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 여름철 전기세는 얼마?
2023.07.31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남한은 얼마나 더울까? 31도? 32도?
남한에 와서야 몇 도에 사는 줄 알았어요
“북한에는 온도계 자체가 없죠. 유일하게 몇도가 중요한 건 술 제조할 때죠”
박소연 : 우리가 계속 남한에 와서 더워 죽겠다, 폭염이다 이런 말을 하는데 도대체 남조선은 얼마나 덥길래 저렇게 막 우는소리 할까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사실 여름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안 틀어놓으면 집 안의 온도가 거의 28도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이해연 : 맞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창문을 좀 닫아 놓는 게 오히려 좋아요. 밖에서 더운 공기가 들어오기 때문인데요. 에어컨은 24~25도 정도로 맞춰서 틀어 놓습니다. 그러면 좀 살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와서 아르바이트한 곳은 식당이었는데요. 에어컨은 나오는데 너무 더워서 에어컨 앞의 온도계를 봤더니 42도인 겁니다.
박소연 : 아니, 무슨 일을 했는데요? 42도라니...
이해연 : 식당 주방이었어요. 주방에서 자꾸 가스 불을 켜고 물을 끓이고 하니까 에어컨이 있어도 온도가 엄청났던 거죠. 그걸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니까요! (웃음)
박소연 : 그런데 지금 혜연 씨가 계속 온도가 몇 도였다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남한에 와서 우리가 몇 도에서 사는 줄 알았습니다.
이해연 : 맞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더우면 더운가 보다 하지 오늘이 몇 도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없어요.
박소연 : 야, 오늘 엄청 많이 덥단다, 많이 덥다... 이렇게 했는데 여기 오니까 거의 가정집마다 다 온도계가 있는 겁니다. 처음 겨울에 왔을 때 뉴스 보도에서 10도라는데 더운가, 찬가 완전 모르겠는 겁니다. 그리고 여름에 에어컨 틀 때도 집안의 온도를 몇 도가 적당한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알았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는 온도계 자체가 없죠. 유일하게 몇 도가 중요한 건 술 제조할 때죠. (웃음)
박소연 : 그렇죠. 술 몇 도인지 알아야 하니까 그때만 ‘도수’가 중요하고요. 남한에선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너무 모르면서 산 거죠.
이해연 : 우리가 살던 그 고장은 좀 추운 곳이잖아요? 여름철이면 저녁엔 좀 서늘해도 낮 온도가30도는 넘었을 겁니다. 북한도 앞쪽 지방은 한국처럼 덥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박소연 : 그렇게 더워도 올 때 지하철 타고 왔죠? 다들 야외에 서 있는 시간은 한 시간도 안 될 겁니다. 버스,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만 조금 서 있고 버스, 지하철 안은 에어컨이 나와서 선선하죠.
이해연 : 우리 집보다 더 시원한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정착 초기엔 지하철 안에 들어갈 때마다 행복했어요. (웃음) 내 돈을 쓰지 않고도 이렇게 시원함을 공짜로 얻을 수 있구나... 정착 연도가 늘어나니까 너무 추워요. 그래서 지하철에 그런 게 있어요, 냉방이 좀 덜 나오는 약냉방 칸이라고. 거기를 찾아서 타죠.
이해연 : 어머, 그게 그런 뜻이었나요? 저는 약냉방이라고 해서 한약재 같은 걸 넣어서 약 냄새가 나게 한 것인 줄 알았어요... 건강에 좋으라고. (웃음)
박소연 :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상상력은 좋다! (웃음)
더운 여름을 나는 북한 사람들의 신박한 방법
“다들 최악의 상황에서 사니까 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갖가지의 생각들을 생각해내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런 창발적인 생각이 좀 없어지죠?“
박소연: 그것 뿐이 아니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주변에 막 커피, 얼음물 파는 상점이 하나 건너 하나씩 있잖아요. 그거 사 먹으며 걸어가면 더위가 또 견뎌지고요...
이해연 : 그런데 남한 거리를 다니다 보면 까까오(하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잘 없어요. 북한에선 까까오 같은 거 쥐고 다니며 항시적으로 몸을 좀 선선하게 해주는데... 대신 여기는 차가운 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 줄여서 ‘아.아’를 쥐고 다니죠.
박소연 : 북한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까까오나 에스키모는 금방 먹어져요. 아마 해연 씨는 어려서 나와서 잘 모를 거예요. 10년 전에는 장마당에서 장사꾼이 앉는 좌석 간격이 80cm밖에 안 되니까 한여름에 사람들이 양 떼처럼 다 붙어 앉아요, 그럼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들, 몸의 열기가 섞여서 정말 힘들죠. 정말 죽겠으면 찬 걸 하나 사 먹는데요. 해연 씨, 사카린 넣어서 얼린 얼음 알아요? 그게 잘 녹아서 하나 사면 적어도 한두 시간은 빨아 먹어요. 그리고 정말 가끔, 불이 오면 선풍기를 켜죠. 근데 전압이 낮으면 바람이 안 시원하니 선풍기 앞에 스타킹으로 얼음을 매달아 놓고... 그렇게 여름을 났습니다. 그런 걸 보면 북한 사람들은 열어만 놓으면, 북한 땅을 요이땅하고 열어만 놓으면 진짜 에디슨 같은 발명가들이 엄청나게 나올 것 같아요. (웃음) 다들 최악의 상황에서 사니까 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갖가지의 생각들을 생각해 내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런 창발적인 생각이 좀 없어지죠? 우리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다 생각해 놓은 완성품들이 나오니까요. (웃음)
이해연 : 한국은 개인이 아니라 매년 기업들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에 신박한 기능을 넣어서 새 제품을 내놔요. 디자인도 해마다 너무 예쁘게 달라지고요.
박소연 : 6년 전, 10년 전에 샀던 에어컨도 성능이 너무 좋고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매해 또 새로운 가전이 나오니까 사고 싶잖아요. 이제 좀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저도 북한에서는 선배님과 같은 생각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좀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자꾸 새 제품을 사야 더 나은 제품이 나오죠. 그리고 사람들이 새 제품으로 바꾸는 이유가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가 아니라 에너지 효율 때문인 것도 크더라고요. 새로 나오는 제품일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아서 전기세가 적게 나와요.
박소연 : 가만히 보면 남한 사람들은 모든 걸 다 따져요. 반면에 우리는 너무 안 따지죠. 따질 수 있는 환경도 아니지만 딱 이름만 보고 사는 경우가 많죠. 일본제야, 남조선 제품이야? 이런 거요. 전기 소비량... 이런 건 전혀 신경 안 쓰고요.
남한 사람들 에어컨 등 사용하며 따지는 전기 효율
북한에선 계량기 없어 전자제품 개수로 부과
몰래 쓰는 사람이 승자인 세상에서 쓰는 만큼 돈 내는 세상으로
이해연 : 남한 사람들은 전기 소비 효율 1등급, 2등급 그걸 엄청 신경 씁니다만 그건 각 집에 전기 계량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쓰는 만큼 전기세를 내니까요. 북한 같은 경우엔 감독관이 나와서 전기 제품 개수를 세고 너무 많으면 벌금을 내라고 해요.
박소연 : 해연 씨가 진짜 정확한 얘기를 해줬는데 한 가정이 잘 살아서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전기 밥가마도 있어요. 그럼 세금을 걷어가는 사람이 와서 가전제품이 확인하고 많으면 벌금을 내야 돼요. 나라의 전기 사정이 어려운데 이 집만 전기를 너무 많이 쓴다... 그래서 벌금을 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전기 밥가마 같은 걸 함지 안에 넣어 감춰요.
이해연 : 개인 집들의 전기 계량기가 따로 없다 보니 그냥 눈에 보이는 것, 히터가 하나 더 생겼네 냉장고가 하나 더 생겼네...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측정하는 거죠.
박소연 : 맞아요. 저도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랐던 게 집마다 바로 그 바깥에, 아파트의 경우에도 복도에 계량기가 붙어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게 뭔데 이렇게 숫자가 계속 올라가나 했는데 전기가 쓸 때마다 움직이더라고요, 전기만이 아니라 수도도 그렇고, 가스도 그렇고요. 그리고 이런 걸 다 기계가 측정해서 요금을 부과하는 거죠.
이해연 : 다들 자기가 쓴 것만큼 돈을 내기 때문에 아껴 쓸 줄 알고 내가 써도 내가 책임을 지잖아요. 북한은 막 히터를 쓰다가 검열이 오면 그 따거운(뜨거운) 것을 막 밖에 창고에 감추고, 연극 보는 것처럼 진짜 신기하게 막 국 냄새가 나는데 부엌에 불을 안 땠다고... (웃음) 그럼 이 국물 냄새는 어디서 나냐 막 그러기도 하고...
박소연 : 그러니까 저는 북한이 못 사는 원인이 거기에도 있다고 봐요. 사람들 인식이 모두 국가에서 받는 게 없으니까 속여도 된다, 속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안 속이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죠. 그런 세상에 살다 온 우리는 남한에 와서 여기 문화에 선뜻 이입하기가 힘들어요. 거기선 속이지 않는 사람이 바보고 여기는 모든 걸 다 기계로 해, 나라에서 내가 번 돈을 빤히 다 알아... 내가 쓴 것만큼 내가 번 것만큼 솔직하게 안 내는 사람은 큰일 나는 세상이죠. 정직하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아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남한의 4인 가족, 여름철 평균 전기 사용량은 400kW. 사용량이 많으면 요금이 올라가는 누진세를 적용하고 부가세 등을 고려하면 약 65달러 정도가 부과됩니다. 가끔 폭염보다 무서운 게 전기세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서 남한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 못지않게 기발한 발상으로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 여름 나는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인사드릴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