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전말 공개

장진성∙탈북 작가
2014.08.05
sea_swim_50s-305.jpg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7월 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해군 동해함대와 서해함대 고위 지휘관들의 수영 훈련을 지휘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50대가 넘어보이는 지휘관들이 수영모를 쓰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늘 이 시간에는 장성택 처형 전말에 대해 말씀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최근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유일지도 권위를 강조하는 사진을 연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진 중 하나가 30살의 김정은 앞에서 60~70대 고령의 장령들이 옷을 벗고 수영훈련을 하는 모습입니다. 윤리적 계산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지도자의 권위만을 강조한 일종의 '모독주기' 사진이었는데요, 그 뿐만 아니라 김정은이 현지시찰 과정에 지시한 내용들도 연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신격화 조작은 수령주의 기획 부서인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얼마든지 연출하고 홍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김정은은 부모 없는 고아인 것과 동시에 유일한 정치적 후견인인 고모부 장성택마저 잃은 정치적 고아입니다. 김정은이 유일권력을 쥐지 못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이미 북한 정권이 공개한 장성택 처형 판결문 안의 파벌투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김정일도 생존에 그 점을 우려했는지 2007년 당 조직지도부 안에 소속돼 있던 당 행정부를 떼어내어 장성택과 김경희에게 국방위원회 대장이란 직함으로 후계 지원 권한을 위임합니다. 김정일 사망 후 노동신문이 유례를 깨고 1면에 최영림 내각총리의 현지료해 사진을 공개한 것도 바로 김경희의 대체권한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장성택은 감찰권력을 갖고 있는 행정부를 당 조직지도부처럼 전국 조직으로 체계화하고, 인민보안 부 안의 내무 군을 확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 조직지도부를 견제하자면 맹견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보위 부부터 견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쿠데타 방지 명목의 새로운 정치감찰 조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2011년 국가안전보위부 류경부 부장이 간첩혐의로 내무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하게 되고, 우동측 부장은 뇌출혈로 명예퇴직 당하게 됩니다. 국가안전보위 부 지휘부가 공석인 틈을 타 인민보안 부 내무군이 공포정치를 주도하는 과정에 리영호 군총참모장도 해임 숙청되게 됩니다.

그가 해임된 이유는 당 조직지도부와 행정부와의 정책노선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장성택은 친인척 개입정치의 합리화를 위해 김경희의 권한인 인민경제 발전으로 체제안정을 주장한 반면, 실권만 갖고 있던 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일의 유훈 충성을 강조하며 강한 북한, 즉 핵무장 정책을 고집했습니다. 북한정권이 핵-경제 병진정책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양측의 노선을 다 같이 수용한 결과였습니다. 이는 곧 당 조직지도부가 전통적으로 확보하고 있던 기존 권력질서와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질서의 대립이었습니다.

장성택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직함을 가진 것도 외교권을 당 조직지도부가 독점하고 있는 것만큼 그것을 우회하여 체육교류 명목으로 외부세계와의 대화창구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정은이 체육강국을 열심히 강조한 것은 바로 장성택의 그 대외권한을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듯 핵무장이냐, 경제발전이냐는 정책적 우선결정과 실행의 첫 대립과정에서 리영호는 희생양이 됐던 것입니다.

인민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내각을 키워야 하는데 이미 북한의 주요 경제가 선군 정치 이념을 좇아 군에 집중된 상황에서 장성택의 행정부는 리영호부터 과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찰나 리영호가 장성택의 권력질주에 반발하여 사석에서 "우리나라에 장가 성을 가진 수령이 또 있나?"라고 발언한 것이 수령유일지도체제를 위반한 증거물로 제시되어 당 조직지도부도 해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장성택은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으로 추천하게 됩니다. 최룡해는 과거 사로청위원장 직을 맡고 있을 때 당시 당 조직지도부 안에서 청년조직 담당 부부장으로 근무하던 장성택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인물입니다. 당 조직지도부가 최룡해 임명에 제동을 걸 수 없었던 이유는 최현의 아들인 것과 동시에 김정일로부터 인간적으로 신임이 두터웠던 실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군 경력이 전혀 없는데다 군의 모든 인사권과 정책 권을 당 조직지도부가 관리지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룡해의 군권이란 무의미했습니다. 하여 군경제가 부분적으로 내각으로 이동하던 2013년 2월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는 정세 돌파를 위해 핵실험을 들고 나오게 됩니다.

김정일의 유훈관철 일환이어서 장성택도 감히 반대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핵실험이 유엔안보리 제재로 이어지자 당 조직지도부와 군부는 2013년 3월부터 전국에 전시태세를 동원하며 과도한 강경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정세권한으로 권력주도의 권능도 함께 갖게 된 당 조직지도부는 그 기세를 몰아 2013년 12월에는 당 중심제가 아닌 내각중심제로 북한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중국 지도부 앞으로 보냈다는 물증을 근거로 장성택을 반당반혁명 분자로 체포하게 됩니다. 결국 김정은 개인의 분노가 아닌 집단의 분노가 장성택을 체포 4일만에 즉결처형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현재 김정은은 간부사업권, 수령경호권, 제의서종합권, 검열권, 당 생활지도권한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에 둘러싸인 수령연기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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