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한, 역사 왜곡과 날조

워싱턴-홍알벗 honga@rfa.org
2024.02.29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북한, 역사 왜곡과 날조 제 96주년 3·1절었던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정문 꿈새김판에 유관순 열사의 사진과 마지막 유언이 새겨져있다.
/연합뉴스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박사의 주간진단’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또, 역사가 단절된다면 그 민족의 맥도 역시 끊어진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전문가들은 역사가 단절된 대표적인 나라로 북한을 꼽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3.1을 맞아, 왜곡된 북한의 역사교육에 대해 한국의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안찬일 박사와 함께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안찬일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안찬일: 네 안녕하십니까!

 

MC : 안 박사님은3 1일이 남한에서는 공휴일로 지정하고 각종 행사가 열리는데 북한에서는 이날의 의미를 어떻게 교육하는지요.

 

안찬일: 네, 안타깝게도 저는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북한에서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인민봉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조선의 4.19혁명을 더 대단한 혁명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역사 교육에서 김일성과 그 일가의 혁명전통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다보니 3.1운동과 그 외 민족주의 세력의 독립운동은 거의 사라지다 시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MC ;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에서의 3.1운동, 그 역사적 평가와 관점은 어떤 건지 설명해 주시죠.

 

안찬일: 북한은 1948년 9월, 정권 수립 이후부터 3.1운동을 '3.1 인민봉기'로 불렀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항쟁으로 기리기는 했지만 그 중요성은 한국에서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한국은 국체(國體)의 요강을 밝힌 헌법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즉 3.1운동은 대한민국 정부 정통성의 뿌리이며, 때문에 매년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 경축사를 발표하고, 각계 인사를 초청해 성대한 경축식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3.1운동에 대해 "자주 독립을 염원한, 식민지 통치 하에서 쌓이고 맺힌 인민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폭발한 우리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봉기"라고 북한 <조선대백과사전>이 규정하지만, 고()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을 북한 정권 정통성의 기반으로 내세우는 만큼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3.1절을 중요하게 기념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에서 3.1절은 기념일도 공휴일도 아니며, 정권 수립 이래 지난 76년간 3.1절 기념행사에 북한 최고 지도자가 참석한 경우도 없습니다.

 

1980~90년대까지는 평양 시내에서 매년 '3.1 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의 행사를 열었다는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가 있었지만 이후로는 평양 시민들이 '중앙계급교양관' 전시장을 찾아 3.1운동의 의의를 되새겼다는 등의 보도가 간간이 있는 정도입니다.

 

2018년 3.1절에는 '3.1 인민봉기 99돌 기념행사'가 평양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교단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으나 행사 주최는 '조선종교인협의회'였고, 3.1절 자체의 의미를 기리는 성격보다는 남북관계 완화 국면에서 남측 종교단체들이 보낸 축전을 공개 소개하는 장으로서의 의미가 더 주목받았습니다.

 

MC : 이렇게 3.1운동이 북한에서 평가절하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혹시 김일성 주석 때문인가요?

 

안찬일: 그렇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노동당의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최초로 나온 1967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3.1운동 기념일은 이토록 괄세받지는 않았습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전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보는데 북한은 노동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선언한 후 김일성과 그 일가에 대한 항일운동을 부각시키면서 반대로 3.1운동은 서서히 지우개로 지워나갔습니다.

 

MC : 역사적 사실 조차 왜곡이 되고 있다는 말인데요. 어떤 과정을 거친 겁니까?

 

안찬일: 북한 1967년 5월 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마지막 정적 ‘갑산파’를 숙청하면서 개인숭배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갑산파의 거두는 당시 노동당의 2인자 박금철과 대남비서 이효순 등으로 진영이 구성되는데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다가 숙청되게 됩니다. 그들을 숙청한 노동당에서는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의 독단이 강행되면서 김일성을 마치 태양처럼 숭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간부로 자리잡은 김정일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MC : 결국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는 민중의 만세운동조차 제대로 교육이 안되고 있는 것이 북한이란 말씀이시군요?

 

안찬일: 맞습니다. 독재자치고 자기를 우상처럼 숭배하라고 말한 인물은 없습니다. 히틀러가 괴벨스 선전상을 이용하듯 북한의 김영주와 김정일은 우선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을 침소봉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전보전투를 뭐 대단한 전투로 부각시키면서 보천보에 ‘전투승리기념탑’을 세우더니 점차 그것을 북한 전역으로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삼지연과 백두산, 왕재산 등에 대형 우상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마침내 1972년 4월 15일 평양시 만수대 언덕에 아시아 최고의 김일성동상과 조선혁명박물관이 건립되었습니다.

 

MC 북한은 보천보전투가 3.1운동보다 더 큰 항일운동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안찬일: 1937년 6월 4일에 진행된 보천보전투는 김일성의 부하들 6-70여 명과 함께 몰래 압록강을 건너와 보천보란 작은 부락의 면사무소와 우체국을 불지른 기습작전으로 전투라고 볼 수도 없는 소규모 공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민족의 거족적인 3.1운동을 가리기 위해 그런 공작을 항일무장투쟁이라고 침소봉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원으로서 동북항일연군 즉 마오쩌퉁의 게릴라로 항일투쟁 한 것이지 순수 우리 민족을 위한 항일운동을 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뒤 김일성은 일본 토벌군에 쫓겨 소련령으로 철수했고 거기서 8.15 광복을 맞았으며 그뒤 1945년 9월 19일 몰래 소련군함 브가쵸브호를 타고 원산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오늘도 북한 인민들에게 그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항일무장투쟁이 얼마나 왜곡되고 날조되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습니까?

 

MC : 남측 학자들은 북한이 자신들의 ‘존엄’이라고 부르는 김씨 일가에 대해서도 사실과 틀린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 어떤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안찬일: 네, 1967년 전에 북한의 어떤 서적이나 자료에서도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이나 모친 강반석, 삼촌 김형권 등에 대한 자료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유일사상계게가 나오더니 김형직이 조선국민회를 조직했다느니, 김일성의 중조할아버지 김응우가 침략선 셔면호를 침몰시켰다느니 새로운 역사가 술술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일성의 가족은 평범한 일가가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떠선 독입운동가의 가문이란 것이죠. 이런 척박한 역사날조의 토대위에서 어떻게 3.1운동의 역사적 진실이 빛을 볼 수 있겠습니까?

 

MC :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는 선대 수령마저 부정하는 역사단절을 시작했다는데, 그 내용이 뭔가요?

 

안찬일: 네, 널리 알려진대로 최근 김정은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작품인 이른바 조국통일 3대헌장을 파괴하는 등 새로운 역사파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만수대언덕의 김일성 동상을 허물어 버린다면 모를까 통일헌장은 그래도 나라를 통일하자는 상징물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부정하면서 두 개 국가론을 주절거리고 헌법에서, 또 애국가에서 삼천리 금수강산을 삭제하며 외소한 ‘김정은국가론’을 부상시키고 있어 참담합니다. 역사는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고, 날조한다고 새로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MC :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찬일: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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