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브라보 마이 라이프] 10년의 신념(1)
2023.07.11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100일을 기념하고 연인들은 첫 만남으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을 자축합니다.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은 100일 기도에 정성을 들이기도 하죠. 그렇게 100일, 200일, 300일을 기념하고 1년, 5년, 10년, 20년, 30년.. 사람들은 숫자가 주는 상징성에 의미를 두면서 기념일을 챙깁니다. 또 이런 기회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미래를 계획하기도 하는데요.
자유를 의미하는 라틴어 ‘리베르타스’. 고려대학교 재학생들이 만든 북한인권 소조의 이름입니다. 지난 6월 25일 토요일, ‘리베르타스’의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요, <여기는 서울>도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현장음) 그대로 여기다가 띄어 주세요. / 아니, 이거 할 수 있어요. 보세요. 이렇게 해가지고~~
초대한 손님들이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컴퓨터와 연결된 화면이 잘 나오는지 마지막 점검까지 10주년 기념행사 시작을 앞두고 실무진들이 분주합니다. 그 사이, 행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자유롭게 빈자리에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실무진들은 행사 시작을 알립니다.
(현장음) 이제 고려대학교 북한인권학회 리베르타스 창립 10주년 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고려대학교 북한인권학회 12기 부회장을 맡았고 현재는 리베르타스 창립 10주년 행사 사회를 보게 된 한국사학과 임충혁이라고 합니다. / 고려대학교 북한인권학회 리베르타스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행사 기획도 같이 함께하게 된 행정학과 최승민이라고 합니다.
사회자의 인사에 이어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등 여느 단체 행사 못지 않게 격식을 갖췄습니다. 지도교수 등 내외빈 소개에 이어 13기 리베르타스 조혜금 회장의 개회사가 이어지는데요. 우선 참석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네요.
(현장음) 저희 리베르타스는 2012년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2022년 작년이죠. 작년에 10주년을 맞았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활동에 제약이 있다 보니 10주년 행사를 올해 이렇게 진행하게 됐습니다. 앞 전 회장단들과 지도교수님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이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리베르타스는 북한 인권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다는 뜻으로 처음 생겼는데, 현재는 아쉽게도 리베르타스에 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이 많이 없어요. 고대 내에 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이 있지만 이 학회에 안 들어오더라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고 스스로 독립해서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그 친구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더라고요. 저는 그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학회원이 23명 정도 되는데요. 북한에서 온 친구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온 친구도 있고 북한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함께 해나가는 그런 리베르타스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조혜금 회장은 북한 출신임을 당당히 밝히며 교내 활동부터 대외 활동까지 활발히 하고 있는데요. 초기보다 소조 내의 탈북민 학생 숫자는 줄었습니다. 아쉬울 때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학 생활에 적응이 힘들어 소조 활동을 통해 도움을 받는 탈북 청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남한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이 학교생활을 잘 해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리베르타스에는 외국 학생들의 참여가 많아졌는데요. 북한 인권 문제는 이제 남북의 문제를 넘어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할 국제 인권 차원의 문제가 됐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황금 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한걸음에 달려온 선배도 많습니다. 1기 회장을 맡았던 정영지 씨는 리베르타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설명합니다. 처음 시작은 북한의 실상에 대해 들었던 강연이었답니다. 그리고 영지 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정영지) 강연을 통해 교과서에서 말하지 않았고 또 방송 어디에서도 얘기해 주지 않았던 생생한 북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참혹한 실상을 접하면서 이 시대에 당면한 문제에 대해 왜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는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북한 인권이라는 이슈 자체는 생명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고 참혹한 현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음이 맞는 친구들 몇 명이 있어서 ‘우리가 고려대학교에 최초로 남한 친구들과 북한 친구들이 함께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 해서 남북 대학생 연합 북한인권학회 리베르타스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북한 친구들을 활동으로 끌어내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우리 함께 공부하자 이렇게 해서 동아리 개념이 아니라 학회라고 저희는 이름을 지었거든요. 그래서 매주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공부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토론했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졸업 후에도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예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소조원도 많습니다. 재학 중에는 학업과 병행하다 보니 성적 관리 때문에 중간에 소조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모임을 지속하고 처음 뜻을 함께했던 성원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모두 겪어 왔던 선배들은 이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정영지) 첫 번째는 짧고 뜨거운 열정보다는 길고 잔잔한 호흡으로 관심을 이어가자는 것입니다. 저도 당시 2012년도에 (북한 인권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고 엄청 마음이 뜨거웠거든요. 그 뜨거운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정말 내 젊음과 정열을 쏟자 해서 학교 활동을 했고 또 NGO로 넘어가서 대표로 활동했지만 쉽게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뜨겁지는 않고 따뜻하더라도 우리 길게 이어가자…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통일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관심을 이어 나가야 하는 그런 에너지를 좀 비축하자, 그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고요.
영지 씨는 후배들에게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 선수처럼 긴 호흡으로 가자고 말하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작은 소조 모임이 10년 동안 달려왔던 비결은 때때로 너무 뜨거웠던 열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너무 뜨거워 지치면 그 자리는 다시 같은 열정을 가진 동료, 후배들이 채워왔습니다.
(정영지) 두 번째는 내 옆에 있는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활동하다 보면 조금 뜻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친구들끼리 좀 생각이 안 맞거나 토론하다 보면 의견이 굉장히 다른 부분이 있어요… 그거를 잘 조율하고 활동을 하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20년, 30년 그리고 통일이 오늘 그날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이 소중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고 우리가 여기서 배웠던 것들 잊지 않고 자기의 사회의 몫을 다 하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Closing Music –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선,후배들이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인 이 자리. 지난 과거보다 앞으로 잘 하자 다짐을 하는데요, 10년의 세월을 공유하는 리베르타스 회원들의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