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남한에서 북한 엄마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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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지금은 사춘기 아들을 집에서 내쫓았던 게 미안해요. 계속 반항했다면 남한식 표현으로 호적에서 파 버렸을 겁니다. (웃음) 사춘기는 3년 정도 가긴 하지만 매일 활화산처럼 타오르진 않아요. 어느 때는 사람질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확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쟤가 언제 그랬지? 할 정도로 변하니까 괜히 미안해지는 거예요.

이해연 : 사람이 그렇잖아요. 하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요.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알아서 돌아오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사춘기 때 부모들이 욕하고 이러는데 사람은 자꾸 싫은 소리를 하면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 숨는다, 그러지 말고 가만히 둬 봐라 그러면 알아서 나온다고, 아니면 더 깊게 들어가고 안 나올 수 있으니까 타이밍이 진짜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정말 저도 그랬거든요.

박소연 : 그것도 맞는 말이죠. 그런데 같은 사춘기라도 남한 엄마들보다 북한에서 온 엄마들이 더 힘들어요. 남한 엄마들은 사춘기 자식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하는 지, 적어도 정보도 많고 얘기도 많이 들었을 거예요. 반면 우리는 40대에 갑자기 남한에 툭 떨어졌으니까 그런 의식도 없고 그런 충고를 들어도 내면까지 흡수가 안 됐어요. 그러니까 서툰 거예요.

이해연 : 그런데 남한 엄마들도 사춘기 자녀와 잘 지내기 힘들어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방송에도 나와 물어보기도 하고요…

박소연 : 남한에 정말 좋은 말이 있어요. ‘부모로 사는 삶이 처음이고 사춘기 아들을 둔 삶도 처음이다’. 북한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 말에 저는 너무나 좋더라고요. 부모도 세상을 처음 사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서툴 수밖에 없잖아요. 북한에 있을 때 느낀 부모에 대한 개념과 너무 달랐어요. 북한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가 반항하면 때리거나 벌을 주고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라며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이해연 : 그런 면에서 남한 부모님들은 존경스러워요. 우선 자녀의 생각을 들어주고 그 의견도 존중해 주려고 하고요. 북한에서는 가정교육도 강압적이니 그런 부모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잘못된 교육 방식이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남한 부모님들은 자녀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하고 말할 때도 조심히 다가가려고 하는 행동이 북한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박소연 : 저는 이런 경험이 있어요. 아들이 한창 사춘기 왔을 때 어버이날이 겹쳤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도 직접 만들게 하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게 했어요. 아들이 쓴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지에 눈물자국이 있었어요. 울면서 쓴 거예요. ‘어머니 지금 사춘기이고 어머니 속을 많이 태우는데 저도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쓴 거예요. 내가 참 모자란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연 씨 말처럼 좀 기다려 주지 그걸 못 참아서 붙는 불에 같이 불이 붙어서 결국에는 북한 부모들이 하던 것처럼 폭발해서 아들을 3박4일 내쫓았잖아요. 북한은 이런 것도 참… 학교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는 편지를 쓰라고 교육하지 않잖아요.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고맙습니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합니다’ 이런 시를 써오라고 시켜도…확실히 남북은 모든 면에서 환경 자체가 너무 달라요.

이해연 : 북한 부모님들도 똑같이 처음 부모로 살다 보니 자식 마음을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자식은 부모의 말은 무조건 또 따라야 한다는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서로를 존중하고 그러지 못했고 저도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바로 그게 무서워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어요. 사춘기를 겪을 때 부모님은 한 번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키우면서 한 번도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너희들을 낳았고 장사를 해서 힘들게 살기 때문에 엄마가 밥을 먹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했어요. 엄마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명령했어요. 결국 내 부모가 했던 행동들을 그대로 복습한 거예요. 그러다가 남한에 왔어요. 아들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오니까 처음에는 북한에서처럼 몽둥이로 때려야 하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부모들이 보여 준 본보기가 한 가지밖에 없었고 저도 그렇게 했죠. 아들을 집에서 내쫓고 나라를 잃은 것처럼 울었어요. 원통하고 자식한테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이해연 : 제가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하잖아요. 심혈을 기울여 자식을 키웠는데 갑자기 반항하고 엄마를 무시하면 눈물 날 거 같습니다. 아까 선배님이 ‘너는 내가 낳았으니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사실 남한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니지 않냐, 엄마가 선택해서 낳았으면 책임을 져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답니다.

박소연 : 세상에… 혹시 북한에도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있어요? 설마 해연 씨는 그렇게 생각하진않죠?

이해연 : 요즘에는 북한에도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웃음)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너무 미안하네요.

박소연 : 부모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했을 겁니다. 사실 그런 말을 하자면 끝이 없어요. ‘나도 네 부모 되고 싶어 됐냐’ 이렇게 말이 또 나오거든요. (웃음) 사춘기 자식을 대하는 부모는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을 많이 이해해 주고 또 아이들은 사춘기를 핑계 삼아 너무 반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해연 : 서로를 이해하고 자녀가 예민할 때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도 북한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한에 와서 든 생각입니다.

박소연 : 북한에 살 때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을 부정했어요. 남한에 와서 특히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고 어떤 어려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모든 일에는 기다림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사춘기가 끝나고 아들이 편지를 써서 줬어요. ‘어머니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저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훗날에 왜 그런 편지를 썼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학교에서 진행하는 통일 교육 수업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고 자신 또래의 북한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됐대요. 아들은 어릴 때 남한에 와서 북한을 거의 기억하지 못해요. 어린 학생들이 강제 동원에 내몰리는 사진을 보면서 엄마가 없었다면 사진 속 북한 애들처럼 저러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가 여기까지 데려다준 게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더랍니다. 만약에 기다림이 없었다면 지금쯤 아마 아들 호적을 팠겠죠. (웃음) 지나 보니 사춘기는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사춘기에 ‘기’는 어떤 시간이 계속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지나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다려 주는 게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춘기가 60대까지 가지는 않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러니까 사춘기는 일정 기간 요렇게 딱 잠복해 있다가 지나간다는 거죠. 혜연 씨를 통해 또 배웠어요. ‘기’가 그런 의미였네요. 그러면 제가 지금 겪고 있는 갱년기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죠. 혹시 갱년기가 뭔지 아세요?

이해연 : 네, 갱년기는 들어봤습니다. 북한에 살 때 엄마 친구들이 갱년기를 겪으면서 여자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왜 지금 갱년기 얘기가 나온 거죠? 혹시 선배님이 갱년기?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박소연 : 맞아요. 제가 지금 갱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어요. ‘기’는 지나가는 거라면서요. 그런데 참 더디게 지나가네요. 갱년기는 폐경을 맞이하는 중년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시기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거의 10년 동안 이어져요. 암보다는 낫네요.(웃음) 이 기간에는 여성들의 난소의 기능과 활동성이 점점 저하되고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고 노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고 우울증과 북한에서는 ‘속골이 피아노 친다’고 말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외로움도 많이 느껴요. 삶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여성 갱년기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려면 치료해야 합니다. 사춘기처럼 기다리기 보다는 병과 투쟁해야 해요. 규칙적인 운동,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심리 상담도 받는 게 좋대요.

이해연 : 북한에 있을 때 부모님들이 갱년기를 겪으면서 굳이 어디 가서 상담받는다거나 따로 약을 챙겨 먹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갱년기가 오면 주변에 굳이 말하지 않고 다녀요. 한국 어머님들은 갱년기를 은근히 자랑하며 다니더라고요. 주변에서 화를 내거나 접근을 못 하게 ‘야, 나 지금 갱년기니까 건들지 마’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시니까 무서워서 말도 잘 못하겠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서 저희 때는 갱년기란 말을 거의 안 했어요. 북한에는 여자의 생리 기간은 30년이다. 그래서 15살에 생리를 시작했으니 45살이면 당연히 생리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한에 와서 생리가 없어지면서 산부인과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서 폐경 진단을 받으신 한국 여성분들이 여자의 삶이 끝난 것 같다면서 우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나이가 들면 생리가 없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저러냐 이상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리가 없어지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솔직히 남한 여자들처럼 아이를 키워보고 싶었어요. 일회용 기저귀도 써보고 유모차를 끌고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커피도 마시고 싶었고요... 북한에서는 면 기저귀를 매일 압록강에서 빨아서 사용했으니까요.

이해연 : 선배님은 어차피 아이를 낳지 않을 거잖아요. 그러면서도 서운했어요?

박소연 : 남한 정착 초기에는 낳고 싶었어요. 설사 낳지 못해도 꿈은 꿀 수가 있잖아요.(웃음)

남한에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행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뜻이죠.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기다림과 인내라는 단어는 사실 사치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춘기와 갱년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는 것이고요. 그래도 누구나 겪는 이 시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남한에선 가끔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한 집안에 사춘기와 갱년기가 있으면 누가 이기느냐… 누가 이길까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 이어가 볼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 이현주, 웹팀 :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