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한국에서 탈북민으로 연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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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이 부분도 중요할 것 같은데 해연 씨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북한에서 왔다, 탈북민이다 밝히면 반응이 어땠나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여요?

이해연 : 저는 다행히 기분 나쁜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놀라고요, 어떻게 오게 됐냐 어떤 경로로 왔냐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생 많았다 이렇게 말하고 다들 잘 받아들였는데요, 만약에 이 사람이 제가 탈북민인 걸 밝혀서 안 좋게 받아들일 것 같다면 저는 밝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 남북의 연애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이해연 :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랑 굳이 만날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만나지 말아야죠. 요즘은 오히려 탈북민이라고 밝히면 상대 쪽 반응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생활력이 더 강할 것이라고 생각해주고…

박소연 : 이런 변화는 남한에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10년 전과 많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가장 큰 건 탈북민들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탈북민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이미 반은 남조선 사람입니다. 우리 때는 순 100% 북한 사람이 남한에 왔어요. 특히 최근에 남한에 정착하는 해연 씨 또래 분들을 보면 금방 서울말을 따라 하고 생각도 상당히 열려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질감이 10년 전에 비해 거의 없습니다. 해연 씨도 온 지 4년밖에 안 되는데, 이미 12년을 산 저보다 생각이 훨씬 앞서 있잖아요? 북한에서부터 이미 변해서 온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해연 : 변해서 왔다기보다 변할 마음으로 준비돼서 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남한 사회를 어느 정도 알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북한에서 살던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림인 것 같아요.

박소연 : 맞는 말입니다. 탈북민 중에는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외롭다고 바로 결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통 처음에는 남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데, 10명 중에서 7명이 3년 이내에 이혼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집안의 경제권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문제로, 북한은 여성들이 시장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집안의 경제권을 쥐고 살아요. 일부 남한 남자들은 '돈을 각자 관리하면 되지 왜 통장을 줘야 하느냐?' 생각하는 면도 강하고요. 북한 여성들은 '이 사람이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단정하고 다투다가 결국 3년을 못 넘기고 이혼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싸우면서 남북한 문화 차이를 이해하면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혼하게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것들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건데 문제는 변하려고 하지 않고 북한에서부터 이미 익혀 살아왔던 관습이나 생활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라면 함께 사는 것이 힘든 거죠. '내 이래 봐도 고난의 행군 때 가정을 살려 먹인 여잔데, 남한에서는 내가 왜 경제 주도권을 못 쥐냐'며 불평하다가 결국 결혼의 파국을 맞는 사례를 봤습니다.

이해연 : 저는 경제권을 서로 각자가 관리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관리하면 내 것이라고 여기며 더 열심히 돈을 모으려고 하지만, 합치면 내 것만은 아니라 사회주의가 돼서 덜 열심히 할 것 같아요.(웃음) 결혼 후 목표금액을 정해서 집을 살 경우, 각자 어느 정도를 기여했는지 눈에 보이잖아요. 저는 이 방식이 더 좋습니다.

박소연 : 저는 해연 씨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현실적인 거죠. 아직 저의 의견은 반반입니다. 각자 관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전체를 관리하면 더 좋지 않을까? 남한 정착 초기에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경제권을 누가 소유하면 좋겠냐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말로는 생활비만 준다면 경제 관리는 누가 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결혼만 하면 다 빼앗아 와야지' 생각했죠. (웃음) 그때는 각자 경제 관리를 하면 남남이고, 돈을 합쳐야 진정한 부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돈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부부가 돈을 합쳐서 살다가 안 좋은 일이 터지면 나중에 돈을 나누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차라리 처음부터 각자 관리를 하는 게 낫다는 거죠. 남한 남자들 경우에는 돈 관리 잘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박소연 : 결혼하면 끝까지 잘 사는 게 우선이지만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 각자 돈 관리를 하면 깔끔하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 혜연 씨는 상대방을 만날 때 뭘 제일 중요하게 봐요?

이해연 : 20대 초반 때는 무조건 잘생기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잘생기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좋습니다. 너무 잘생긴 사람은 싫어요. 외모는 수수해도 배려심이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호감이 생기고 이 사람의 연애 방식과 취미가 어떤 건지 더 궁금해지면서 다음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인성과 매너를 일 순위로 봅니다.

박소연 : 인성과 매너를 북한말로 풀면 도덕, 예절, 사람 됨됨이가 복합적으로 포함된 말이죠. 남한에서도 인성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인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50대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저도 20대 때는 얼굴만 봤거든요.

이해연 : 지금도 얼굴을 안 보는 건 아니지만 20대 초반에는 외모에 큰 비중을 뒀어요.

박소연 : 외모를 중요시하는 것도 나이가 들면 달라져요. 40대에는 외모보다 듬직한 사람이 좋았어요. 지금도 물론 인성을 첫 자리에 놓지만, 가장 끌리는 사람은 재밌는 사람입니다.

이해연 :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잖아요. 가끔 나도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인가 되묻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까지는 없어도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소연 : 자기관리까지...! 저보다 해연 씨가 오히려 기준이 높은데요? (웃음) 그런데 해연 씨,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사람의 외모보다는 대화가 중요하더라고요. 별 의미 없는 말인데도 대화하면서 크게 웃게 되는 사람이 있어요. 학력도 그리 높지 않고, 얼굴은 수수하며, 돈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마음이 끌리는 걸 보면 대화가 잘된다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해연 : 선배님 나이가 되면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기준이 그렇습니다.

박소연 : 제가 40대 중반에 호감을 느꼈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배가 좀 나왔어요. 운동을 하라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배가 나온 게 아니라 가슴이 들어갔을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한참을 웃었다니까요. 저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것이겠죠?

박소연 : 그럼요. 만약에 해연 씨와 제가 같은 생각을 했다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손목잡고 병원에 가야 해요.(웃음) 서로가 다른 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이해연 : 다름을 인정하는 게 정상인데 북한 사람들은 무조건 나한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공감을 못 해서 자주 싸우는 것 같아요. 남한은 상대의 생각이나 처지를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문화라서 참 좋습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저도 빨리 이런 문화에 젖어 들어서 남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쉽게 단정해요. 남한은 다름을 인정해 주더라고요. 소개로 만나는 경우도 서로의 성향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서로 다를 수 있잖아요. 이 경우 당신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게 남한 문화인 것 같아요. 남녀 간의 사랑도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 같아요. 그런데 해연 씨, 연애는 어떻게 보면 풀기 힘든 평생 숙제이지 않습니까? 숙제를 풀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상대를 자주 갈아치우며 만나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와 오랜 시간을 진지하게 만나면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연습 시간이 늘어난다면 그 과정을 통해 참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해연 : 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살펴서 서로 맞춰주고 알아 가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나는 나대로 이렇게 갈 거니까, 너는 그냥 나를 따라오기만 하라고 하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아요. 북한에서 지금 연애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도 이 얘기를 귀담아들으시면 좋겠어요.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도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찐한 사랑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꼭 오기를 바라면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해연 씨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인과 사랑에 대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지만 잘 생각해보면 세상에게 가장 이뤄지기 어려운 건 남북 사람들의 사랑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던 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이 아니라 사랑이 이뤄지는 결말로 보였는데요, 국경만큼 길고 높은 문화의 장벽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바로 그걸 넘을 수 있는 건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고요, 아무쪼록 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 많은 청년들이 설탕만큼 달고, 행복으로 벅찬 사랑이란 걸 꼭 해볼 수 있기를 응원하며 오늘 시간 마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