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한은 왜 그렇게 김장을 많이 하나요?
2024.11.18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살고 있는 20대 여자입니다. 고향은 강원도예요. 지난주에는 부모님 집에 가서 같이 김장도 하고, 새로 담근 김치도 한통 갖고 왔는데요. 저희 집은 이번에 김장을 좀 많이 한다고 한 게 30포기였거든요. 근데 인터넷에서 보니까 북한에선 김장을 몇 백kg씩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건가요? 정말 그걸 다 드시는 건가요?”
김장철이네요. 딱 이맘때 한국에선 김장을 많이 하는데, 북한은 조금 더 빠르죠. 11월초에서 중순경까지 본격적인 김장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의 어머니들, 올해 '반년농사', '김장전투'를 잘 마무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지난 주말에 김치 두 포기를 어머니한테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워낙 배추가 크다 보니 두 포기만 해도 양이 정말 많습니다. 북한은 김장할 때 배추 한 포기 그대로 안에 양념을 바르는데, 여기 한국에선 꼭 배추를 반쪽으로 갈라야 합니다. 배추통이 너무 커서 사실 반쪽으로 갈라도 북한의 좋은 배추 한 통 크기만 합니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너무 커서 여기서 살다 보면 아예 다른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겨울을 시작하면서 김치 담그는 문화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또 한번 ‘그래 우리가 한민족이었지’하며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늘 얘기하면서도 한 켠으론 북한동포 분들이 안 믿으실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수준 차이에 대한 얘깁니다. 여긴 정말 먹을거리가 넘쳐납니다. 밥을 잘 안 먹어서 쌀 가격이 떨어지고 쌀이 남아돌아 농촌에선 해외로의 수출길을 계속해서 찾고 있고, 사시사철 과일과 싱싱한 남새와 물고기까지, 농사는 계절의 영향을 받을지 몰라도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사계절에 구애없이 언제든 풍족하고 다양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로 한민족의 김장문화가 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이 얘기하신 것처럼 한국에선 보통 10포기에서 많게는 30포기 정도 김장을 합니다. 혹시 '그러다가 김장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냐'라는 질문이 떠오를까요? 한국에선 김치회사들에서 1년내내 다양한 맛과 종류의 김치들이 계속 생산되기 때문에 떨어지면 사먹을 수 있습니다. 김치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여기 한국에 와선 정말 본 적이 없네요.
잘사는 집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가정에서 식탁에 오르는 반찬이 적어도 3~4가지는 되기 때문에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습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 중에는 김치를 아예 안 먹기도 해서 집에서 들기름을 넣어 볶아주기도 하고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김치를 먹이려고 여러 가지 애를 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관련 기사>
[질문있어요] 북한군 러시아 파병, 군인 가족들이 정말 모르나요?
제가 김치와 관련해 한국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렸는데요. 아직 북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왜 북한이 집집마다 수백kg, 심지어 한 톤에 이르기까지 김치를 많이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감은 잡으셨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반찬 만드는 식재료들을 부식물이라고 하는데요. 이 부식물은 철저히 계절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말 북한에서 겨울철이 되면 먹을 수 있는 건 오직 김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에 올라오는 음식은 김치, 깍두기, 그나마 깍두기를 따로 더 담그는 집은 그래도 중상위권의 생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이외 오가리, 일본어 그대로 쓰는 다꽝 등 무로 만든 반찬들이 전부입니다.
북한에선 김장을 많이 하지 않으면 다음해 풀이 나기 전까지 정말 ‘부식물이 똑 떨어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김치밥, 김치국, 김치 반찬까지 ‘김치 3대장’이라고 불리는 음식들로 겨울 밥상이 차려지면서 ‘김치만 팬다’라는 얘기도 했었죠. 그러다 보니 다음해 2, 3월만 돼도 벌써 동네에서 김치 꾸러 다니는 집들이 하나둘 생겨났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에선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했던 김치, 몇 독을 담가 두면 그렇게나 마음 뿌듯했던 김치, 사실 한국에서 고춧가루와 온갖 좋은 양념 잔뜩 들어간 김치를 먹어도 독에서 바로 꺼내면 쩡한 맛을 내던 그 북한의 김치가 여전히 그립기도 합니다.
최근에 신의주에서 김치 공장에 다니던 탈북민 분을 만났는데요. 중국 회사가 의뢰한 김치를 만들면서 그 많은 양념들을 듬뿍 넣을 수 있는 걸 마냥 부러워 했었다고 얘기하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올해 이상기후로 한국도 배추 농사가 예전만 못해서 한때 배추 가격이 많이 오르기도 했었는데, 북한은 김장배추 농사가 잘 됐는지, 모든 분들이 김장만이라도 넉넉하게 담그셨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