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여는 세상] 대학가요제
서울-김철웅, 이현주 xallsl@rfa.org
2009.10.16
2009.10.16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으로 여는 세상, 김철웅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함께 보던 동갑내기 친구가
어렸을 적 꿈이 대학생이었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작은 손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손에는 대학 이름이 새겨진 파일과 전공 책을 든
대학생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80년대 얘깁니다.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쪽을 보통 경쟁 사회라고들 하죠? 직장을 잡고 돈을 버는 것도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큰 경쟁입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은 과외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책과 씨름하면서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대학은 고등학교 시절보다는 많은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고, 이런 자유 속에서 독특한 대학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방송국에서는 ‘대학가요제’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는 창작곡 경연 대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 이 대학가요제를 한번 소개할까 합니다. 남쪽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좋은 음악과 남쪽 대학 문화의 단면을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첫 곡으로 대학가요제 1회 대상곡,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나 어떡게’ - 샌드페블즈
남쪽의 문화 방송- MBC에서 처음 대학가요제를 시작한 것은 1977년입니다. 대상 수상자가 서울 대학교 출신의 샌드페블즈- 우리말로 모래와 자갈이라는 뜻의 그룹 사운드였습니다. ‘그룹사운드’ 북한식으로 풀어보자면 그야말로 악단이죠. 노래하는 가수가 있고 드럼, 음반, 기타가 함께 연주하는 그런 악단 말입니다. 1977년 만해도 이런 ‘그룹사운드’는 대학가 밖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샌드페블즈의 대상 수상은 상당한 이변을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시작으로 많은 ‘그룹사운드’가 대중 가요계에 진출합니다.
특히, 이 노래의 박자를 잘 들어보십시오. 이것이 70년대 후반 젊은이들을 춤 바람으로 몰아넣었던 ‘고고 리듬’입니다. 이런 고고 리듬에 맞춰 춤추는 장소를 ‘고고장’이고 했고 당연히, 단속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당시 ‘고고장’은 젊은이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은 바로 이 가수일 것 같은데요, 2회 동상 수상곡,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입니다.
‘그때 그 사람’ - 심수봉
대학가요제의 시작이 70년대였던 만큼 가요제 등장 배경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도 많습니다.
유신 정권 말기, 정권은 사람들의 불만을 정치 외에 다른 곳으로 돌리기를 원했고 방송국은 대마초 파동 등으로 허전해진 대중 음악계의 빈자리를 채우기를 원했는데, 바로 이 두 곳의 이익과 맞아 떨어진 것이 이 대학가요제였다는 해석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대학가에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 통기타 한번 안 튕겨본 사람이 없었고 대학 마다 가요제가 유행처럼 열리고 있었다니 단순히 대학의 가요제를 방송국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 배경이야 어쨌든 대학가요제는 이후 십여년 동안 걸출한 대중 가수를 배출하고 대중 가요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위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대학가요제는 애초, 대학의 순수한 문화 양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2회부터는 대학가요제 출신들이 대중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후 나온 곡들이 대중가요처럼 잘 다듬어진 돌과 같이 반짝 반짝하진 않았습니다. 다소 거칠지만 잘 보면 멋있는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석 같은 노래들은 계속 이어집니다.
남쪽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80년은 바로 이 노래가 대상을 차지합니다.
‘꿈의 대화’ - 이병용, 한명훈
연대 출신의 이병용, 한명훈이 함께 부른 ‘꿈의 대화’라는 곡입니다. 남쪽의 40대들은 대학가요제 명곡으로 이 노래를 꼽는 경우가 많은데, 가사가 특히 좋습니다.
‘외로움도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에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만의 꿈의 대화를…’
거세지는 대학가의 반정부 대모에 가요제 취소 직전까지 갔던 시대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 노래가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88년 12회 가요제. 그야말로 80년대를 마감하고 90년대를 여는 새로운 노래가 대중을 휘어잡습니다.
‘그대에게’ - 무한궤도
노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곡인데, 지금도 활동 중인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이끈 그룹사운드입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잠자리 눈알 같이 생긴 금테 안경을 쓰고 남자인데도 앞머리를 길게 길러서 한쪽 눈을 덮은 신해철의 차림새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당시 노래가 유행하면서 신해철의 머리 모양이나 안경도 덩달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88년 대회 이후 대학가요제는 별 다른 유행이나 큰 화제를 몰고 오지 못합니다. 90년과 2천년 들어서는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전, 대학가요제 하면 첫 출연자부터 대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까지 텔레비전 앞을 지키던 풍경은 이제 찾아 볼 수 없고 대학가요제 대상곡이 가요 순위에 오르는 일도 없습니다.
이유는 뭐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대학 문화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1970,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대학과 대학생 수는 아마 배가 더 늘었을 겁니다. 2008년에는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이 됐다니 대학이 얼마나 많아 졌는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상징하던 엘리트 문화, 대학 문화의 특성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대학 문화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습니다. 대학생이 ‘의식 있는 엘리트’라는 지위에서 내려와 보통 젊은이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은 이제 우리가 고향에서 봤던 것처럼 반정부를 대모를 하는 대신, 취업과 진로 준비를 위해 도서관과 영어 학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취직하기 위해서 대학을 가는 마당에 신선하고 풋풋한 대학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또 예전에 정부가 허용하는 음악만 들었던 시대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음악 시장이 개방돼 세계의 음악이 쏟아져 들어오고 음악 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이제 대학생이라는 초자보다는 전문성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분명,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대학가요제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은 좀 달라졌습니다.
‘군계무학’ - 이대 나온 여자
올해 대상곡 ‘이대 나온 여자’의 ‘군계무학’입니다. 노래 가사 한 줄이 정말 귀에 박히는데요, 개성을 상실한 젊음은 모두 다 유죄.
탈북자들이 보통 남쪽에 와서 다시 배우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개성입니다. ‘개성 – 개개인의 독특한 특성’
많은 국가에서 대학 교육은 개개인이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진정한 ‘나’를 찾고 내가 무엇을 하는 지 찾는 과정이 바로 대학 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흐름에 따라 대학 문화도 학생 개개인의 자유, 도전, 창발성을 존중합니다.
남쪽보다 북쪽의 대학 문화는 훨씬 더 선택을 받은 소수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특권과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그 한계가 체제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요제 같은 것이 열리면 지금 소개해 드린 남쪽 대학에서처럼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이끄는 젊은 혈기가 살아 숨 쉬는 개성 있는 노래가 나올 수 없겠죠? 하다못해 독특한 대학 문화라는 것도 존재하기 힘든 곳이 북한의 대학입니다.
지금 남쪽에선 대학가요제를 계속해야 하나 이런 얘기가 오가지만 저는 이 가요제가 끝까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북쪽의 대학생들도 개성이 담긴 본인들의 음악을 들고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북쪽 대학생들이 무대에 들고 나온 그 음악은 분명 남쪽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창의적인 음악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곡들이 통일 시대 함께 부를 수 있는 민족의 노래가 될 겁니다.
음악으로 여는 세상 벌써 마칠 시간입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남쪽을 보통 경쟁 사회라고들 하죠? 직장을 잡고 돈을 버는 것도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큰 경쟁입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은 과외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책과 씨름하면서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대학은 고등학교 시절보다는 많은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고, 이런 자유 속에서 독특한 대학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방송국에서는 ‘대학가요제’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는 창작곡 경연 대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 이 대학가요제를 한번 소개할까 합니다. 남쪽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좋은 음악과 남쪽 대학 문화의 단면을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첫 곡으로 대학가요제 1회 대상곡,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나 어떡게’ - 샌드페블즈
남쪽의 문화 방송- MBC에서 처음 대학가요제를 시작한 것은 1977년입니다. 대상 수상자가 서울 대학교 출신의 샌드페블즈- 우리말로 모래와 자갈이라는 뜻의 그룹 사운드였습니다. ‘그룹사운드’ 북한식으로 풀어보자면 그야말로 악단이죠. 노래하는 가수가 있고 드럼, 음반, 기타가 함께 연주하는 그런 악단 말입니다. 1977년 만해도 이런 ‘그룹사운드’는 대학가 밖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샌드페블즈의 대상 수상은 상당한 이변을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시작으로 많은 ‘그룹사운드’가 대중 가요계에 진출합니다.
특히, 이 노래의 박자를 잘 들어보십시오. 이것이 70년대 후반 젊은이들을 춤 바람으로 몰아넣었던 ‘고고 리듬’입니다. 이런 고고 리듬에 맞춰 춤추는 장소를 ‘고고장’이고 했고 당연히, 단속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당시 ‘고고장’은 젊은이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은 바로 이 가수일 것 같은데요, 2회 동상 수상곡,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입니다.
‘그때 그 사람’ - 심수봉
대학가요제의 시작이 70년대였던 만큼 가요제 등장 배경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도 많습니다.
유신 정권 말기, 정권은 사람들의 불만을 정치 외에 다른 곳으로 돌리기를 원했고 방송국은 대마초 파동 등으로 허전해진 대중 음악계의 빈자리를 채우기를 원했는데, 바로 이 두 곳의 이익과 맞아 떨어진 것이 이 대학가요제였다는 해석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대학가에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 통기타 한번 안 튕겨본 사람이 없었고 대학 마다 가요제가 유행처럼 열리고 있었다니 단순히 대학의 가요제를 방송국 무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등장 배경이야 어쨌든 대학가요제는 이후 십여년 동안 걸출한 대중 가수를 배출하고 대중 가요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위력을 과시하게 됩니다.
대학가요제는 애초, 대학의 순수한 문화 양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2회부터는 대학가요제 출신들이 대중 가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후 나온 곡들이 대중가요처럼 잘 다듬어진 돌과 같이 반짝 반짝하진 않았습니다. 다소 거칠지만 잘 보면 멋있는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석 같은 노래들은 계속 이어집니다.
남쪽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80년은 바로 이 노래가 대상을 차지합니다.
‘꿈의 대화’ - 이병용, 한명훈
연대 출신의 이병용, 한명훈이 함께 부른 ‘꿈의 대화’라는 곡입니다. 남쪽의 40대들은 대학가요제 명곡으로 이 노래를 꼽는 경우가 많은데, 가사가 특히 좋습니다.
‘외로움도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에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만의 꿈의 대화를…’
거세지는 대학가의 반정부 대모에 가요제 취소 직전까지 갔던 시대적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 노래가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88년 12회 가요제. 그야말로 80년대를 마감하고 90년대를 여는 새로운 노래가 대중을 휘어잡습니다.
‘그대에게’ - 무한궤도
노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곡인데, 지금도 활동 중인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이끈 그룹사운드입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잠자리 눈알 같이 생긴 금테 안경을 쓰고 남자인데도 앞머리를 길게 길러서 한쪽 눈을 덮은 신해철의 차림새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당시 노래가 유행하면서 신해철의 머리 모양이나 안경도 덩달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88년 대회 이후 대학가요제는 별 다른 유행이나 큰 화제를 몰고 오지 못합니다. 90년과 2천년 들어서는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전, 대학가요제 하면 첫 출연자부터 대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까지 텔레비전 앞을 지키던 풍경은 이제 찾아 볼 수 없고 대학가요제 대상곡이 가요 순위에 오르는 일도 없습니다.
이유는 뭐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대학 문화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1970,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대학과 대학생 수는 아마 배가 더 늘었을 겁니다. 2008년에는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이 됐다니 대학이 얼마나 많아 졌는지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서 대학생이 상징하던 엘리트 문화, 대학 문화의 특성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대학 문화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습니다. 대학생이 ‘의식 있는 엘리트’라는 지위에서 내려와 보통 젊은이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대학생들은 이제 우리가 고향에서 봤던 것처럼 반정부를 대모를 하는 대신, 취업과 진로 준비를 위해 도서관과 영어 학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취직하기 위해서 대학을 가는 마당에 신선하고 풋풋한 대학 문화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또 예전에 정부가 허용하는 음악만 들었던 시대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음악 시장이 개방돼 세계의 음악이 쏟아져 들어오고 음악 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이제 대학생이라는 초자보다는 전문성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분명,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대학가요제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은 좀 달라졌습니다.
‘군계무학’ - 이대 나온 여자
올해 대상곡 ‘이대 나온 여자’의 ‘군계무학’입니다. 노래 가사 한 줄이 정말 귀에 박히는데요, 개성을 상실한 젊음은 모두 다 유죄.
탈북자들이 보통 남쪽에 와서 다시 배우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개성입니다. ‘개성 – 개개인의 독특한 특성’
많은 국가에서 대학 교육은 개개인이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진정한 ‘나’를 찾고 내가 무엇을 하는 지 찾는 과정이 바로 대학 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흐름에 따라 대학 문화도 학생 개개인의 자유, 도전, 창발성을 존중합니다.
남쪽보다 북쪽의 대학 문화는 훨씬 더 선택을 받은 소수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약간의 특권과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그 한계가 체제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요제 같은 것이 열리면 지금 소개해 드린 남쪽 대학에서처럼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이끄는 젊은 혈기가 살아 숨 쉬는 개성 있는 노래가 나올 수 없겠죠? 하다못해 독특한 대학 문화라는 것도 존재하기 힘든 곳이 북한의 대학입니다.
지금 남쪽에선 대학가요제를 계속해야 하나 이런 얘기가 오가지만 저는 이 가요제가 끝까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북쪽의 대학생들도 개성이 담긴 본인들의 음악을 들고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북쪽 대학생들이 무대에 들고 나온 그 음악은 분명 남쪽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창의적인 음악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곡들이 통일 시대 함께 부를 수 있는 민족의 노래가 될 겁니다.
음악으로 여는 세상 벌써 마칠 시간입니다. 저는 이만 인사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