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벽을 넘은 인터뷰 (2)
2024.09.10
-Opening Music-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추석 명절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다가오는 추석을 맞아 이른 성묘를 다녀오고, 과일이나 식용유, 건강보조식품 등의 추석 선물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전통식 디저트가 인기가 좋습니다. 디저트란 서양에서 식사 후에 먹는 달달하고 간단한 음식인데요. 한과, 약과 같은 전통음식이 디저트로 주목을 받는 겁니다. 지난 시간부터 북한에서 온 디저트 전문가, 원순복 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종시에서 ‘원쌤미식’이라는 디저트 전문점을 운영하는 순복 씨가 조리복을 잠시 벗어 두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들의 경험담을 듣는 자리에 순복 씨가 주인공으로 초대됐기 때문인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 그 현장, <여기는 서울>에서 전해드립니다.
(현장음-원순복) 저 왼쪽에 사진은 제가 연구한 디자인 떡 케이크이고요. 이거는 북한에서는 기정떡이라고 하는데 저는 북한식 기정떡(기장떡)을 남한의 떡으로 이렇게 살짝 꽃으로 해서 만들었어요. 디자인도 그렇고 마지막까지 제가 혼자 다 하지요. / (안향아) 이렇게 예쁜 떡들과 함께 사업도 시작하셨는데요~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남북통합문화센터 1층 강당 무대에 2024년 제1회 ‘벽을 넘은 인터뷰’의 주인공 순복 씨가 있습니다. 순복 씨의 왼쪽엔 남한 출신 안향아 씨가 있고, 오른쪽엔 탈북민 박서연 씨가 함께하는데요. 두 청년이 질문하면 순복 씨가 답을 이어가는 형식입니다.
(현장음) (안향아) 대표님은 조금 더 뭔가를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다음 목표가 있으실까요? / (원순복) 다음 목표는 제가 어디에서도 쉽게 말하지 않지만 우리 떡으로 독일이나 프랑스에 그 한 가운데 정말 멋있게 전시하고 싶습니다.
순복 씨는 20대에 장마당에서 고춧가루, 술 등 다양한 물건을 팔면서 장사에 재미를 느꼈고 언젠가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는데요. 회령의 장마당에서 시작했던 그 꿈은 26년 후 한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순복 씨는 관객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는데요. 그녀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음-원순복) 힘들 때가 많죠. 왜 힘이 안 들겠어요. 그래도 저는 힘들다는 말을 절대 안 해요. ‘아! 힘들다’ 하다가도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즐겁게 일하거든요. 대한민국 얼마나 좋아요. 내가 한 발짝 나서면 나를 빛내줄 수 있는 꿈,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고 결국 이룰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기 있는 여러분! (꿈을) 포기하지 마시고 하시는 일을 끝까지 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힘든 고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며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낸 원순복 씨.
그녀의 답변 하나하나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하는데요. 그동안 애썼다고, 고생했다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현장음) 2024 제1회 벽을 넘은 인터뷰 2부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약 1시간 가량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네이버 폼을 통해서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요. 무려 55분이나 질문을 남겨 주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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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질문에 선정된 사람은 모두 10명. 이들에게 먼저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관객들은 원순복 씨에게 어떤 게 궁금했을까요.
(현장음) (관객) 안녕하세요. 대표님 반갑습니다. / (원순복) 반갑습니다. / (관객) 대표님의 고향인 회령이라는 동네 마을 모습이 어떤지 참 궁금해요. 남한과 많이 다른지… 저희 아버지 고향이 함경북도 청진이었어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아버지에게) 들어왔던 그런 모습과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좀 궁금합니다. / (원순복) 청진하고 회령이 거리는 기차로 3시간 거리예요. 그리고 청진분들이 한국으로 탈북하려면 꼭 회령시를 거쳐야만 하거든요. 그러니까 회령이 길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회령시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김일성 전처인 김정숙 동상이 있고 또 박물관이 굉장히 커요. 혹시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신다면 저는 한국 분들한테 (회령 방문을) 추천하고 싶어요.
고향 얘기만큼 궁금해하는 점은 ‘남북의 차이’였습니다. 전통식과 디저트를 섭렵하는 원순복 대표에게 특히 남북의 음식과 그 차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현장음-원순복) (관객) 저도 오늘 세종에서 올라왔는데, 원쌤미식이 제가 있는 곳 근처더라고요. 꼭 방문 해보겠습니다. / (원순복) 오세요! / (관객) 대표님께서 느끼시기에 북녘 음식과 남녘 음식의 차이점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고요. 또 한 가지는 조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음식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원순복) 제가 한국에 왔을 때 특이한 음식은 곰탕. 곰탕이라는 말이 좀 특이했어요. 한국에는 곰을 많이 잡는가 했어요. 또 누룽지! 우리 북한에서는 ‘까마치’라는 말을 많이 써요. 그래서 누룽지도 좀 신기했어요. 그리고 음식 문화 차이는 북한은 여건상 재료가 많지 않다 보니 담백해요. 예를 들어서 북한의 김치나 여기 김치를 봤을 때 여기(한국)는 다양한 재료로 마늘도 많이 넣고 젓갈도 많이 넣고 그 차이인 것 같아요. 담백함과 고급진 맛! 음식에 있어서 그런 차이가 좀 많은 것 같아요.
음식에 이어 남북한 삶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데요.
(현장음) (관객)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국민대학교 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임선화라고 합니다. 북한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고 또 현재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원순복) 만족은 100%죠. 왜냐하면 제가 북한에 있었다면 이런 만족을 못 느끼죠. 항상 바쁘게 기차 바퀴처럼 살기만 했을 거예요. 물론 한국에서도 기차 바퀴처럼 돌고 돕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그만한 성과가 있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 성과가 없어요. 북한과 한국의 차이점은 노력한 것만큼 대가가 차려지는 거,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고 음식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원순복 씨에게는 ‘명인’이라는 호칭이 따라왔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는 요리 대회에 참여하고 수상도 하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현장음-원순복) 저의 장점은 남한의 디저트와 특성을 잘 안다는 것이에요. 남한에서도 살고 중국에서도 살고 북한에서도 살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분들이 모르는 걸 강점으로 살릴 수 있었죠.
남북의 식문화, 특징과 장점을 모두 알았기에 자신만의 디저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원순복 씨.
그녀에게도 좌절의 시간이 있었지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데요. 순복 씨는 경험을 통해 얻은 신념을 남북 청년들에게 전했습니다.
(현장음-원순복) 여러분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캄캄하죠. 이제 눈을 떠 보세요. 어떠세요? 잘 보이세요? 캄캄한 곳이 미래이고 밝은 곳이 현재입니다. 우리 청년들이나 젊은 분들! 막연한 미래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착했으면 좋겠어요. 현재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이 자리에 서 있고 여기까지 오니까 성공이 문 앞에 섰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힘내세요. 힘내시고 화이팅 하시면 언젠가는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Closing Music-
순복 씨가 잠시 목이 메는데요. 잠깐의 그 침묵 속,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현장음) 지금까지 벽을 넘은 인터뷰, 한식 디저트 달인의 달콤 쌉싸름한 성공기를 함께 하셨는데요.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아직 남아 있어요. 명인의 한과 시식 코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순복 대표님이 직접 정성으로 만드신 ‘인삼꽃 정과’를~~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순복 씨의 이야기에 관객들은 공감과 함께 힘을 얻었는데요. 청취자 여러분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분단의 선을 넘은 인터뷰가 가능한 그날,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