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북한 학생들도 수학여행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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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경기도에 살고 있는 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이달 초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저희가 서울로 올라오기로 한 날, 강풍이 불어서 비행기가 뜨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하루 더 있었는데,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걱정하셨지만, 솔직히 저희는 친구들과 함께 하루 더 수학여행을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근데 북한 학생들도 수학여행을 가나요? 수학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나요?”

(음악 up & down)

저도 기사 봤어요. 5월 4일에 기상악화로 제주공항을 오가는 비행기가 뜨지 않아서 33개 학교 수학여행단 6천여 명이 발이 묶였다고 하더라고요. 날이 풀리고 바로 잘 올라오셨겠죠?.

참, 그러고보니 그 전 주, 4월 말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저도 같은 비행기를 탔었습니다.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데, 마침 그 비행기에 수학여행을 가는 2개 학교의 학생들이 탔더라고요.

한국에 산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신기하고 놀라운 순간들이 많은데,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새삼 더 그랬습니다.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구나, 참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거든요.

처음 한국에 오고 얼마 안 됐을 땐 '수학여행'이라고 해서 ‘수학을 배우러 가는 여행인가?’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탈북민 중에 '수학여행'이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인 건 저만은 아닐 겁니다. 북한엔 수학여행이란 말이 없거든요.

'수학여행' 은 물론 수학을 배우러 가는 여행은 아니고요. 학교가 아닌 넓은 자연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학문을 넓힐 수 있는 여행을 말하는데요. 한국에선 대부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한 번씩 수학여행을 갑니다. 이곳 사람들은 학창 시절 경험했던 수학여행을 그 어떤 여행보다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즐겁게 추억하더라고요. 물론 나이대 별로 여행했던 장소가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30대~40대 서울 사는 사람들 대다수의 어린 시절 수학여행 장소는 단연 신라시대 역사와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경상북도 경주인데요. 저도 한국에 와서 가봤는데 역사 공부도 되고, 자연도 느낄 수 있는 정말 좋은 여행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더 멀리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 제일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휴양섬 제주도를 찾거나 아예 바다 건너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의 어른들도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수학여행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1928년 당시 한 학교의 수학여행 사진이 남아있었는데요. 수학여행의 역사가 꽤 오래됐더라고요. 군복 차림을 한 20여 명의 학생과 인솔 교사가 남긴 수학여행 사진이었는데, 당시는 일제강점기 때로, 일제는 황국 신민화 정책의 하나로 수학여행을 통해 학생들에게 집체 교육을 하고 조직적인 행동을 몸에 익히도록 했다고 합니다. 1930년대 경우에는 금강산 철도 전 구간이 개통되고 교통망이 활발해지던 시기라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하고요. 일제가 정치적인 의도로 일본이나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수학여행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로 가는지를 질문하셨는데, 앞서 얘기 했듯이 '수학여행'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이 아닌 더 넓은 곳에서 보고 배운다는 점에선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배움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이 있죠. 물론 비행기는 당연히 없고, 대부분 천리길을 걸어서 가야 하는데요. 한민족의 역사와 자연에 대해 배운다기 보단 김일성의 혁명역사 로정을 따라가는 우상화 교육의 일환인 겁니다. 그리고 이마저도 토대도 좋고 집안 경제력도 받쳐주는 학생들만 뽑혀서 체험할 수 있었던, 여행이 아닌 고행에 가까웠죠.

얘기하다 보니, 어쩌면 한국의 수학여행보단, 일제 강점기 시대, 일제의 의해 강압적으로 행해졌던 수학여행과 좀 더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되네요. 북한 학생들이 이곳 한국으로, 여기 남쪽의 학생들이 북한의 금강산과 묘향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하며 오늘 이만 줄이겠습니다. 청진에서 온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출연 조미영, 에디터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