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경기도에 살고 있는 30대 남자입니다. 저는 좀 늦긴 했지만, 얼마 전 원하던 직장에 취업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백수생활을 꽤 길게 하다 보니,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요. 드디어 직장을 얻게 돼서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저도 요즘 하루하루가 뿌듯하고 기쁩니다. 그런데 북한엔 백수가 아예 없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국가가 직업을 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음악 up & down)
'백수'라는 말, 북한 동포 여러분도 들어보셨을까요? 아마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셨다면,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 '백수'는 주로 집 소파에 누워 있죠. TV를 보면서 말입니다.
며칠 안 감은 떡진 머리에 푸석한 얼굴, 목이 늘어난 상의와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부모님의 잔소리와 함께 가끔 한번씩은 등짝을 세게 얻어맞기도 하는... 아마 이런 설명이 떠오르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백수는 원래 ‘백수건달’의 줄임말로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직업이 없는 '무직자' 를 부를 때 사용하고 있죠. 여기까지 듣고 나니 한국에서 '백수'라는 말을 듣는다면 별로 좋은 게 아니구나... 생각되시죠?
그런데 저는 한 탈북민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백수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라고 답했던 분이 있었거든요.
한국뿐 아니라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선 사람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집니다. 다시 말해 원하지 않을 경우 직업을 가지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얘깁니다.
물론 무직자, 그러니까 '백수'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생기는 돈의 궁핍함이나 부모님의 잔소리, 주변의 약간 실망스러운 시선 같은 게 상관 없다면 누구든지 평생 '백수'로 살 수 있습니다. 북한처럼 로동과에서 지도원이 나와서 료해사업하지도 않고요. 로동교화소에 보내지는 일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본인 의사에 따른 선택과 결정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북한 동포분들은 여기까지 들으시고 '오 너무 좋겠는데?!' '그럼 한국엔 백수가 많겠네!'라는 생각을 혹시 하실까요? 왜냐면 여러분들은 정말 직장을 안 다니고 싶으실 테니까요. 직장을 안 다니기 위해서 오히려 돈을 쓰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테니, 오늘 질문자분처럼 직장을 얻었다고 해서 뿌듯하고 기뻐하는 북한 사람들은 거의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질문자분이 북한에선 국가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직업을 주는지, 그래서 정말 백수가 없는지 물어보셨는데요. 네. 한 사람도 빼먹지 않고 모두에게 직업을 줍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공식적인 백수가 없습니다. 북한에선 누구나 자신의 노동력을 국가에 바쳐야 하거든요. 학업을 마치고 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과 관련된 서류가 모두 로동과로 가게 되고 로동과에 배치에 따라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로동과 지도원은 좋은 토대를 갖고 있는 특정한 사람들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사람들의 성향이나 능력 등에 대한 파악 없이 무리배치, 집단배치를 시키는 거죠. 아마 로동과에서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건 ‘한 명의 누락없이 모두를 로동시키고 있는가?’일 겁니다. 여성의 경우 직장을 다니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있긴 한데, 그건 바로 결혼입니다. 결혼을 통해 남편과 아이들을 부양하며 '가두녀성'이 될 때에만 '무직'이 인정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주신 질문의 요점은 ‘북한에선 그러면 직업 선택의 고민이 없어서 좋은 건가?’라는 걸 겁니다. 한국에선 수많은 직종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 그리고 일하면서 합당한 보수를 받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젊은이들의 고민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원하던 직장에 취업하게 되면 기뻐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자발적인 '백수'생활을 이어가는 분들도 꽤 있는 거고요.
아마 오늘도 원치 않는 직장에서 배급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많은 북한의 근로자들은 한국의 '백수'가 진심으로 부럽다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