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의 북한생각] 북 주민의 겨울나기 걱정
2024.11.22
해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11월에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김장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며 슬기로운 월동 대책의 하나입니다. 요즘 남한에서는 김장철을 맞아 시장과 마트(상점)에 배추, 무 등 김장 재료가 수북이 쌓여 있고 양념에 쓰일 마늘, 고추가루 등도 활발히 거래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겨울이 일찍 시작되기 때문에 10월에서 11월 사이 김장을 서둘러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장을 ‘반년 치 식량’이라고 하면서 온 가족이 동원되어 김장 재료 마련에 총력을 다합니다. 추운 겨울에 마땅한 반찬거리(부식)가 없는 북한주민은 11월 하순부터 다음해 4월 봄나물이 돋는 시기까지 6개월간 밥과 함께 김치를 주요 반찬으로 삼아 식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겨울이 춥고 긴데다 먹을 것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김장 담그는 일이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김장 때 담그는 김치의 양도 남한에 비해 엄청나게 많습니다. 남한은 한 가구당 30~50kg이면 되는데 북한에서는 한 가구당 적게는 200~300kg에서 보통 500~600kg의 김치를 준비한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오래 전부터 북한에서 김장하는 것을 '김장 전투'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겨울철 주민 식생활의 질과 양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김치가 충분해야 추운 겨울에 가족이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의 김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김장철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김장을 포기하는 북한주민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지 소식통들에 의하면 올해 가을 장마가 계속되어 배추, 무 등 남새 농사를 망쳐 김장철을 맞아 장마당 배추와 무 가격이 급등했고 김장 양념 재료인 파와 마늘 고추가루 가격은 더 올라서 서민들은 김장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김장 재료를 구할 수 없어 김장을 포기한 주민들은 겨울철에 먹고 살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합니다. 일부 주민들은 파, 마늘, 고추가루 등 양념 가격이 너무 비싸 양념을 하지 않은 채 무와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방식으로 백김치를 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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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전매체 조선중앙TV는 최근 김정은이 평양의 한 김치 공장을 현지지도 하면서 인민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생산량을 늘리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남새 부족과 고추가루, 파, 마늘이 없어 김장을 포기하는 가구가 속출하고 있는데 최고 지도자는 김치공장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현지지도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들은 가을이 되면 각 소속 직장, 인민반 별로 배추와 무 등 김장용 남새와 마늘, 고추가루, 파 등 양념 재료를 공급받아 김장을 담갔다고 합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배급제에 따라 일체의 김장재료를 국가가 공급해준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난국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국가배급제도가 붕괴되면서 김장 재료도 주민 각자가 알아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텃밭이 있는 사람은 가을남새를 직접 가꾸어 김장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시장에서 남새를 구입해야 합니다. 남새 작황이 나빠져 남새 가격이 많이 오르면 일반 주민들의 반년치 식량 마련에 차질을 빚게 됩니다. 한국의 탈북민들은 배추, 무 농사가 흉작으로 공급이 부족하면 당국이 중국에서 김장 재료를 수입해 주민들에게 공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마늘, 고추가루, 파 같은 양념도 상대적으로 값이 싼 중국산을 수입해 공급해주었다고 합니다. 외화부족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도 중국산을 수입해 공급해줬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과 무기 판매로 외화사정이 나아진 요즘에 중국산 김장 재료를 수입하지 않고 남새 부족 사태를 방관하는 당국을 주민들이 원망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전국에 산재한 김치공장에서 양질의 김치를 양산해 인민들에게 김치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탈북민들은 북한주민들 속에서 김장을 하지 않고 공장 김치를 사먹으며 반년이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합니다. 판매용 김치는 돈 많은 간부나 돈주(신흥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주민의 월동대책에서 중요한 품목인 월동용 땔감, 즉 화목과 석탄 가격도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북한 주민들은 올 겨울에도 춥고 배고픈 시기를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