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남조선 사람하고 혁명 같이 못하겠네’
2023.11.2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요즘 직장 잘 다니고 계시죠? 궁금했어요, 지금까지 해연 씨가 직장을 다니면서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거의 안 했거든요.
이해연 : 지금도 직장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동료들은 전부 한국 사람이고 사실 별로 나쁜 일이나 억울한 일이 없어서 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다행이네요. 사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정착 초기에는 특히 불만이 많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직장 문화가 많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남조선 사람들하고는 혁명을 같이 못하겠다고들 얘기하죠. (웃음)
이해연 : 저는 오히려 남한 사람들과 같이 일해서 좋습니다. 탈북 전 북한에서 회사 생활을 잠깐 하고 왔어요. 그때는 직장생활이 불평등하고 억울하다는 기분을 들었는데 오히려 남한은 그런 생각이 별로 안 듭니다. 일했는데 직장에서 돈을 주지 않아도 사장에게 왜 돈을 주지 않냐고 따질 수 있고,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어서 좋습니다.
박소연 : 북한 직장생활이 불평등했어요?
이해연 : 남한은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순서로 승진하지만, 북한은 배경이 좋고 돈이 많은 사람만 승진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억울하지만 대놓고 말을 할 수 없고요.
박소연 : 해연 씨는 어떻게 보면 장마당 세대잖아요. 그래서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저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90년대 직장을 다녔어요. 그때는 토대가 좋고 간부 집 자녀가 간부가 되는 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노동자 자식은 뭐 그냥 노동자를 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살았고 그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런데 확실히 요즘 북한 세대는 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당연히 모든 사람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당원이 있어요. 한 사람은 간부 자식이고 한 사람은 노동자 자식입니다. 그런데 결국엔 승진을 간부 집 자식이 합니다. 같은 당원도 토대나 집안 환경에 따라 받은 대우가 다르니까 당연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죠.
박소연 : 공감합니다. 북한에서는 불평등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지만 남한에 오니 또 다른 문제를 대면합니다. 탈북민이라는 호칭 문제요. 자기소개를 할 때 ‘이해연입니다’가 아니라 ‘탈북민 이해연’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이해연 : 그래서 아르바이트 일자리 면접을 볼 때도 솔직하게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를 해요. 하루 보고 다시 안 만날 사이가 아니잖아요. 일단 그렇게 알리고 나면 대부분 편견을 갖고 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맡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박소연 : 지금 일하는 직장은 시급을 받은 아르바이트일 일자리인가요?
이해연 : 아르바이트는 아니고요.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어요. 직종은 요식업입니다.
박소연 : 음식점 등 각종 프랜차이즈나 식당들을 포함한 직종을 남한에서는 요식업이라고 부르는데요. 해연 씨는 거기서 어떤 일을 하는데요?
이해연 : 한 기업에서 자매점으로 운영하는 반찬가게에서 포장, 진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박소연 :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은 깜짝 놀랄 것 같아요. ‘아니 반찬은 내 집 부뚜막에서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요. (웃음) 남한은 이런 반찬가게들이 많습니다. 남한 동료들과의 문화차이? 그런 문제는 없어요?
이해연 : 당연히 있지만 일을 같이 못 하겠다는 정도는 아닙니다. 남한에 왔으니 내가 바뀌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 말투나 억양을 고치려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반찬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고 반찬에 대해 물어보면 설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남새 이름도 북한과 다르거든요. 그래서 반찬 이름을 손전화로 다 찍어서 사진을 보면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집에 가서도 계속 보고 외우고요. 그렇게 공부해서 반찬 이름이 입에 붙으면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잘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이야… 내가 여기서 반성하게 되네요. 저는 정착 초기에는 노력하기보다 원망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어쩔 수 없잖아요. 남한에 왔으면 여기 문화를 따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박소연 :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해연 씨, 처음 남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무섭지 않았어요?
이해연 : 그랬죠. 가게에서 처음 일할 때 있었던 일인데요. 전화로 반찬 주문이 들어왔어요. 떨리는 맘으로 받았는데 전화 주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포장해서 배달을 보냈는데 잠시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서 한 가지를 빼고 보냈다고… 제가 실수를 한 거죠. 일단은 죄송하다고 하고 빨리 보내 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어요.
박소연 : 북한 같으면 생활총화 감입니다.(웃음)
이해연 : 잘못이 맞아요. 그런 상황들을 겪으며, 내가 전화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반찬 가게에서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 갔어요. 그래서 모르는 것은 사장님께 솔직하게 터놓고 물어보기로 했어요. 워낙 사장님이 좋은 분이시라 제가 탈북민인 줄 알면서도 채용했거든요.
박소연 : 해연 씨의 사장님, 북한으로 말하면 지배인인데 좋은 분 같아요. 저도 회사에 처음에 취직했을 때 잘 모르는 걸 옆 동료한테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말이 '네이버에 찾아보세요' 라고…
인터넷 검색해보라는 얘기죠. 그 말에 상처를 많이 받고 모욕감까지 느꼈어요. 그분의 성격이 약간 냉정했는데 4년을 같이 일하고 보니 좋은 사람이었더라고요. 그 회사에는 제가 탈북민 첫 직원이었고, 제 이미지가 그렇게 부드러운 편은 아니잖아요.
이해연 : 북한에서 오신 분 중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정말 많은 거 같아요.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누구한테 먼저 가서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남한에 와서 바뀐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엔 모든 게 두려워서 피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없고, 그냥 있으면 누가 해결해 주는 것 없이 점점 어려운 상황만 반복될 뿐 개선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는 부딪쳐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바뀐 것 같아요.
박소연 : 제가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번은 경기도 광명시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나운서를 채용하는데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어떻게 저를 알고 연락하셨냐고 하니까, 탈북민 직업 상담사분이 소개를 해줬대요. 면접위원들이 앉아 있고 제가 그 앞에 딱 앉았는데 그 사람들이 눈빛에 내가 찔릴 것 같이 긴장되는 거예요. 물론 결과는 바로 불합격이었죠.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말이 좀 서툴 수 있는데,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따라갈 수 있다’고 했더니 면접관 중 한 분이 ‘여기는 준비된 사람을 뽑는 곳이지. 배워주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제가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던 계기가 카페에서 일을 할 때부터였어요. 그 카페에서는 제가 탈북자라는 걸 알고도 받아 줬는데, 그 이유가 제가 오기 전에 탈북 대학생이 알바를 했는데 그렇게 성실했답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탈북민들을 받은 거죠. 한 사람이 좋은 인상을 남기면 본인뿐 아니라 전체 탈북민에게도 좋게 평가되는 만큼 개인 차원을 넘어서는 거예요. 이렇게 인정을 해주니까 북한 말이 술술 나오면서 탈북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죠. 그러면서 자신감을 좀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공감합니다. 정말 탈북민들은 자신감이 높아요. 더 높은 건 자존심이죠.
박소연 : 북한에서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다'라고 말하잖아요.
이해연 : 맞아요. 북한에서는 자존심마저 없으면 누구한테 밟히기 쉬우니까 센 척이라도 해야 사람들이 얕보지 않는 환경이니까요.
박소연 : 남한에서는 환경이 완전 낯설잖아요. 이것을 극복한다며 탈북민들이 주로 센 척을 하면서 위장하는 거예요. 자기 능력으로 사람들한테 인정받도록 하는 게 정답인데, 괜히 큰소리를 치거나 허세를 부려서 상대방에게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 하는 거죠.
이해연 : 물론 자존심도 필요하죠. 게다가 북한에서는 국가에서 자존심을 세우라고 조장하죠.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은 높아도 자존감이 낮고 너무 자존심만 너무 내세우다가 남들한테 소외 당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얼마 전에 제가 만난 분은 남한에 온 지 17년 정도 되는데 아직도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말투도 그냥 그대로인 데다가, '야, 내 고향 말을 버리면 아이 되지비. 내가 이것까지 버리면 나에게 뭐가 남겠소'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분도 자신만이 지키고 싶은 게 있겠죠. 그러나 고향에 대한 좋은 추억들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중간중간 떠올리면 돼요. 괜히 자기가 지키고 있는 게 정말 대단한 것처럼 버티는 것은 고집이며 아집이 돼요. 그렇지만 자존심을 낮추고 자존감을 높이면서 적응을 잘하시는 분들도 의외로 많이 있답니다.
남한 정착 얘기를 항상 하면서 떠올리는 두 가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사필귀정’과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의미의 ‘고진감래’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돌아오고 나를 오해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내가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를 무시했던 동료 직원도 결국 저에게 약점을 잡히고 말았는데요, 통쾌하고 슬기로운 저의 복수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총괄, 제작, 에디터 : 이현주
웹팀 :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