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적금이 있고 예금이 있는데요, 적금은 달마다 일정 금액을 저금하는 것, 예금은 통 돈을 맡기는 것이죠?
이해연 : 예를 들어 적금은 달마다 50만 원씩 은행에 넣겠다 하면 매달 그 돈을 넣으면 되고 예금은 통 돈을 1년 혹은 2년 동안 정해진 기간 안에 은행에 맡기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이죠. 복잡하게 들리지만 한국 사람들은 정말 쉽고 자연스럽게 은행에 적금도 하고 예금도 해요.
박소연 : 혜연 씨가 금리가 많이 올라서 은행에 적금을 넣었다고 했는데요. 이자 몇 프로 받았어요?
이해연 : 연이율 4.85%짜리였습니다.
박소연 : 작년만 해도 은행 이자가 2.5%였는데 꼭 두 배가 올랐네요.
이해연 : 맞아요. 오늘 검색해봤더니 기준 금리가 3% 대로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금리가 높은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데요. 우선 코로나 시기, 정부가 국민들에게 재난 지원금을 줬고요.
박소연 : 그렇죠. 정부가 4차, 5차까지 재난지원금을 줬죠?
이해연 : 네, 그러면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렸고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그런 이유들로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이걸 한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상승하고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런 상황은 남한뿐이 아니에요. 대부분 국가가 비슷하고 특히 미국이 물가가 엄청나게 오르며 은행 금리를 점점 높이고 있습니다. 금리를 높이면 돈을 빌린 사람들이 돈을 갚기도 하고 저처럼 저금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요. 그러면서 시중의 돈이 점점 은행으로 돌아올 수 있죠. 사실 저는 적은 돈이라도 저금하고 이자를 더 받아 좋긴 한데 반대로 돈을 빌린 사람들은 힘든 상황이 되고 있죠…
박소연 : 세상 이치가 그렇죠?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이 꼭 존재합니다… 우리 청취자분들은 '아니, 미국 금리가 올랐는데 왜 남조선 금리도 따라 오르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남한 은행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달러가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로 다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세계는 다 연동되니까요. 북한은 사실 외톨이잖아요? 세계 다른 나라들과 무역 거래가 없고 기껏 바라보는 나라가 중국인데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무역이 많지 않고요. 남한에서 살면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아까 해연 씨가 높은 이자를 받는다며 입이 귀밑에 걸렸는데요. 저는요! 얼마 전 대출을 받고 이자만 5.5%를 내고 있어요.
이해연 : 진짜 높네요…
박소연 : 그래서 제가 예전에는 아침에 TV를 켜고 전날에 못 본 드라마를 항상 봤는데 최근에는 경제 뉴스만 계속 보고 있어요. (웃음) 지금 상황이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속도전으로 갑자기 안정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문가들이 설명하더라고요. 왜냐면, 시중에 널린 돈을 한 번에 모을 수 없고 남한에서만 해결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랍니다. 경제전문가나 은행 총책임자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적어도 3년은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거나 더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이해연 :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안해져요.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은 금리 얘기를 하면 금방 알아들어요. 저는 처음에 미국에서 달러가 오르는데 왜 남한도 덩달아 오를까? 혹시 미국의 식민지여서 그러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우리는 항상 북한에서 남조선 경제는 미국에 종속됐다고 배웠으니까요. 최근 뉴스를 많이 보면서 이게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이해연 : 그렇네요. 사실 달러가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게 나와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저랑 너무나 가까운 일, 제게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새삼 경제 뉴스도 많이 보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소연 : 맞아요. 물론 저는 대출을 받아서 좀 더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도 있지만 요즘 뭐… 가격이 다 올라갔잖아요? 남새 가격까지 오르고… 이렇게 다 연결이 돼요. 이걸 보면서 남한 경제나 세계 경제 상황을 모르면 한국에서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해연 : 돈을 벌려고 해도 흘러가는 추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를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자기 돈을 다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겠어요.
박소연 : 그리고 특히… 상황을 모르면 불만이 쌓이고 불만이 쌓이면 사는 게 힘들더라고요. 금리가 왜 오르게 됐는지를 모르면 또 북한처럼 생각한단 말이에요. '야~ 진짜 살기 좋은 곳이라고 왔는데 왜 또 이 모양이야'… 이러면서요. 이런 생각으로 살면 어데 가든 불만으로 살게 돼요. 모르면 자포자기하게 되고요.
<이해연의 ‘유행통신’>
N잡러….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잡이라는 단어에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의 어미, ‘-러’가 붙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말하자면 직업을 한 개 이상 가진 사람을 부르는 말인데요, ‘N잡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투잡’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영어로 투는 숫자 2를 의미하니 말 그대로 2개의 직업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N잡러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있기 때문이겠죠?
북한에선 '애들은 돈 밝히면 안 된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남한에선 이런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게 트렌드, 말하자면 유행입니다. 남한의 젊은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경제 지식을 배우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보기엔 N 잡러가 나오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생계뿐 아니라 젊었을 때부터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젊은층들의 의식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남들보다 일찍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는 N잡러들의 꿈…그래서 또 새로 나온 말이 '파이어족'입니다.
파이어족이란 불필요한 지출 줄이고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서 일찍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인데요 . 이와 정반대로 욜로족도 있습니다.
욜로족이란 인생 뭐 있냐 , 즐기며 살자는 태도로 원하는 대로 다 쓰고 즐기고 사는 사람들인데요. 사람마다 삶의 가치관에 따라 욜로족이 되기도 하고 파이어족이 되기도 합니다.
<박소연의 라떼는>
이런 젊은이들에게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산다"고 말하면 고생을 왜 금을 주고 사냐고 비웃겠죠. 욜로족처럼 살다가 인생 망친다고 조언하면 구닥다리 생각을 가진 꼰대로 평가될 것입니다.
우리 때는 월말이면 로임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에 다니면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즐기면서 일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왠지 배부른 소리나 혹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헛소리로 취급했어요. 간혹 주변에 주중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투잡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북한에서부터 N잡러 또는 투잡족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 왔기 때문에 '저금이 웬 말이야, 그냥 오늘을 즐기자'는 욜로족은 진짜 잔소리를 하고 싶죠. 그렇지만 욜로족… 아주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가족과 자식에 대한 책임이 없었다면 나도 한 번쯤을 버는 대로 쓰고 즐기고 살아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생각만 그렇지, 절대 이렇게 살라고 권하는 건 아니고요. 적당히 아끼며 적당히 또 한편으로는 즐기는 법도 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네요.
박소연 : 저는 북한에서 돈을 죽을 만큼 열심히 모아봤어요. 국경에서 언 땅에 배를 붙이고 밀수를 했죠. 그러면서도 돈을 벌어 노후에 즐기며 살겠다는 생각을 못 해 봤어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아글타글 사는 삶으로 끝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연 : 저도 지금 돈을 벌고 있잖아요. 일하고 월급 받는 것이 생계와 연관되는 것도 있지만, 북한과 비교를 하자면 남한에서는 생계는 물론 노후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탈북민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지금은 금리도 오르고 세계적으로 경제가 힘든 상황이지만 시련을 왔다 가지 머물진 않아요.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좋은 시절이 오겠죠.
이해연 : 저도 그런 바람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목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종이에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 것이라고 목록을 써놨었어요. 지금은 또 다른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고 시간이 가고 성장함에 따라서 목표는 변하고 제가 바라는 돈도 더 높아지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 혜연 씨가 나중에 그 꿈 다 이뤘다고 희망찬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바라며,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