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문학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4.08.23
[오중석의 북한생각] 북한의 문학 사진은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튜브 'NEW DPRK'의 영상에 등장한, 4·15문학창작단 소속 백남룡 작 '부흥'의 모습. '부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업적을 소재로 한 첫 장편소설이다.
/연합뉴스

북한은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민대중의 혁명 의식과 혁명적 세계관의 형성 발전을 도와주고 인민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발전을 믿고 혁명화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 창작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창작목적은 주체사실주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주체사실주의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 한 단계 더 발전된 창작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이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북한에서 모든 문예 창작활동은 주체사상에 입각해 인민들의 혁명화에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창작활동의 독창성과 자율성, 예술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김씨일가 우상화와 체제보위를 위한 민중의 혁명화 교육에 촛점이 맞춰진 북한의 문학은 수천 년을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의 문학적 유산을 훼손하고 있으며 민족문학 발전의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소설을인민들 속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형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학 수준은 소설문학의 사상, 예술적 높이에 따라 평가된다면서 소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설이 발전하고 창작 분야의 혁신이 일어나야 문학예술이 주어진 사명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과 혁명화라는 울타리 안에 문학을 가두어 놓고 소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율배반적인 문예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복직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문학창작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주도한 북한정권이 수립된 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념을 전파하고 주민 세뇌를 통한 사회동원이 필요해지면서 자유 문학은 사라지고 주체사상과 김씨왕조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의 창작물만 허용되는 문학의 정치적 이용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은 모든 예술은 서사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여서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서술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 독자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주려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필요한데 이를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북한의 문학은 말그대로 속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실주의와 세계문학사조의 큰 줄기인 사실주의 문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수령’, 즉 김씨일가 절대권력자를 중심에 놓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인민대중이 시대적 소명을 알고 주인공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문예창작에도 수령의 사상과 지도가 있어야 한다는 게 북한의 주장입니다. 문학을 통해 주체시대를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수령을 형상화해야 하며 수령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북한 문학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1960년대 김정일은 유일체계 확립과정에서 새로운 혁명문학 건설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수령을 중심으로 한 혁명문학을 건설하기 위해서 문학에 대한 당적 지도와 당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북한문학의 주제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의 혁명 활동과 혁명가정을 내용으로 한 작품,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사회주의 건설을 주제로 한 작품, 계급교양을 주제로 한 작품, 조국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 등 몇 가지로 분명하게 제한됩니다. 이 중에서도 수령(김씨) 일가를 중심으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올바로 세워가는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북한문학 창작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 북한문학 창작의 기본이 되는 인물은공산주의적 도덕적 인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체사상의 요구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형을 공산주의적 도덕적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 문학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충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광복직후와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을 대표하던 문인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이념에 현혹되어 자진 입북하거나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월북한 문인의 숫자가 12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그 당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인들로 6.25전쟁을 전후한 한국문단이 특별한 대표작 하나 없이 피폐해지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월북 문인중에는 시인 백석과 오장환, 이용악 등이 있는데 백석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론가들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쓰는 서정시인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북한에 의해 납북된 문인중에는 한국문단의 거두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춘원 이광수, 시인 정지용, 김억, 김진석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납북은 한국문단의 흐름에 커다란 공백기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월북이던 납북이던 북한으로 간 문인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오랜 기간 금기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월북작가들의 작품은 발표, 출판, 낭송등이 모두 금지되어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작가들에 대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알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다행히 1988 7 19일 당시 한국정부는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발표하고 월북 작가 120여 명의 작품 출판과 유통을 허용했습니다. 이 덕분에 한국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 <향수>의 작가 정지용과 시인 백석, 문학사에 빛나는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등 월북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언급할 수 없었던 작가들이 한국인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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