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사람 잡는 백두산 답사행군

서울-오중석 xallsl@rfa.org
2023.12.29
[오중석의 북한생각] 사람 잡는 백두산 답사행군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인민군 전투비행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 행군대원들과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015년 4월 보도했다.
/연합

북한 정권은 지난 70년대부터 청소년 학생들과 당정의 주요 기관, 공장 기업소 등 단위별로 백두산 혁명사적지 답사행군대를 조직해 매년 한 차례 답사행군을 진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은 북한이 소위 ‘혁명의 성지’라고 부르며 신성시하는 곳입니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투쟁을 벌였고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 백두산이라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 조선중앙TV 등 선전매체들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날씨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답사 행군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1월 하순 백두산의 겨울이 시작된 때부터 백두산 답사 행군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내년(2024년) 2월까지 고등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은 물론 교원, 공장 기업소 종업원, 기관 간부 등 다양한 계층으로 행군대를 조직해 혹한기 답사행군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이 계절에 관계없이 1년중 상시적으로 진행하던 백두산 답사행군을 혹한기 행군으로 변경한 것은 지난 2019년 겨울부터입니다. 작년(2022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된 혹한기 행군에는 여성이나 어린 중학교 학생도 예외 없이 참가토록 해 여성과 청소년을 극한의 환경에 내몰았습니다. 북한은 청소년들에게 혹한기 행군을 강요하면서 “청소년들 속에 썩어 빠진 부르주아 사상문화를 침투시키려는 적들의 책동을 혁명적 사상문화로 압도하기 위해서”라고 행군의 목적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백두산 답사행군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당과 국가, 군대가 백두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1930년대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항일혁명을 하면서 군대를 만들고, 당조직을 운영하며, 나라를 찾아주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과 김정일이 이곳에서 태어나서 백두산이 낳은 영웅의 자격으로 최고지도자가 됐다면서 김정은을 포함한 소위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특히 2019년 겨울부터 백두산행군을 특별히 강조하며 전 주민을 대상으로 혹한기 행군을 실시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긴박한 목적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요즘 북한에서 청소년 학생들이 외부 문화, 특히 남한 드라마와 영화, 노래에 심취하고 이를 통한 남한 생활상에 대한 동경이 도를 넘고 있어 당국이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청소년 학생은 물론 간부층에 이르기까지 전 주민을 혹한기에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어 강행군을 시킴으로써 딴 생각을 하거나 외부사상문화에 눈을 돌릴 겨를을 주지 않겠다는 발상입니다.

 

백두산행군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은 혹한기 답사행군중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 변변한 방한복도, 방한화도 지급해주지 않아 개별적으로 방한장비를 마련해야 했고 숙소에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방한복을 껴입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추위에 시달리는데 식사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따끈한 국물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행군을 하다 동상환자가 발생해도 병원 후송은커녕 마땅한 치료도 해주지 않고 행군을 강요하거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탈북민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생이나 일반주민 행군대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죽도록 고생을 하는데 당 간부, 권력기관 간부들로 조직된 행군대는 든든한 방한장비와 따뜻한 숙소, 좋은 식사를 보장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같은 답사행군이라도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국가가 직접 조직하느냐 각 지방의 직능별 단체에서 자체로 조직하느냐에 따라 행군 조건은 큰 차이가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해마다 800~900개의 답사행군대를 조직해 주민들을 혹한기 행군에 내몰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소위 청소년 사상개조를 위한 청소년 답사대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정권의 뿌리인 백두산 항일빨치산 전적지와 혁명사적지는 대부분 북한의 어용사학자들에 의해 날조된 허위라는 것이 외부 전문가,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지 오랩니다.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백두산일대에 항일유적과 혁명사적지를 날조하고 가짜 증거와 문서를 조작해 김씨일가 우상화의 성지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남한뿐 아니라 외부세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입니다. 9월이면 겨울이 시작되고 한겨울 평균 온도가 영하 30도에 달하는 곳입니다. 실제로 지난 12월 21일 백두산은 영하 36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혹한 속에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주민들이 답사행군이란 이름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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