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으로 여는 세상 김철웅입니다.
서울의 초가을은 코리코리 한 은행열매의 냄새로 시작합니다. 서울의 길가에는 대부분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바람에 떨어진 은행 열매가 발에 밟히고 깨져 도로를 지날 때면 그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래서 서울의 가을은 은행 냄새로 시작하고, 노란 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지면 끝이 납니다.
어쨌든 날씨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선선한 가을 날씨가 사람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고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집니다. 아마 공연이 가장 많이 열리는 계절이 아닐까 싶은데, 저도 최근 좋은 공연을 하나 봤습니다.
중국의 전통 악기를 들고 나와서 현대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여자12악방'이라는 중국의 민속 악단의 공연이었는데,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첫 곡으로 '모리화' 듣습니다.
- 모리화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사회는 경제 부분에서 큰 성장을 이뤘습니다. 경제 발전은 우리가 밥 먹고 사는 일 같이 기본적인 것에 영향을 주기 시작해 점점 생활의 방식을 바꿉니다. 여유가 생길수록 끼니때우기 보다 ‘문화’ 생활, ‘여가’에 눈을 돌리고 따라서 이런 시장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덩치도 커집니다.
음악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그냥 노래 잘 하는 사람이 가수가 되는 일이 많았지만, 시장이 커지면 가수가 만들어지는 방식도 변합니다. 그리고 중국 음악 시장도 이런 세태를 빠르게 쫓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여자 12악방’도 우리가 생각하는 민속 악단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기획 아래 악단이 구성되고 활동하고 세계 시장에 소개됐습니다.
‘여자12악방’이 결성된 것은 2001년. 12명의 구성원들을 뽑을 당시 중국 전역에서 지원한 사람이 무려 4만 8천명이라더군요. 4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단원들은 중국 내 유명 음악학교에서 중국 전통, 민족 음악을 전공한 정통파들로 미모는 기본. 무시할 수 없는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중국 안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또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국내에 멈추지 않고 일본으로 진출해 일본 음악 순위에서 20주간이나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2006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도 중국 방문 마지막 날 이 악단의 공연을 봤다고 합니다.
이제 ‘여성12악방’은 유럽, 미국 시장에도 진출해 지금까지 동양의 전통 악기를 들고 세계무대에 나선 악단 중 가장 크게 성공한 악단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단원들도 중국 부호 순위에 들만큼 부를 얻기도 했습니다.
남쪽에서의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니 좀 촌스럽고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했는데, 젊은 여성의 특유의 당당함과 젊은 힘이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여자12악방’의 젊은 힘이 느껴지는 곡, ‘자유’ 함께 듣고,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자유
사실 이곡을 누가 중국 전통 악기로 연주했다고 하겠습니까?
이들의 연주는 주로 이런 곡들이 많습니다. 전통 악기라고 해서 반드시 옛날 중국 고전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대중가요, 클래식 할 것 없이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겁니다.
‘크로스 오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통과 현재, 재즈와 클래식 등 전혀 다른 것들을 합성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시도를 이렇게 말하는데, ‘여자12악방’이 대표적인 크로스 오버 악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남쪽에도 적지 않은 젊은 민속 음악인들이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는 이런 시도를 놓고 전통을 억지로 변화시키며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비판하지만, 사실 전통 음악을 사람들이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물놀이로 유명한 남쪽의 김덕수 씨도 ‘전통 음악을 고수하는 것이 전례이고 우리 민족의 현대화는 전통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전통 음악을 현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야 말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말인데, 이런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전통을 만드는 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인연
‘여자12악방’이 연주한 남쪽 대중 가수,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곡입니다. ‘여자12악방’이 연주하는 중국 전통 악기를 살펴보면 디즈, 비파, 고쟁, 양금 그리고 얼후가 있습니다. 디즈는 관악기, 고쟁은 가야금과 비슷합니다. ‘얼후’, 우리가 흔히 이호라고 부르는 악기는 우리의 해금에 해당합니다.
뒤로 들리는 해금 소리 같은 악기가 바로 ‘얼후’인데, 둘 다 두 줄의 현으로 만들어진 악기지만 해금의 경우 명주실. 얼후는 쇠줄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얼후는 남쪽 대중 가요계는 물론, 일본이나 서양 시장에서도 상당히 명망이 있습니다.
저는 이 ‘여자12악방’의 성공 뒤에 이 ‘얼후’라는 악기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해금의 소리는 까랑까랑한 떨림이 많고 개성이 강하지만, ‘얼후’는 해금에 비해 튀지 않고 조화돼서 서양 음악 등 다양한 음악에 잘 어울립니다. 또 상대적으로 해금보다 떨림이 적어 빠른 대중음악에 적합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기의 장점이 있더라도 악기를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얼후’는 단지 중국의 전통 악기로 남았을 겁니다. ‘여자12악방’ 같은 많은 중국의 연주자들이 이 악기를 들고 나서 세계무대에 소개하고 연주하는 노력을 계속해왔기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무대를 보면서 계속 부럽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제가 부러웠던 것은 세 가지 점입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악기들이 많은데, 이런 악기들이 묻히고 있다는 것. 해금이 얼마나 좋은 음색을 가졌습니까? 슬픔과 익살을 동시에 품은 독특한 음색이 있고 음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악기입니다.
또 하나, 자국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이것을 세계화 하는 중국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야 자부심이 뒤질 것이 없죠. 그러나 개방돼 세계무대에 나서게 되면 어떨까요? 잔인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부와 자부심은 비례하는 면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 음악, 전통과 현대의 만남, 크로스 오버. 이런 것들이 우리 사람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사실 먼 나라 얘기겠죠. 분명 음악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지만 중국을 떠도는 많은 탈북자들,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가진 것에 자부심을 갖고, 세계로 나와 사심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저는 공연장을 나오면서 떠올려 봤습니다.
마지막 곡으로는 남쪽의 해금 연주가 김애라의 ‘항상 내 마음’에 들으면서 저는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