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남쪽에도 겨울추위가 매서운데요 이럴 때 일수록 청취자 여러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매주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음악산책. 오늘은 지난 1960년대 남한과 북한에서 유행했던 노래들을 알아봅니다.
김철웅
: 오 기자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중석
: 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북쪽은 남쪽보다 더 추울텐데 북녘 동포여러분 추위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60년대라고 해도 여전히 철웅 씨가 태어나기 전 아닙니까? 아무래도 어른들한테 전해들은 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음악을 전공하셨으니 학교에서 배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른들한테서 그 시절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죠?
김
: 네, 제가 태어나기 전 이긴 해도 60년대에 유행한 노래들에 대해 이런저런 기회에 들어보기도 하고 공부도 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오
: 그렇군요. 60년대는 남북이 본격적으로 제 갈 길을 향해 가면서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 되던 시기였는데요 남쪽에서는 영화제작이 활발히 진행되고 인기영화가 나오면서 영화주제가들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전쟁 후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던 남한사람들에게 영화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고달픈 삶을 달래주는 위안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그 주제가 또한 인기를 얻게 된 거죠.
김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의 60년대는 전쟁 후 여러 분야에서 사회주의 건설시기라 많은 혁명가요들이 작곡되었습니다. 물론 혁명사상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인민들이 즐겨 부르고 기쁠 때나 슬플 때 맘껏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되는 것 아닐까요.
오
: 그렇습니다. 음악이 갖는 장점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어요? 가뜩이나 각박한 세상살이에 목청껏 부를 노래 한곡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정말 살맛이 나지 않을 거 같아요. 60년대 초반의 남한사람들은 영화주제가를 참 좋아 했는데요 '나 하나의 사랑' '꿈은 사라지고' '노란 샤쓰의 사나이' '꿈이여 다시한번' '산장의 여인' 같은 노래들이 같은 이름의 영화와 함께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중에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한명숙은 전쟁때 남쪽에 피난온 실향민 가수로 이 노래 한곡으로 일약 최고의 가수로 올라섰습니다. 북한식 표현으로 말하면 인민가수의 대접을 받은 셈이죠. 그럼 한명숙이 부른 '노란 샤쓰의 사나이' 한번 들어 보실까요.
-음악- 노란 샤쓰의 사나이
김
: 네 이곡은 저도 어린 시절 한국가요인 줄은 모르고 형들 따라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가사를 흥얼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시기에 북한에서는 '카츄사의 노래'가 꽤 인기 있었는데요 나중에 보니까 남한에서도 이 노래가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들었어요. 남북한에서 같은 노래가 유행했다는 사실이 첨에는 얼른 믿기지 않았습니다. 60년대에는 북한에서는 오히려 수정주의 교조주의라는 명분아래 소련문화 중국우상과 같은 모든 형태의 다른 나라의 문화들이 배척당하던 시기였습니다.
오
: 60년대초엔 또 남한에 주둔한 미군의 영향을 받아 팝송을 비롯한 외국노래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소위 여럿이 함께 노래하는 중창단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어요. 남한에서는 보컬그룹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때 활동을 시작한 남녀중창단이 참 많습니다. '블루 벨스' '봉봉4중창단' '자니 브러더스' '김 시스터즈' '김치캐츠'등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중창단이 인기를 모았습니다. 1962년엔 민간방송국이 개국하면서 한국의 연예계, 특히 가요계는 크나큰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레코드판에만 의존하고 서양식 선술집인 바나 클럽의 밤무대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가수들이 전국민을 상대로 인기몰이를 할 수 있는 통로역할을 방송이 맡고 나선거죠.
김
: 정말 방송이 음악의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는 대단한 것 입니다. 북한에서도 이 당시에는 방송이 활성화 되면서 유행가를 퍼뜨리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고 봅니다. 비록 모든 방송이 국영방송이라 혁명가요 방송이 많았지만 인민들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는 가요들이 많이 생산되고 불리어졌습니다. 여기서 60년대 북한에서 인기 있었던 노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들어보시겠습니다.
-음악-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오
: 네 역시 한국적인 정서가 엿보이는 음악이네요. 60년대 남한음악을 얘기하려면 가수 이미자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살 어린 나이에 '열아홉 순정'이란 노래로 등장한 이미자는 그후 한국 트로트 가요의 여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일제 말부터 한국가요를 대표하는 리듬으로 자리잡은 트로트는 속된 말로 '뽕짝'이라고도 하는데요 4분의 3박자에 애조띤 노래가 특징입니다. 이미자는 데뷔 후 수백 곡의 트로트를 유행시키면서 한국가요사에 큰 획을 그엇는데요 아직도 현역가수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는 40년이 넘도록 국민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김
: '동백아가씨' 는 북쪽에서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노래입니다. 북한에서는 60년대 후반부터 남한 유행가는 미제국주의에 물든 퇴폐적인 노래들이라고 선전하면서 따라 부르거나 듣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그래도 우리정서에 맞기 때문에 몰래 카세트 테이프를 구해 듣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오
: 옳은 말씀입니다. 60년 후반의 남쪽 음악계는 전통적인 트로트음악과 미국에서 들어온 팝음악과 재즈풍의 음악 그리고 남미의 음악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세계의 음악이 어우러지는 마당이었죠. 4.19와 5.16 등 사회적 격변기를 보내면서 팍팍하고 고달픈 서민의 애환을 노래에 담아 표현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뭔가를 기다리는 서민의 감정을 담아낸 듯 애절한 멜로디로 크게 유행한 ‘동백 아가씨’ 한번 들어보시죠.
-음악- 동백 아가씨
김
: 1960년대는 북한음악에서 사회주의건설의 가장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 문화를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이시기에 민족악기 개량을 비롯한 각종 외국문화를 배척하고 북한의 고유문화를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죠.
오
: 60년대 중반에 등장한 가수 중에 패티 김 도 오랜 세월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국민가수 중 하나입니다. 전통 트로트와는 거리가 먼 서구적인 멜로디와 한국정서를 혼합시킨 독특한 노래를 발표했는데요 1969년에 발표한 '사랑하는 마리아'의 인기는 굉장했었습니다. 저도 이 노래는 줄줄 따라 불렀을 정도니까요. 패티 김은 이밖에도 ‘가을에 떠난 사람’ ‘서울의 찬가’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최근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 또 이시기는 북한에서 꽃 파는 처녀 피바다를 비롯하여 여러 가극을 창작하여 그 가극에서 나오는 노래들이 한창 유행이 되던 시기이기도 하죠. 오: 60년대 중반쯤에는 우리가요사에 남을 만한 남자가수가 등장하는데요. 이 사람이 바로 요절한 가수 배호입니다. 저음과 고음이 적당히 어우러지면서 우수어린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였는데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마지막 잎새’ 등 좋은 노래들을 남겼습니다.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가수였는데 그만 29살에 신장염이 악화되어 요절했습니다. 저도 배호를 참 좋아해서 그의 노래는 다 부를줄 알 정도입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입니다.
-음악- 돌아가는 삼각지
오
: 60년대 음악을 얘기하면서 소위 음악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60년대 후반부터 대형 음반회사들이 서로 경쟁을 했고 그 결과 수많은 가수와 히트곡을 양산해냈습니다. 비싼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들을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은 차 한잔 값만 있으면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는 음악다방에 몰리게 되었어요. 서울 명동에 근거지를 둔 ‘돌체’ ‘은하수’ ‘디쉐네’ ‘시보네’ 등이 모두 이때 성업 중이던 음악전문 다방입니다. 음악다방에는 손님들의 신청곡을 받아 음반을 틀어주고 노래에 대한 해설도 하는 ‘디스크 자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모든 청소년이 선망하는 인기직업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시기에 최동욱, 이종환, 김인권, 이백천, 박원웅 같은 유명 디스크자키들이 탄생했습니다. 이당시 음악다방에서 가장 많이 틀어주었다는 ‘빗속의 여인’ 이란 노래 한번 들어보시죠.
-음악- 빗속의 여인
김
: 아 이 노래군요. 저는 남쪽에 와서 나중에 이 노래를 들었지만 참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로트가 아니라 전기기타와 전자악기를 중심으로 한 반주가 아주 좋아요. 곡도 특이한 것 이 맘에 들었습니다. 신중현 씨가 작곡한 노래죠?
오
: 철웅 씨도 맘에 드세요? 이노래를 작곡한 신중현 씨는 우리가요사에 남을 만한 작곡가겸 연주자입니다. 신중현 씨는 60년대 후반 전자악기를 위주로 한 록음악을 남한에 처음 들여와 크게 성공한 음악가입니다. 그의 전기 기타 연주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국내 최고였으며 ‘빗속의 여인’ ‘미인 ’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 ‘떠오르는 태양’ 같은 노래는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음악들입니다. 저한테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를 들라면 지금도 서슴지않고 신중현 씨를 꼽을 만큼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대중음악가입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가 신씨가 작곡한 ‘님은 먼 곳에’입니다.
-음악- 님은 먼곳에
김: 오늘은 60년대 남과 북에서 인기 있던 음악을 알아보았는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한에 비해 북녘에서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음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대중의 고달픈 삶에는 좋은 노래가 큰 위안이 될 텐데 말이죠. 물론 남한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에 나갈 수 없는 금지곡이 꽤 많았다고 들어 알고 있지만 북쪽에서처럼 모든 외래음악을 철저히 틀어막지는 않았겠죠. 다음주에는 70년대 음악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자유아시아 방송의 음악산책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오중석 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