자지라는 이름의 남성에 관한 사건입니다.
자지는 미국 서부 콜로라도주에 있는 오로라라는 도시에 거주하던 주민으로 공항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자지가 2009년 9월에 9.11테러 기념일을 맞아 뉴욕시 맨해튼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를 가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키스탄에 있는 알카에다 조직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폭탄제조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미 국가정보국은 자지가 연락한 알카에다 조직원의 이메일 계정을 섹션702에 따라 추적하고 있었고, 자지와 그의 공모자들을 폭탄 테러가 일으나기 전에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수사 당국에 덜미가 잡힌 자지는 2010년 2월에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미국의 해외정보감시법과 섹션702는 테러를 예방하고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명목 아래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주변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역사가 짧지 않은 나라입니다.
미국 정부는 해당 법에 따라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으로 간주되는 북한 지도부와 이들과 연루된 해외 권력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북한과 관련된 주요 인물의 이동을 추적하거나 이들의 전화 내역과 인터넷 사용 기록 등을 도청하는 등 이들의 의도와 활동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통신망을 모두 통틀어 감시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엿듣고자 하는 내용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크고,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제재 회피를 추적하거나 가상의 공간에서 빈번한 북한의 악성 사이버활동을 감시하고 이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는 데 활용될 것입니다.
비록 연방 수사 당국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같은 법률을 통해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이 북한을 감시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러한 법을 하나의 ‘명분’으로 삼고 북한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자 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국제규범을 어지럽히는 북한의 불법적인 행태가 끊이지 않는 한 이같은 감시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MC: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저는 한덕인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