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마음의 징검다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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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이동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은 북한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여행’입니다. 미지의 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낯선 세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여행… 아끼는 자녀에게 가장 권해야 할 것은 여행이며, 여행은 최고의 선생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특정 지역뿐 아니라 우리는 다양한 곳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 같은 것이요.

2009년부터 민들레 가족상담센터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함께하고 있는데요. ‘나’를 찾는 여행은 ‘우리’를 찾는 여행으로 남북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처음 여행은 2주였지만 지금은 7~8개월로 기간도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2023년 여행일정은 지난 5월 13일에 시작됐는데요. 그 자리, <여기는 서울>도 함께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지금 나눠드린 이 종이에 그림을 그려요. 그림은 되게 간단해요. 여자분들은 원 하나 그리시면 되고 남자분들은 삼각형 하나를 그려보세요. / 작게 그려도 돼요? / 네. 크기는 상관없습니다~

2023년 ‘우리를 향해 가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조금 특이합니다. 하얀 백지를 나눠주더니 동그라미와 세모를 그리라고 하니까요. 종이를 건네받자마자 거침없이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주춤거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난감한지 계속해서 질문을 하네요.

(현장음)삼각형을 그려요? 사각형을 그려요? / 삼각형이요. / 이 종이에 그림을 몇 차례 그리게 되나요? / 두 차례.

동그라미, 세모로 과연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걸까요? 이번 프로그램 총괄을 맡고 있는 민들레 가족상담센터 최미연 씨의 설명입니다.

(최미연)저희 센터 자체가 미술 심리 치료를 기반으로 시작한 심리 상담 센터입니다. 그래서 다른 도구보다 미술이라는 도구를 더 많이 쓰는데요.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상관이 없이 그냥 통계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 때 이런 심리를 나타낸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림 하나로 한 사람을 다 알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릴 거예요. 오늘은 관계성 검사를 하고, 내일은 나무 그림을 그리고 그 다음은 집, 나무, 사람을 그리고… 대략 15가지 그림을 매주 그리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상처를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거거든요. 선생님이 먼저 해석을 한 후 그룹으로 토의하면서 내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 같은지 얘기를 하고 선생님들은 질문을 더 깊이 진행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아는 거죠.

미술 심리전문가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자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훈련되어 있거나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게 편하지만 반대의 경우,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이는 것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추려 하는 경향이 크다고 합니다. 때로는 열등한 모습을 애써 숨기려 자신을 과장해서 으스대고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힘들어 질 수 있는데요, 그럴 때 그림을 매개체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감정 표현이 가능합니다.

한 마디로 그림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데요.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하네요.

(최미연)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거든요. 오늘 했던 것 같은 경우는 종이 한 장을 주면서 남자는 삼각형, 여자는 동그라미를 그리라고 했는데요. 그냥 간단하게 해석해보면 종이 모퉁이 쪽에 삼각형을 그렸을 때는 이분은 위축되어 있고 감정이 힘들고 아직 이 세상의 주인공이 못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고요. 종이 한 가운데 삼각형을 그렸다면 자신감이 있고 자존감이 높고 이 세상에 내가 주인공이구나,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식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형태를 보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그림으로 한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직접 미술 심리프로그램에 참여해 본 사람들은 흘려 그린 그림 하나가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참가자에서 4년 전부터 미술 심리상담사로 남북사람들을 돕고 있는 탈북민 임사라 씨의 말입니다.

(임사라)저도 접할 때 그림을 통해서 내 무의식을 볼 수 있어서 놀랐습니다. 어머, 내가 이런 걸 가지고 있었네… 강박 관념 또 이런 게 나는 많이 경직되어 있네, 내가 많이 불안하네, 그걸 그림을 통해서 볼 수 있어서 매력에 빠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저는 스트레스와 가족을 북에 두고 왔다는 그런 고민으로 심장 협심증이라는 병이 있었는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 계기를 통해서 제가 예약한 (심장) 수술을 취소하게 됐고 지금까지도 심장이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라 씨가 앓았던 병은 심장협심증으로 가슴에 통증이 심하거나 숨을 쉬기 어려운 증상이 나타납니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우울감이 크면 발생 확률이 높은 병이라고 하는데요. 약물 치료 정도만 받아도 개선되는 경우가 있지만 증세가 심한 경우혈관을 넓혀주는 수술을 하게 되는데 사라 씨도 그 수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사라 씨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협심증 증세가 호전된 것이죠. 사라 씨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 보다 전문적으로 미술심리상담치료를 공부했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들에겐 상담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임사라)그냥 하는 상담과 미술 치료 상담은 영역이 다릅니다. 그냥 말로 하는 상담보다 그림을 그리면 본인의 심리가 80% 함축돼서 이제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통해서 저희는 친밀 관계도 빨리 가질 수 있고 접근도 빨리할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돼요. / (리포터) 혹시 북한에서 미술을 전공하거나 상담사로 일하셨어요? / (임사라) 전혀요. 여기(한국) 와서 금방 접했을 때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북에서 공부하다 온 사람도 아니고요. 내면에 상처가 많고 힘든 시간들을 극복하려고 또 트라우마도 있고 해서 그것 때문에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걸 배워서 나처럼 힘든 친구들을 도와줘야 하겠다' 이런 생각으로 상담사 일을 하게 됐고요…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40~50대이고 이 중 탈북민 참가자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요. 탈북 남성 참가자는 3명 입니다. 첫 만남 이후로 참가자들이 더 늘어서 총 20명이 7개월 간의 여행을 함께 하게 됐는데요. 지금까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해 하나 더 알게 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참가자가 많은 것이 중요하진 않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딱 한가지! 끝까지 모두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Closing Music –

(임사라) 우리를 향해가는 여행에 참가하신 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이 시간을 통해서 북과 남의 우리가 서로가 뭐가 다른지 알아가고 서로를 위해서 같이 고민하고 소통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최미연) 그냥 마음 편히 여기를 신뢰하시고 끝까지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은 가장 먼 길이기도 하지만 가장 빛나는 길이기도 할 겁니다. 그 길에 어둠도 있고 빛도 있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지만 여행을 떠날 용기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만 있다면 꽤 괜찮은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를 향해 가는 여행’ 길에 오른 20명의 남북 사람들! 7개월간의 긴 여행길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