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부산에 살고 있는 20대 여성입니다. 저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요. 올해는 비오는 날이 많다고 해서 비올 때 신는 예쁜 레인부츠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여름에 레인부츠 같은 걸 신나요? 더 궁금한 건 한국에서는 일상적이지만, 북한 여성들은 절대 입을 수 없는 여름옷 스타일도 있을까요?”
(음악 up & down)
날씨가 정말 더워졌죠. 열대기후의 동남아 국가에서 느꼈던 수준의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 걱정이 들 수 밖에 없는데요. 더울 땐 정말 살에 닿는 천 조각 하나도 거추장스럽고 싫게 느껴지죠.
한국에선 일상적인데 북한에선 절대 입을 수 없는 옷차림 어떤게 있냐고요? 음... 그냥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을 말씀드리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들이 시원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여름철 옷차림을 하고 북한에 간다면 거의 대부분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규찰대한테 단속될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한국의 여름옷은 천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손수건 몇장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의 옷도 있거든요. 물론 성인 여성의 옷이 말이죠. 한국에선 일단 무더위에는 대부분 팔이 드러나는 민소매 옷을 많이 입습니다. 그리고 몸매에 자신이 있는 젊은 여성이라면 민소매에서 훨씬 더 푹 파여진, 그러니까 ‘아버지 난닝구’ 같이 생긴 몸에 딱 붙는 상의를 입기도 하죠. 그 외에도 어깨와 가슴 윗부분까지 시원하게 드러낸 옷도 있고요. 올해는 십여 년 전 유행했던 옷차림인 배꼽티가 다시 유행하면서 배꼽은 물론 배와 허리 부분이 훤히 드러난 아주 짧은 상의도 많이들 착용하고 있습니다.
한 탈북민 남성은 북한에선 남자들이 더울 때 난닝구를 위로 올린 채 배를 다 드러낼 수 있었는데, 여기 남조선은 여자들만 좋은 곳이라는 우스갯말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남북이 다른 것이 이곳 남쪽에선 여성들은 오히려 몸매를 드러내고 살결을 시원하게 드러낸 배꼽티도 입을 수 있지만, 남성들의 경우는 배를 드러내는 상의를 입으면... 아니, 그렇게 입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은 탈북민 남성의 불만이 이해가 되시겠죠?
다행히 이곳에선 남자들도 반바지 차림이 아주 일상적입니다. 더울 땐 긴바지 만큼 불편한 게 또 없으니까요. 시원하게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는 것도 여름철, 시원하고 멋진 남성 옷차림이라고 할 수 있죠. 여성들의 경우는 옷차림에 있어선 남성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더 넓은데요. 여름철 하의는 반바지부터 치마까지 그 색깔도 그리고 천의 소재도, 무엇보다 길이도 정말 다양하죠.
오늘 질문자분은 장마철 레인부츠 얘기도 하셨는데, 레인부츠는 우리 말로는 예쁜 장화를 말합니다. 방송 들으시는 분들은 아마 크게 끄덕이시겠지만, 북한에서 장화는 당연히 비오는 날 발과 바지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신는 거죠. 하지만 여기선 장화의 용도가 더 확장되어 있습니다. 질문자분 얘기처럼 멋을 내기 위한 의도가 더 크니까요. 그 이유는 비 오는 날 남북의 길거리 풍경이 많이 달라섭니다.
이곳 남쪽에선 모든 길이 포장도로로 되어 있고, 빗물처리시설도 잘돼 있어 길에 물이 많이 고이지 않고, 또 물이 고였다고 하더라도 그저 맑은 빗물이다 보니, 비 오는 날에도 일상화를 신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신 북한은 비만 오면 거의 모든 길이 진흙탕으로 변하죠. 흙과 모래가 빗물과 만나 찐득찐득한 흙탕길을 만들어내는데, 걸을 때마다 흙덩이가 신발에 달라붙고 또 바지와 옷에 튀게 되죠. 오늘 질문 받고 오랜만에 북한의 비 오는 거리를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표정이 이그러지네요.
가끔 한국 뉴스에 펄펄 끓는 평양의 도로와 거리 풍경이 나오는데요. 한여름 폭염에도 흰색이나 검정색, 회색 위주의 반팔과 긴바지를 입고,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쫓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북의 옷차림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자유가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