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의 시간] 부모님 고향 그리는 한인 2세 최규남 씨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2.07.25
looking_nk_305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북한땅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남부에 사는 실향민 2세 최규남 씨는 통일되면 고향을 찾아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고향의 향수를  맛 보고 싶고, 그리고 부모님들이 일궈 놓으신 자산을 찾을 수 있을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실향민 2세 최규남 씨의 부모님 고향을 그리는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부모님 고향은 어디십니까?

: 어머니는 평양이시고, 아버지는 신의주입니다.

부모님은 언제 월남하시게 됐습니까?

: 625전쟁 발발한 다음에 내려오시게 됐지요. 부산까지 가셔서 계시다가 그 다음에는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들려주신 고향 이야기가 많은 텐데요. 2세로서 어떤 기약을 하셨습니까?

: 어머니는 평양의 여러 가지 특색 있는 이야기, 아버지는 신의주 이야기해 주셨는데 부모님께서 젊었을 때 고향 산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아버지 같은 경우는 형님 (저에게는 큰 아버지이지요. 저는 본적이 없어요.) 과 625때 헤어지고 나서 남한에 내려오셔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큰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하셨고, 저희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아버지를 모시고 갈 날이 오겠다는 막연하지만 기대는 있었지요.

부모님은 언제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지요?

: 아버지는 청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냈으니까요. 거기서 결혼하셨고요. 평양이나 신의주의 싱그러움이 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추석 때가 되면 망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고향 산천의 경치를 잘 설명해 주셨는데요.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게 될 때 신의주와 평양을 왔다 갔다 했는데 평양은 그 당시도 도시화 됐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평양은 기독교로 말하면 한국 기독교의 성지라고 할 정도로 활발했었잖아요. 이 두 가지를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나지요.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북한 어휘를 많이 쓰실 것 같은데요.

: 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이 많이 놀렸어요. 저는 아니라고 하는데 친구들이 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아버지 다 북한 말을 쓰셨으니까요. 지금은 워낙 오래됐으니까? 다른데 그 당시는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말하는 게 티가 났나 봐요. 서울 친구들은 금방 알더라고요. 집에서는 저도 모르게 북한의 독특한 사투리를 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 사투리 관련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

2세로서 부모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계시겠지요.

: 그럼요. 기회만 되면 북한 고향에 가서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고향의 이야기가 생각나요. 평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묘향산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름 그대로 묘미가 있고, 산천이 수려한 묘향산도 가 보고 싶고, 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그런 산 이구나 하는 것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고, 신의주는 학생운동이 있었던 특별한 도시 아닙니까? 기회만 되면 꼭 가서 아버지가 들려 주신 고향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만일 통일되어 고향에 가신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지만 처음에는 부모님들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요. 이게 여담이지만, 그쪽에 부모님들이 지금은 다 없어졌겠지만 부모님들이 일궈 놓았던 것들(토지 집)을 살펴보고 싶고요. 또 그쪽에 계신 북한 동포들 직접 만나 뵙고 싶어요. 그래 통일이 된다면 고향 분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같이 한 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부모님들이 일궈 놓으신 자산도 북한에 있을 텐데요. 앞으로 부모님 자산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 그거 많이 이야기 하셨어요. 부모님은 저희들에게 다 펼쳐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남한에 내려와서 어려운 시절이 있었잖아요. 경제적으로 어려움 말입니다. 우리가 식구가 많은데 7남매였는데 어머니가 가끔 우리가 그 자리에만 있었으면 참 너희들이 이 고생 안 했을 건데, 그때 다 고생할 때지요. 그런 기억이 나요. 그래서 서류가 있어요. 서울에 계시는 큰 형님이 가지고 계시는 데 법적인 효력이 얼마만큼 있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재력을 그대로 두고 내려오셨기 때문에 망향에 대한 설움도 있었겠지만, 재산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고 봐요. 통일되면 부모님 자산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요.

재미동포들의 경우 한국에서 이산 상봉 시 참여가 어렵습니다. 재미동포들은 미국에 사니까? 미국 정부가 이산가족들 상봉을 주선해 주기를 많이 바라는 것 같습니다.

: 미국 적십자사에서도 그렇고 로버트 킹 대사가 이산상봉을 양성화시켜서 하려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음성적으로 가고 있잖아요. 양성화에 여려가지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상적으로 재미동포들이 갈 수 있도록 문이 열려서 많은 분 돌아가시기 전에 미국 정부가 주선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지요.

2세에 이어 3세들에게(자녀)도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계시는지요.

: 이야기는 하는데 저희만큼은 민감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고향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도록 교육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 고향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 고향 이야기만 들어도 찡하네요.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오명을 벗는다는 데 앞서서 같은 민족의 같은 피를 나눈 민족으로서 정말 하루속히 통일이 이뤄져서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결속이 되어서 한민족이 돼서 지구상에서 길이 빛나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실향민 2세 최규남 씨의 부모님 고향을 그리는 이야기로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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