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자 ) 한반도의 군사 대치 상황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해 보려는 '한반도 신무기 대백과'입니다. 한국의 자주국방 네트워크의 이일우 사무국장 연결합니다.
순안공항의 러 군용기 IL-62M, 무기거래 광속비행?
( 진행자 )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난달(7월)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와 관련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평양 방문이 끝나자마자 러시아 국방부 실무단이 은밀하게 북한으로 갔다면서요?
( 이일우 ) 쇼이구 장관이 북한을 다녀간 것이 7월 25일부터 28일까지였고 방북 기간 중 무장장비전시회, 열병식을 참관했습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이번 방북은 무기 구입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었고, 러시아 내에서도 무기 구매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1일 러시아군 요인 수송기 IL-62M이 평양순안공항에 들어간 것이 확인돼 무기 구매를 위한 실무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러시아 실무단이 북한에 들어간 시기에 맞춰 김정은도 8월 3일부터 5일까지 주요 군수공장들을 시찰하며 초대형방사포부터 소총, 탄약 생산 현장을 현지 지도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쇼이구 방북 당시 직접 북한제 무기들을 설명하며 판촉을 했던 김정은의 행보와 함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러 구매 목록엔 70년 된 '아라사 기관단총'까지
( 진행자 ) 러시아에서는 구체적인 수입 대상 품목 이야기도 돌고 있다고요?
( 이일우 ) 러시아 인권단체가 러시아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현재 북한에서 구매하려하는 무기들의 목록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련 정치범 수용소를 의미하는 ‘굴라구(Gulag)’ 라는 단체인데, 이 단체를 통해 러시아 국방부 내부자가 폭로한 목록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러시아는 북한에 대량의 보병용 무기 구입을 요청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당장 납품이 필요 하다고 요구한 품목들이 대부분 구형무기라는 점입니다.
현재 노농적위군에서 쓰는 56식 보총, 68식 보총과 같은 총기는 러시아도 현재 사용 중인 AK-47이나 AKM과 같은 탄을 쓰는 총기라서 이해할 수 있는데, 러시아는 북한에서 아라사식 자동보총, 일명 아식보총이라 부르는 PPSh-41 기관단총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6.25 전쟁 당시 많이 쓰였고, 이후에도 노농적위군이나 보위부에서 많이 사용한 총기라서 익숙한 총기지만, 굉장히 오래된 무기라서 이런 무기를 러시아가 왜 찾나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북한에서는 62식 대대기관총으로 부르는 덱탸료프 경기관총과 그 탄약, 북한군에서 주력전차로 사용 중인 천마호 전차나 떼-55 전차에 사용하는 전차포탄도 대량으로 요구했는데, 아마도 최근 대량 복원해서 전선에 등장하고 있는 떼-55 전차나 떼-62 전차에 사용할 탄약으로 추정됩니다.
최근에 북한이 전국 인민반에 각 가정마다 1개씩 보총에 붙일 총끈을 만들어 바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아마 노후 총기들에 새 총끈을 붙여 러시아에 수출하려는 목적으로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러 무기 목록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때 서울 불바다 위협의 주역으로 한국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170mm 자행포, 일명 ‘주체포’였습니다.

북 자주곡사포 : 구형 전차와 구형 포신의 잘못된 만남
( 진행자 ) 170mm 자주곡사포, 북한에서는 주체포라 불리는 무기인데, 러시아군이 기존에는 써본 적이 없는 무기라고 하는데, 왜 이런 생소한 무기를 구입하려 할까요?
( 이일우 ) 러시아가 북한에 요청한 무기 대부분은 과거 소련 때 제작한 무기들이 원형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러시아가 이미 사용 중이거나, 러시아군이 쓰는 무기와 호환이 되는 장비들입니다. 그러나 주체포의 경우 러시아군에서는 이러한 무기를 써본 적도 없고, 해당 규격의 포탄도 없습니다.
러시아군 포병 곡사포는 122mm, 152mm, 203mm 세 종류의 포탄만 사용하며, 170mm는 과거 실험용으로만 잠깐 등장했던 규격입니다.
주체포는 북한이 1970년대 떼-55 전차의 차체 위에 8m짜리 장포신 170mm 주포를 붙여 만든 곡산이라는 자행포의 개량형입니다.
한미연합군에서는 황해북도 곡산군에서 1978년 처음 발견된 무기라고 해서 M1978 곡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후 개량형이 1989년에 발견되면서 여기에 M1989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나중에 북한이 주체포라는 이름을 공개하면서 M1989 주체포라는 이름이 굳게 됐습니다.
이 주체포의 원형인 곡사포는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군에 수입돼 소량이 사용됐지만, 충격적인 사거리만큼 충격적으로 형편없는 명중률 때문에 전쟁 직후 전부 폐기됐습니다. 주체포는 이를 개량한 모델이지만, 원형 자체가 워낙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현재는 북한만 사용하고 있는 무기입니다.
이라크도 버린 북 주체포 , 러는 왜 사나?
( 진행자 ) 러시아가 이라크도 포기한, 본 적도 쓴 적도 없는 무기까지 북한에서 사 오려는건 그만큼 무기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이겠죠?
( 이일우 ) 러시아는 이런 무기를 본 적도, 사용해본 적도 없지만 굳이 사려고 하는 이유는 최근 전쟁에서 엄청난 숫자의 자행포를 잃었고, 특히 사정거리가 30km 이상인 포병 무기를 대부분 잃어 우크라이나군 포병과의 대화력전에서 일방적으로 박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152mm 견인곡사포는 최대 사거리가 24km 정도에 불과한데, 우크라이나군의 서방제 M777 곡사포는 기본탄을 쏴도 24km, 사거리 연장 유도포탄을 쓰면 40km를 공격할 수 있어 사거리 경쟁에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주체포는 기본탄을 쓰면 30km, 사거리 연장 포탄을 쓰면 54km에서 60km까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사거리만 놓고 보면 우크라이나군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포격을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 주체포를 주력 장사정포로 한국의 수도권을 위협하는데 써 왔지만, 현재는 다양한 방사포가 대량 배치되며 2선급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이 노후 주체포를 러시아에 공급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북 곡사포의 4가지 결함
( 진행자 ) 러시아가 희망을 갖고 있는 이 주체포, 사거리는 길지만 문제가 많다고 하죠?
( 이일우 ) 북한은 주체포를 마치 강력한 결전병기인 것처럼 선전했지만, 사실 북한이 공개한 영상만 놓고 봐도 이 주체포는 포병 무기로서의 가치가 없는 장비입니다.
주체포는 포신, 차체, 포탄 모든 면에서 문제가 심각한 장비여서 러시아군이 이를 받아 간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사용해 보면 곧바로 전장에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함① 얇디 얇은 포신
우선 포신 문제를 보면, 주체포는 170mm라는 대구경 주포이고, 긴 사정거리를 발휘하는 높은 압력의 추진 장약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포신 두께가 매우 얇습니다. 포신의 두께는 포신의 수명은 물론 내구도와 명중률에도 영향을 주는데, 사실 이 주체포가 만들어지던 시점의 북한 공업 능력 으로는 두껍고 튼튼한 포신을 만들 능력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얇은 포신에서 높은 압력의 추진장약을 사용할 경우, 몇 발 쏘지 못하고 포신에 균열이 가거나 포신 내부의 강선이 훼손되는데, 이럴 경우 포탄을 쐈을 때 포탄이 포신 내부에서 폭발 할 수도 있고, 정상적으로 발사되더라도 포탄이 강선의 설계상 회전율을 구현하지 못해 안정적인 탄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함② 부실한 반동 흡수
차체와 주퇴복좌기라고 하는 반동 흡수 장치도 문제입니다. 이런 대구경 화포는 포탄을 엄청나게 멀리 쏴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엄청난 압력의 장약을 사용해야 합니다. 포탄 발사 원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포탄을 강하게 밀어내면 그만큼 강력한 반동이 발생하는데, 보통 대포들은 포신에 붙어 있는 주퇴복좌기라는 장비에 유압 장치나 수압 장치를 넣어서 이 반동을 1차로 받아내고, 차체를 아주 무겁게 만들거나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켜서 반동을 받아냅니다.
조선중앙통신 기록영화 중 M1991 주체포 사격 장면 - 사격 때 포신 요동이 심하다
( 이일우 ) 북한이 공개한 주체포 사격 영상을 보면 포를 발사할 때 차체가 앞뒤로 요동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차체가 포의 반동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차체가 이렇게 흔들리면 포신도 같이 흔들리기 때문에 포탄이 엉뚱한 곳에 가서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총을 쏠 때 총의 총열 부분의 덮개를 잘 붙잡고 사격해야 사격할 때 총구가 위로 튀어 오르는 총구 앙등 현상을 억제할 수 있는데, 총구 앙등을 억제하지 못하면 조준점 보다 위쪽에 총알이 맞는 것처럼 포탄 역시 포신이 위로 튀어 오르면 원래 계산했던 궤도가 아닌 엉뚱한 궤도로 탄이 날아가기 때문에 명중 자체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함③ 속터지는 불발 포탄
포탄도 문제가 많습니다. 북한은 이 주체포를 1980년대에 생산했음. 탄약도 80년대부터 생산했는데,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드러난 것처럼 북한은 노후 포탄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다음날 현장 조사를 위해 연평도에 방문해 포탄이 떨어진 위치를 직접 확인했는데, 일정한 모양의 탄착군이 형성되지 않았고, 탄이 엉망진창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발사된 170발의 포탄 중 90발이 연평도에 닿지도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는데, 이는 주포가 노후한 이유도 있었지만, 추진 장약 문제입니다.
결함④ '물먹는 하마' 같은 습한 장약
포탄을 날려주는 추진장약은 천이나 금속으로 된 외피 안에 연탄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작은 화약 덩어리들이 잔뜩 들어있는데, 덩어리 안에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는 공기 접촉면을 늘려 최대한 동시에 고르게 폭발시켜 안정적인 폭발 가스압력을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장약은 시간이 지나면 습기를 머금게 되고, 그러면 뭉쳐서 굳어지는데, 이런 장약은 원래 설계된 위력 만큼의 폭발력을 발휘하지 못해 추진 가스 발생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북한의 주체포 사격훈련 영상을 보면, 포탄이 포신에서 떠난 뒤에도 주포에 화염이 몇 초간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장약 불량으로 약실 내에서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 나중에 탄 장약이 만들어내는 화염입니다. 즉, 이런 화약을 쓰는 주체포는 죽었다 깨어나도 조준한 목표에 포탄을 맞출 수 없습니다.
버려야 산다 . 주체할 수 없는 북 주체포의 위력
( 이일우 ) 주체포는 포신, 차체, 장약 모든 것이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문제가 있는 화포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임. 쏜 포병을 죽이거나, 아군을 죽이는 것입니다.
보통 포병은 최전선 보병이나 전차 부대의 후방 수십 킬로미터 거리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러시아 방어진지 후방 수십 킬로미터에서 주체포를 쏠 경우, 이 포탄은 우크라이나군이 아니라 포탄이 날아가는 방향 앞에 있는 러시아군 머리 위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러시아군에게 엘리트 군사력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북한 주체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하루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 진행자 ) 한국의 자주 국방 네트워크 이일우 사무국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미국 워싱턴 RFA 김진국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