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질문있어요] 한국 드라마 북한에서 진짜 그렇게 많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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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전화 효과음)

“안녕하세요. 충청남도에 살고 있는 40대 남자입니다. 지난달에 배를 타고 서해를 통해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북한에서 한국 영상물을 보면서 한국을 동경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듣기론 북한에서 한국방송 보면 다 잡아간다던데, 그럼 그건 잘못 알려진 얘긴가요? 실상은 많이들 보고 계신 건가요?”

(음악 up & down)

6월 5일 들어온 질문입니다. 지난달 초, 두 일가족인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 10여 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를 통해 한국에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가족 단위로 어선을 타고 북방한계선을 넘어 귀순한 사례는 2017년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코로나19 이후 국경을 꽁꽁 닫아 매면서 몇 년 동안 탈북이 거의 뚝 끊기다시피 했었습니다. 지난해 말 탈북민의 초기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가 보니 최근에 입국한 탈북민이 거의 없어 그 큰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었는데요. 이번에 해상을 통해 들어오신 분들은 정말 쉽지 않은 로정이었을 텐데, 성공적으로 무사히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하신 것에 대해 먼저 축하하고 환영한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질문자 분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 처벌 받는다고 알고 계셨다가 이번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시청을 많이 했단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긴 듯 합니다. 다른 한국 분들한테도 종종 듣는 질문인데요. '아니, 잡아가고 처벌하는데도 한국 영상을 본다고요? 정말인가요?' 아니면 '말만 처벌한다고 하지, 실제론 별탈없이 다들 볼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말이죠.

북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 한국 영상물이 본격적으로 북한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일명 북한에서 '알판'이라 불리는 CD에 드라마 한편씩 저장돼 있었죠. 그동안 오로지 이념과 사상, 그리고 맡겨진 혁명과업 수행과 관련된 딱딱하고 진부한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만 접해왔던 북한 사람들에게 사랑, 질투, 그리고 복수, 꿈, 희망, 절망 등 인간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다루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떠지는 신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식음을 전폐하고 해가 뜨고 지는 줄도 모른 채 드라마 몰아보기를 했고, 중앙당의 어떤 간부는 한국 드라마가 보고싶어 장마당 알판매대를 서성이기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국 사랑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를 구입해 선물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알판을 들고 농촌으로 가 쌀을 바꿔 오기도 했죠. 그 당시 사람들은 모이면 한국 드라마와 주인공들에 대해, 그리고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들에 대해 얘기를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의 힘은 정말 대단했었거든요.

그렇게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북한 전역으로 한국 드라마가 퍼져 나가면서 북한 당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대적인 통제와 단속을 시작하게 됐죠.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의 기사들을 보면 혜산에서, 청진에서 남한 방송을 시청하다 적발돼 약하게는 로동단련대로, 심하게는 사형까지 처해졌다는 내용들이 심심찮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먼저 말씀드렸던 것처럼 안 볼 순 있어도, 보다가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영상물의 매력입니다. '다행'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진 모르겠지만, 그나마 북한은 거의 대부분의 법적 처벌이 뇌물로 무마된다는 겁니다. 단속하는 안전원, 보위지도원들도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뇌물을 주면 대부분의 경우는 아주 큰 처벌은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질문에는 '무서운 형벌이 내려질 수 있는 게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북한에서는 대부분 CD가 아닌 USB나 SD카드를 이용해 영상물을 저장하고 시청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소형화된 기기를 통해 어떻게든 적발되지 않고 영상물을 계속 보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죠. 더 나아가 외부의 문화 콘텐츠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서 ‘탈북’이라는 과감한 시도로 그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오늘 질문에 답이 됐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온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