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재해 대책
2023.08.11
올 여름 역사상 보기 드문 집중호우로 한반도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해방지 대책이 잘 되어있는 남한도 기습적인 폭우로 인해 인명피해도 있었고 적지 않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여러 날에 걸쳐 폭우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북한 당국은 이번 큰물(홍수) 피해규모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상 이변과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해마다 큰물 피해(수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큰물 피해뿐 아니라 대형 사건사고나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상황을 외부에 밝히지 않는 것은 북한의 오랜 관행입니다. 처참한 피해규모가 주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질 경우, 민심이반으로 인해 체제유지에 부담이 되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도 올 여름 폭우로 곡창지대인 황해도의 논밭이 침수되고 저지대 살림집(가옥)들이 파괴되어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집중호우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해, 사정이 다급해지자 국제 사회에 피해상황을 알리고 도움의 손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유엔과 국제사회에는 도움을 청하면서도 남한정부의 식량과 수해복구 물자 지원 제의에 대해서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방식으로 거절했습니다.
북한의 큰물 피해는 해마다 어김없이 되풀이 된다고 외부 관찰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봄 가뭄에 이어 여름에는 함경남북도를 비롯한 북한 전 지역에 물폭탄이 쏟아져 5천여 채의 살림집이 휩쓸려가고 곡창지대인 황해남북도 농경지의 30% 이상이 물에 잠기면서 북한의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가뜩이나 심각한 식량난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때 북한당국이 취한 수해복구 대책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안들이 대부분입니다.
북한은 무슨 일이 발생하면 일단 당 회의부터 소집하는 ‘회의 정치’가 우선합니다. 함경남북도, 황해남북도에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자 노동당 군사위원회 회의부터 소집했습니다. 공병부대와 지역 주둔 군부대를 동원해 신속한 피해복구에 나서라는 게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얼마나 투입해 효과적인 피해복구가 이뤄졌는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고 외부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북한의 큰물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라고 지적합니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인 북한에서 산림녹화와 하천관리만 잘 해도 홍수피해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탈북민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산들에 나무가 울창하던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가뭄이나 홍수에 그렇게 취약한 나라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이른바 ‘대자연개조운동’이란 것을 시작했는데 식량증산을 위해 다락밭을 만든다면서 나무를 잘라내고 산을 깎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마땅한 연료를 구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화목으로 쓰기 위해 산의 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바람에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을 7-8부 능선까지 깎아내 밭으로 만들다 보니 장마철 집중호우에 빗물을 거를 나무가 없어 흘러내린 빗물과 토사가 섞여 흙폭탄으로 변해 민가를 덮치고 농경지를 메우게 된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장마철 큰물 피해가 유독 북한에서만 매년 되풀이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탈북민과 외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는 민가와 농경지에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량의 토사가 하천과 강바닥을 메움으로써 하상(강바닥)을 높이고 많은 비가 내릴 경우, 강과 하천이 범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큰물피해 방지를 위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당국도 해마다 여름철 수해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선전매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군대와 주민을 동원해 허술한 제방을 보수하고 강과 하천 바닥의 흙을 퍼내는 준설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매체가 소개하는 수해방지 작업 현장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제방 보수를 하면서 마대에 흙을 담아 물막이 보를 쌓는데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장비나 시멘트, 콘크리트 같은 자재는 보이지 않고 사람 손으로 흙 포대를 만들어 제방이라고 막아 놓으니 다음 해에 큰물이 지면 허망하게 무너져 홍수피해가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홍수방지를 위해 하천 바닥을 준설하는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신속하게 준설해야 하는데 주민들을 동원해서 오로지 인력으로 하천 바닥의 흙을 퍼내고 있으니 준설작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북한이 무기 개발에 투입하는 자금과 장비의 10분의 1이라도 수해방지 사업에 활용한다면 매년 여름 되풀이 되는 북한의 큰물 피해는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탈북민들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