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음악 up & down)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여자입니다. 올해는 남북 모두 가을 수확이 비교적 괜찮았다고 알고 있어요. 북한도 지금쯤이면 추수가 대부분 끝났겠죠? 그동안 늘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요. 북한은 계속 식량 부족을 겪고 있고, 올해엔 아사자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농사를 직접 짓는 농민들은 쌀이 있으니 그나마 먹고 사는 형편이 좀 나은 거 아닌가요?”
(음악 up & down)
북한 당국은 올해 경제 분야에서 반드시 달성해야 할 12개 중요 고지 중 '알곡 고지'를 첫 손에 꼽았었죠. 가을 즈음 되면서 한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 역시 북한의 농사 작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가 마무리되긴 했지만 태풍 카눈으로 인한 피해도 컸었던 상황이라 걱정이었는데요. 하지만 정작 북한에서 연이어 나온 보도 내용은 올해 농사가 풍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을 보면 9월엔 "흐뭇한 작황이 펼쳐졌다"며 '복 받은 대지'라는 글귀가 새겨진 황금빛 논 사진이 실리기도 했는데요. 지난 8월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의 벼 수확 현황을 전하며 "벼 포기들이 폭우에 잠겼던 때는 상상도 못했던 풍요한 가을을 맞이했다"고 전한 겁니다. 특히 과학기술적 농사의 성과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에 북한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있던 많은 분들에겐 그나마 반가운 소식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의 내부 소식통을 통해 전해진 보도들을 봐도 북한의 쌀값이 조금 떨어진 것으로 보이던데요.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이 방송을 듣고 계신, 그리고 농사를 짓고 계신 농장원분들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큽니다.
북한의 노동신문의 보도 내용이나, 외부에 알려진 내용으로만 북한 상황을 판단할 수 밖에 없는 한국사람들은 그나마 풍작이라면 농촌 사람들은 식량난 걱정없이 배불리, 마음껏 드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오늘의 질문을 받고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드려야 할 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일단 북한의 농촌은 개인농장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죠. 모두 협동농장 체제로 운영되며 농장에 나와서 모두 같이 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수확한 곡식은 국가 창고로 들어가게 됩니다. 농민들은 국가에 바치라는 걸 다 바치고 남은 것 중 일부를 분배로 받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풍작이라고 해서 분배량이 더 많아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농장원들의 분배량은 농장마다 다르고, 또 해마다 달라지기도 하지만, 농장원으로 생활하다 탈북하신 분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중앙당에 올려 보내고, 평양에 먼저 보내고, 그렇게 이리저리 다 떼어가고 나서 남은 걸 나누다보면 정작 농장원들 한가정에 돌아오는 양은 거의 없었고, 정말 지독한 배고픔을 겪었다고들 얘기합니다.
게다가 농촌의 경우 여러 가지 식료품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다 보니 자체적으로 구입을 해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국영상점에 물품이 없다 보니 도시에서 소매로 물건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통해 식량으로 필요한 물건을 바꾸거나 구입하게 되는데, 교통편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는 시골 깊숙히 들어갈수록 도시보다 물건값이 훨씬 더 비싸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선 등 식품부터 겨울에 필요한 동복, 그리고 식기 등 도시에서만 살 수 있는 생활 용품들까지 그 모든 것들은 곡식과 교환을 해야 얻게 됩니다. 농촌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수확을 했다고 해도 그렇게 교환까지 하고 나면 농촌 사람들 역시 해마다 보릿고개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거죠. 답변을 다시 한번 정리해드리면 북한에선 1년 내내 열심히 농사를 지은 농장원들 역시 식량난을 피해가긴 어렵다는 겁니다.
지난달 24일 7.5m 크기의 목선을 타고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주민 4명은 정부의 합동심문에서 '먹고 살기 위해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목숨 건 탈북을 했다는 겁니다. 북한이 선전하는 것처럼 정말 풍작이라면 올해만큼은 인민들이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인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