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있어요] 북한에서 유학은 어떤 사람들이 가나요?
2024.09.30
앵커 :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
질문을 통해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청진 출신 탈북 방송인 조미영 씨가 진행하는 ‘질문있어요’가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얼마 전에 해외 유학생 출신의 탈북민이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걸 봤는데요. ‘말도 굉장히 잘하고 머리도 정말 좋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북한에서는 웬만해선 해외로 나가기가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유학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건가요?”
'유학', 이 말을 북한에서 들었을 때와 지금 여기 한국에서 살면서 듣게 될 때 받는 느낌은 아주 많이 다릅니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유럽으로, 미국으로, 아니면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거나 또는 여기 한국으로 유학을 온 외국인들, 그리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 등 주변에서 언제든지 많은 유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그저, '어느 나라로 가냐', '전공은 뭐냐', 친한 친구의 경우면 '학비나 생활비 등 경제적인 부분은 준비를 어떻게 했냐' 또는 말 나온 김에 유학을 가게 될 나라에 대해 궁금한 부분까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편하게 질문도 하고 얘기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유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부터 개인적 선호도, 경제적 여유 등을 고려해서 유학 갈 국가나 대학교, 그리고 전공 등을 가족과 상의해 자유롭게 결정하게 되죠.
그러니까 한국에서 유학생은 그저 '유학을 간 학생', '유학을 온 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 중 일부, 딱 그 정도로만 생각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일단 저 개인적으론 북한에서 살 때 '유학'이라는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사용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유학'을 접한 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것도 해방 전 일본에서 유학한 인텔리 관련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주변에서 누군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정말 엄청난 놀라움과 부러움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제 사회에서도 북한 사회의 폐쇄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에 북한에서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주 어렵고, 또 일반적인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요. 실제로 ‘북한에서 너무 귀한 유학생’을 저도 여기 한국에 와서야 보게 됐습니다. 청진 출신인 저에겐 참 씁쓸하게도 모두가 평양 출신이더라고요.
물론 북한에서도 유학을 가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다시 말해 눈에 띌 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긴 합니다. 북한 체제에서 유학은 본인이 원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요. 국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국가 차원의 경비를 받아 해외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보니, 국가가 시키는 공부를 해야 하고, 그 공부를 북한 체제를 떠받들기 위한 기술을 연마한다는 사명감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 머리’는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은 이 부분도 어느 정도 예상하시겠지만, 북한 사회만의 특수한 조건이 있는데요. 바로 집안의 토대가 좋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당과 국가에 충성도가 높은 엘리트 계층의 자녀들이 유학생으로 선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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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북한 당국은 한창 호기심과 열정이 넘칠 나이에, 게다가 머리까지 좋은 학생들을 유학 보내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넓은 세상을 접하고 깨닫게 되는 것엔 당국이 원하는 것만 있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북한에선 유학생을 선발할 때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대대로 국가에 충성을 다한 토대가 있는 집안의 자녀들을 뽑고요. 그 자녀가 해외에서 자칫 잘못했을 때, 가족은 물론 친지들까지도 목숨 뿐 아니라 지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집안의 자녀들을 유학생으로 선정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감하게 탈북을 감행합니다.
실제로 유학을 마치고, 또는 유학 중에 북한 사회의 실체를 깨닫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행을 택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대부분 오늘 질문자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 현상이나 사회 구조 등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선이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부분 등 여러 가지로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오로지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한 부속물이 아니라 인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배워 북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돼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질문에 간략하게나마 답이 됐길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서울에서 청진 출신 방송원 조미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