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도 ‘팬’ 문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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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그런데 해연 씨는 커피를 참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 들어올 때마다 커피를 꼭 들고 오더라고요.

이해연 : 느끼셨나요? 아주 좋아합니다. 정착 초기에는 커피가 써서 입도 못 댔어요. 그러다가 남한 문화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그 쓴 커피가 좋아졌습니다. 커피 팬입니다. (웃음)

박소연 : 청취자 여러분이 잘 모를 수 있는 말이 나왔습니다. '팬'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이해연 :맞아요, 북한에서는 그런 말 안 쓰죠. 팬이란 '애호가'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남한에는 어떤 사람이나 물건 등을 정말 좋아하면 팬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새로 배운 말인데, 팬으로써 하는 모든 행위를 '덕질'이라고 하기도 해요. 특정 대상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거의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인 '오타쿠'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오덕'이라고 불렸는데 이 단어에 기반하여 한국에서는 '덕'으로서 하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소연 : 그렇죠. 사실 '팬(fan)'이라는 말은 영어인데, 보통 운동선수나 연극, 영화배우들 같은 유명인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남한에서는 팬이라고 부릅니다.

이해연 : 북한에는 그런 말이 없어서 그렇지 가수나 배우의 팬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박소연 : 맞죠! 북한에도 영화배우를 좋아하는 사람, 산을 좋아하는 산 애호가, 바다를 좋아하는 바다 애호가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지 표현이 다를 뿐인데요. 그런 면에서 북한에도 정말 애호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동의 자유가 거의 없잖아요. 실제로 산을 좋아해서 산을 가고, 바다를 좋아해 바다에 가고 싶어도, 특별증명서 같은 것을 발급받아야 해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그냥 마음속으로만 좋아하지 사회적으로 활성화가 되기가 힘든 환경인데요, 남한은 완전히 다르죠.

이해연 : 남한은 어디로 가기로 마음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더라고요.

박소연 : 쉬우니까요.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나 자동차에 엉덩이 붙이고 앉았다 하면, 2~3시간이면 부산이나 전라도도 그날로 갈 수 있어요. 좋아하는 가수가 어디서 공연을 한다, 오르고 싶은 산이 전라도 산골에 있다? 거의 당일 안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죠. 이런 조건 아래서 팬 문화가 대중적 문화가 된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리고 다른 이유는 인터넷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든 언제든 연결해 사용할 수 있으니 정보력이 되게 빨라요. 누가 오늘 어디 방송에 간다더라, 공연을 한다더라, 팬 사인회를 한다더라 하면 바로 인터넷에서 확인이 가능하니 정보 공유가 잘 되고 그러다 보니 팬 활동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말하자면 누구를 또는 무엇을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잘돼있는 거죠. 실제로 남한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팬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북한 주민들도 익히 알고 있는 송혜교 배우를 좋아한다면... 북한에서는 '은서'라고 알려져 있죠. 이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배우를 검색하고. 송혜교 배우가 화보 찍으러 미국에 간다는 소식을 알면 직접 현장에 가지는 못해도, 텔레비전이나 노트텔로 화보를 볼 수가 있어요. 정말 열정적인 팬들은 공항으로 직접 만나러 가기도 하고요. 개인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팬질'이라고 하는 건데 북한에서는 '질'이라는 말이 좀 나쁘게 쓰이잖아요? 예를들면 '저 사람은 사람 질을 못 한다'... 이런 식으로요. 남한에서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팬들은 본인의 행위를 '팬질'이라고 하면서 약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러나 '팬질'은 꼭 가수나 배우, 운동선수 등 특정 사람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요. 물건에 대해서도 가능합니다. 저는 아까 말했듯이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콩을 집에 사놓고 매일 아침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십니다.

박소연 : 집에 커피콩을 갈 수 있는 기계까지 있다는 거예요?

이해연 : 아직 그 정도까지는 못 왔고... 그냥 삽니다. (웃음)


박소연 : 커피숍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잠깐 말씀드리면 커피콩도 정말 다양해요. 아프리카나 베트남, 라오스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있는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릅니다. 그리고 몇 도에서 원두를 볶아야 하는지도 중요하고요, 커피에는 산미라는 게 있어요.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신맛인데, 신맛이 나는 커피가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해연 씨가 집에서 직접 갈아서 드시는 커피콩은 어떤 맛이 나요?

이해연 : 제가 맛을 구별하거나 원산지가 어디인지는 잘 모릅니다. 전문가 앞에서 감히 내세우기가 어렵네요. (웃음)


박소연 : 그러면 아직은 아기 커피 애호가... (웃음)
이해연 : 지금은 후기를 보고 커피 향이 괜찮다면 사보는 정도입니다. 생산지까지 따지며 마시기엔 머리가 아플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요즘은 '나만의 카페'라고 해서 베란다에 나가서 예쁜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내다보면서 마시잖아요. 그리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의 사회적 관계망 SNS 공개 게시판에 올리면 어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따라 하게 되죠. 그러면서 커피의 팬이 점점 늘어나는 거죠.

이해연 :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커피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배우고 자격증도 따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제가 어찌 보면 약간 덕질의 초보가 아닐까...

박소연 : 네, 그렇죠. 불씨가 불길이 되는 건 순간이니까요. 팬이나 덕질이 꼭 커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잖아요? 남한 사람들은 주로 가수나 배우를 많이 좋아해요. 해연 씨는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가 있습니까?

이해연 : 물론이죠. 저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남한까지 왔잖아요. 북한에서도 남한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서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분들을 보며 남한에 가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거든요. 그분이 바로 손예진 씨 입니다.

박소연 :얼마 전에 결혼하셨는데 많이 아쉽죠. (웃음)

이해연 : 같은 여자라 상관없습니다. (웃음) 결혼 생활도 축복해 주고 싶고, 결혼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더 궁금해지고 그러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그분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는 모두 봤습니다.


박소연 : 아마 남자 팬들은 손예진 씨가 결혼하는 바람에 너무 실망했을 수도... (웃음) 해연 씨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앞으로 어떤 아이를 낳을까 진심으로 기대하는 것을 팬심이라고 해요.

이해연 : 혹시 선배님은요? 좋아하는 배우, 가수 있으세요?

박소연 : 저는 자주 바뀌는데 한 사람만은 정확해요. 정우성 씨.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생겼다 아입니까! 제가 북한에 살 때 정우성 씨가 나온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도 있나 싶었는데, 남한에 와서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의 팬심이냐면 그분이 20대에 찍었던 영화까지 유튜브에서 다 찾아봤어요. 그 외에는 조금씩 변하는데, 지금은 정말 멋있게 생긴 '차은우'라는 아이돌 가수를 좋아한답니다.

이해연 :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습니다. (웃음)

박소연 : 그분이 흰 양복을 입고 춤을 추는데 사람이 홀린다고 해야 하나? 제가 요즘 일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차은우, 이분을 보면 화도 쑥 내려가고 마음이 정화되고 힘도 납니다.


이해연 : 이게 바로 팬질, 덕질의 좋은 점 같습니다. 힘든데 보면 힘이 난다니까요!


박소연 : 우리가 몸이 아프거나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병원에 가면 상담을 받거나 약을 먹어야 해요. 그러면 진료받느라 시간이 필요하고, 돈을 내야 하고 그렇게 해도 치료가 잘 안 되기도 하는데, 이 사람을 보면서 내 마음이 이렇게 정화가 되면서 나아지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약이 어디 있어요.

이해연 : 지금 선배님 눈빛이 너무 반짝이는데요.

박소연 : 졸렸었는데 차은우 얘기에 번쩍 뜨였어요. (웃음)

이해연 : 선배님, 얘기하시는 동안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좋은 것도 지나치지 않게 조화롭게 유지하며 살아간다면 오히려 좋은 것으로서 삶의 활력소가 되게 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마음이 기쁘고 항상 그 사람을 응원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 좋은 에너지를 얻게 되는데요, 정도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삶에 큰 활력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클로징] 남한에는 ‘그 가수에 그 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가 장애인 거주시설에 약 5천 달러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가수를 통해 받은 활기와 감동을 사회적으로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려준 것이죠. 남한 사람들은 단순히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팬을 하는 게 아닙니다. 또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닌데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청취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팬질의 세계, 남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